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문화답사팀 26명, 경북 예천 ‘청우정’... 그때 그 시절 시간여행
여수향토요리문화학원 김명진 원장과 '청우정'에 가다
경북 예천의 작은 마을 청우정 문화센터(예천군 보문면 수양길 40)에서 특별한 문화 답사가 지난 13일 열렸다.
생활사 자료를 40여 년간 모아온 청우 김도현 회장이 특별한 자신만의 공간을 하루 동안 개방하며, 여수향토요리문화학원 김명진 원장과 문화답사팀 26명이 여수에서 방문한 것이다.
청우정은 500여 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와 5천여 평의 뜰, 연못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공간이다. 폐교된 옛 보문초등학교를 청우 김도현 회장이 2008년 매입해 조성했으며, 민속 노래마을 운영을 준비 중이다.
김도현 회장은 평소 외부 공개를 꺼리는 편이지만 “좋은 의미라면 보여드릴 수 있다”며 이날 문을 열었다. 방문객들의 감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 골동품과 생활용품 수집의 이유, 그리고 마지막 꿈을 조용히 들려주었다.
다음은 자신을 상머슴이라 소개하는 청우 김도현 회장과 일문일답이다.
“이곳은 제 인생을 모은 공간입니다”
- 청우정 문화센터를 이렇게 지키고 계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 물건들은 40년 동안 제가 직접 모은 것들입니다. 생활 도구, 고가구, 고서, 옛 기물… 하나하나 삶의 흔적이죠.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모으다 보니 ‘언젠가는 좋은 곳에 기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폐교된 학교까지 매입하게 됐어요.”
청우정은 과거 경상북도지사 관사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TV조선 드라마·예능(여배우의 사생활, 조선의 사랑꾼)의 촬영지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이 공간의 진짜 매력은 김도현 회장의 집요한 수집과 세월의 결이 그대로 배인 소품들이다.
- 실제로 소장품을 보니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것들이 많습니다.
“맞아요. 지금 젊은 사람들은 풍로(풀무)나 철물, 초가집 기물들이 뭔지 모르죠. 사진 몇 장만 찍고 가면 끝이에요. 그래서 ‘실제 쓰는 장면’을 연출해야 가치가 생겨요. 벼 탈곡, 불 지피기, 방앗간 돌아가는 소리… 이런 걸 그대로 재현해야 합니다.”
그는 공간을 ‘살아 있는 생활사 박물관’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죽기 전에 하나 제대로 남기고 싶습니다”
-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싶으신가요?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시대별 생활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골목, 초가집, 헛간, 오일장, 복덕방… 삶이 담긴 마을을요. 그런 공간은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거든요.”
- 개인이 감당하기엔 규모가 상당히 큰 프로젝트입니다.
“맞아요. 제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 재산도 기증할 겁니다. ‘죽고 나서라도 하나 남기고 가자.’ 그게 제 마지막 꿈이에요.”
김 회장은 빗자루 하나를 예로 들었다.
“옛날엔 허리를 굽혀 빗자루로 마당을 쓸었어요. 허리가 아프면 그냥 아픈 줄 알고 했죠. 그런데 요즘 자식들은 힘든 건 안 하려 하죠. 그래서 제가 소장하고 있는 물건은 제때 기증해야 합니다. 애들 세대에 맡기면 다 팔아버릴 겁니다. 하하.”
그의 말 속에는 유머도, 세월도, 책임감도 함께 스며 있었다.
“누군가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 공간을 완성하려면 좋은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재단을 만들든, 공동 프로젝트를 하든… 함께할 사람을 찾고 싶어요. 제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게 아닙니다. 한국 생활사를 제대로 남기고 싶습니다.”
이날 답사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보존돼야 한다, 회장님이 존경스럽다, 뜻밖에 힐링을 받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공간은 꼭 제대로 보존돼야 합니다.”
“김도현 회장님의 뜻이 참 깊고 존경스럽네요.”
“예천에 18년 만에 다시 왔는데, 뜻밖에 힐링 받았습니다.”
여수향토요리문화학원 김명진 원장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 공간을 알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진심, 오랜 봉사, 뜻밖의 후원이 겹쳐 만들어진 자리였다.
경북 예천의 작은 마을에 자리한 청우정. 한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 40년의 세월이, 한국 생활사를 미래로 잇는 ‘기록’으로 남으려 하고 있다. 그 꿈을 함께할 누군가를, 그 공간은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또한, 가수 나훈아 씨에게도 노래와 마을이 한데 어우러진 민속 노래마을을 함께 재현해보자는 제안을 하였다고 전한다.
“섬 어르신들 반찬 봉사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한편, 행사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김명진 원장은 “제가 섬 지역 어르신들께 반찬 봉사를 오래 해왔어요. 그걸 아는 지인들이 ‘어디 돈 쓸 데 없나’ 하며 조금씩 후원을 해주셨죠. ‘어르신들 계속 도와드리라’고요. 서로 힘들 때 십시일반 돕는 사이가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김 원장은 최근 지인들에게서 약 200만 원의 후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또 의미 있는 경험이 되는 일’에 쓰고 싶었다.
“날씨도 쌀쌀해지고 해서 문화 답사가 좋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예천에 계신 분이 개인 소장품 공간을 한번 개방해 보겠다고 하셔서, 이 행사를 기획하게 됐죠.”
섬김으로 시작된 청우정 문화 답사 행사를 진행하며 김 원장이 개인 비용까지 투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행은 그의 진심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에 대해 송길선 씨는 “지인의 도움도 있었지만, 사비 들여 이런 행사를 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김 원장님은 늘 남을 섬기고 베푸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일 또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라며 “저도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