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80을 눈앞에 둔 한 세대의 고뇌
조상을 향한 예(禮)와 시대의 변화
80세를 바라보는 이 나이가 되어보니, 그동안 나의 전부였던 내 마음이 서서히 퇴색되어 가는 것을 하루하루 실감하게 된다.
“마음은 여전히 푸른 청춘인데, 백발이 먼저 알고 가로 질로 간다”는 옛 엄마의 말씀이 곧 우리의 눈앞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는 시점,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시대의 변화에 스며 들어야 하는데, 몸이 먼저 앞서가니 아직 그 깊이를 모르는 자식, 손자 세대와의 불협화음이 시작된다.
특히 이번 명절에 겪은 ‘제사 문화’에 대한 사례는, 우리 시대와 다음 세대가 맞닥뜨린 가치관 충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4대 봉제사의 전통과 간소화를 요구하는 자녀 세대”
사대 봉제사를 지켜온 우리 세대에게, 제사는 단순한 의례가 아닌 조상님께 올리는 최고의 예의이자 가족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중년의 자녀들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여 제사의 ‘간소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다. 부모의 역귀성을 제안하며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만 제상에 올리자는 그들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전통의 관습을 지켜 조율이시(棗栗梨柿)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제상을 배열해 차려 지내왔던 나에게는 힘든 도전이었다.
주변의 여론과 자녀들의 현실적 제안 앞에서 결국 나는 고집을 꺾고, 정성껏 마련한 제사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역귀성을 했다.
무거운 음식 박스를 이고 지고 들고 역사를 빠져나오는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대신 ‘왜 이렇게 많이 해왔느냐’는 아들과 손자의 지천이었다.
“지켜내고 싶은 미풍양속, 이해하고 싶은 자식들의 요즘 시대 정서이지만“
순간 나는 다 큰 자식들의 말을 듣지 않은 내가 고집스러운 것인가 하는 자괴감과 조상을 향한 미풍양속을 어떻게든 지켜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동시에 솟구쳤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내 방식대로 조상께 예의를 표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뵌적 없는 조상님께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는 행위가 현대 사회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 시대의 흐름에 쉽게 편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조상님께 1년에 몇 번 예의를 갖추어 추모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옳은 일이라는 신념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내 마음을 다짐해본다. 누가 신식으로 하자고 해도 나는 조상님 모시기를 존중 속에 고수하고 싶은 생각이다.
자식들의 현실적인 삶의 무게와 바쁜 일상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내 시대에 배운대로, 지켜온 대로 계속해서 하던 예를 지키고 싶다. 다만, 이제 마음의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너희들 세대가 되었을 때 너희들 법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든지 말든지는 관여 않겠다는 마음으로 정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먹어본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며 이 집안의 어른으로서 나는 옳다고 믿는 조상에 대한 추모의 예를 나의 방식대로 이어가려고 다짐해 본다.
이것은 세대 간의 싸움이 아닌, 내가 지켜온 가치와 전통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기 전까지 나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마지막 임무와 같다.
전통의 형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겠지만, 조상을 기리는 마음 만큼은 후손의 뼈속에 스며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