침묵의 역사에서 울림의 시로, 여순 10·19 기억하다

[현장] 여순 10·19 시낭송 콘서트, 역사의 상처를 시와 음악으로 어루만지다

2025-10-03     김용자
▲여순 10.19 시낭송 콘서트 끝나고순천 작가회의와 함께한 사람들 ⓒ순천작가회의

지난 27일 오후 4시, 전남 순천시 북문길 좋은공간에서 '거기 못다한 사랑이 있네'를 주제로 한 '여순 10.19 시낭송 콘서트'가 열렸다. 순천작가회가 주최하고 순천시 문화예술과 보조지원사업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시와 음악, 유족 증언이 어우러져 역사와 시민 간의 공감대를 잇는 자리였다.

행사의 문은 창작 시노래 밴드 '밴드 등걸'이 나종영 시인의 시노래 '얼레지'를 부르며 열었다. 이어 국립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최관호 소장이 "이번 시낭송 콘서트가 여순 10.19의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와 상생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무대에는 나종영, 이민숙, 이상인, 장진희, 정성권, 오하린, 오미숙, 강경아 시인이 차례로 올라 자신들의 시를 낭송했다. 낭송자들의 떨리는 목소리에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귀 기울였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공감의 순간을 나누었다. '등걸'의 선율이 낭송과 겹치며 울림을 더하자 객석은 한 시대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는 공간으로 변했다.

특히 정미경 작가의 진행으로 열린 '유족과의 만남' 시간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여순 10.19 사건으로 부모를 잃고 외숙모를 어머니라 부르며 자라야 했던 이숙자 유족의 증언은 참석자 모두의 가슴을 울렸다. 굵은 손마디에 새겨진 고단한 삶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졌다.

▲유족과의 만남유족 이숙자 여사와 진행 하는 정미경 작가 ⓒ김인호작가 

이어 국립순천대학교 사회교육과 홍지민, 나랑, 강지운, 양윤지, 송유민 학생들은 정미경 작가의 소설 '공마당'에 실린 단편들 중 일부를 낭독하며 소감을 나눴다. 한 학생은 "국가가 거대한 권력을 휘두르며 개인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여순 10·19 사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아픔의 역사이며, 우리는 이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한다"고 말해 청중의 큰 공감을 얻었다.

▲ 낭독 후 국립 순천대학교 사회교육과 학생들이 전달한 꽃 ⓒ김인호 작가

관객들의 반응도 이어졌다. 정소영 시민은 "시 한 줄이 가슴을 울린다. 직접 낭송을 듣고 나니 과거의 이야기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앞으로 여순 10.19 사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고 전했다.

순천작가회 오하린 회장은 "노래 부르지 않고는, 시를 말하지 않고는, 유족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아직 못다한 사랑을 나누며 이 순간을 평화와 희망으로 오래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가 끝난 뒤 참여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마지막 무대에 오른 이민숙 시인은 자신의 시 '말'을 낭송하며 "묵언이란 말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할 그것을 찾는 일. 신발 한 짝이 다 닳을 때까지 찾아야 합니다"라는 구절로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이번 시낭송 콘서트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역사적 기억과 문화적 공감을 잇는 장이었다. 무대를 물들인 시와 노래, 유족의 목소리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한 여운으로 오래 남았다.

▲이민숙 시인시낭송 ⓒ김용자
▲시낭송 콘서트 관객장소 '좋은 공간'에서 함한 사람들 ⓒ김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