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서시장, “사람 발길 끊긴 지 오래”…한숨 섞인 재래시장 풍경
서시장과 중앙동로터리, ‘한산한 장터’와 ‘붐비는 도심’의 대조
4일, 여수 서시장 대목 장날. 재래시장 길가엔 전날 내린 비에 젖은 포대자루와 채소 상자가 나뒹굴고 있었다. 대목을 앞두고 기대했던 활기는 없었다. 상설시장 안쪽 떡집과 제수용품점 몇 곳만 분주했을 뿐, 노점 구역은 한산했다.
“사람이 안 와요. 아예 안 사요.”
여천에서 직접 무를 재배해 들고 나왔다는 한 상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씻고 포장해 왔다고 한다.
그 곁 상인 다라이에는 가느다란 토종 부추가 놓여있다. “이건 실부추예요. 옛날 맛 나는 귀한 거라니까”라며 웃었지만, 웃음 뒤엔 허탈함이 묻어났다.
“요즘 나오는 넓적 부추는 맛이 없어. 그래도 이런 걸 알아주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지.”
옆자리 순천에서 온 어르신은 밤과 감을 팔고 있었다.
“예전에는 감 사려는 사람이 줄 서 있었는데, 해마다 안 돼요. 올해는 더 안 돼요. 그냥 가져온 거라도 팔아야 집에 가서 밥 해먹죠.”
알밤을 파는 그의 손끝에는 막 깎아낸 밤껍질이 묻어 있었다. 잠시 후 한 손님이 “이건 얼마예요?” 묻자, 그는 익숙하게 “두 대에 칠천 원이요. 삶아 먹으면 맛있어요”라며 흥정을 이어갔다.
보성에서 햅쌀을 가져왔다는 쌀 장수는 올벼 쌀을 팔고 있었다.
“이건 햅쌀이에요, 올벼 쌀. 코로나 오기 전엔 오후 4시까지 사람 많았어요. 근데 요즘은 오전 10시면 장이 끝나.”
10년 넘게 서시장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그는 “요즘은 물건이 잘 안 나가요. 젊은 사람들은 다 마트나 인터넷으로 시키니까”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시장 안쪽 어묵집과 떡집은 비교적 활기가 있었다.
“명절 전 3일은 좀 바쁘죠. 그게 지나면 9일 동안 또 장사가 안돼요. 결국은 그게 그거예요.”
사장 A씨는 “저는 여행 일 때문에 어제 오늘만 도와주고, 평소엔 아내 혼자 해요. 요즘은 돈가스가 제일 잘 나가요”라며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기름이 튀는 소리와 함께 김이 피어올랐지만, 손님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시장 밖으로 나와 중앙동 로터리 쪽으로 향하자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관광객과 귀성객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서 거리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도심은 붐볐지만, 전통시장은 고요했다.
상인들은 “이제 여수 사람들도 전통시장보다 대형마트나 온라인을 더 찾는다”며 “사람 냄새 나는 장날이 점점 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무와 부추를 다듬고, 또 누군가는 기름 냄새 속에서 전을 부쳐낸다. 손님이 줄어도, 재래시장의 불빛은 여전히 새벽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