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종은 관장, “케데헌의 ‘까치호랑이’와 ‘선민화’… 서로 공존할 수 있다”

여수 가림갤러리, 향일암 입구 임포마을에서 새롭게 문 열어 선민화(禪民畫), 문인화 필력에 민화 색채와 상징성 접목한 독자적 장르

2025-11-25     조찬현
▲ 허종은 가림갤러리 관장이 자신이 그린 호랑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찬현

여수 가림갤러리(관장 허종은)가 11월 20일, 향일암 입구 임포마을에서 새로운 공간으로 단장해 문을 열었다.

임포마을은 해돋이 명소로 널리 알려져 왔지만, 달빛이 떠오른 밤바다 또한 빼어난 정취를 자랑한다. 그 풍광을 품은 갤러리의 오션뷰는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 여수 가림갤러리 전경, 향일암 입구 임포마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조찬현

케데헌 까치호랑이에 대한 허종은 관장의 생각

허종은 관장은 최근 디지털 기반으로 재해석된 ‘케데헌 까치호랑이’ 열풍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분명한 관점을 밝혔다.

“케데헌은 하나의 지류라고 봅니다. 우리가 전통 민화에서 말하는 아날로그라면, 케데헌은 그보다 한 단계 위의 디지털 세계죠. 그 나름의 상상력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여수 가림갤러리 방문객들이 허종은 관장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조찬현

즉, 전통 민화와는 결이 다르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예술적 흐름이라는 평가다. 허 관장은 케데헌의 ‘상상 세계’와 자신이 추구하는 ‘선민화’는 기반과 방향이 다르지만, 민화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서로 공존할 수 있다고 본다.

전통 민화 속 까치호랑이가 민속의 상징적 해학과 소망을 담았다면, 케데헌 까치호랑이는 디지털적 감각, 현대적 상징, 확장된 색감과 세계관으로 재해석된 또 하나의 창작물이다.

“케데헌 까치호랑이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요. 전통과 현대의 차이일 뿐, 표현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닙니다.”

“제목을 두지 않은 이유… 보는 사람 느낌이 중요”

갤러리에 걸린 한 작품 앞에서 한 민화 작가는 “이 그림은 허종은 관장이 굶어가며 그린 그림이라 마음속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작품에 제목을 적지 않는 이유에 대해 허종은 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제목이 없어도 보는 사람이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공작이면 공작, 꽃이면 꽃… 자연과 생명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느끼면 그걸로 충분하지요.”

▲ 여수 가림갤러리 오픈 기념식에서 허종은 관장 부부가 떡케잌을 자르고 있다. ⓒ조찬현

허 관장은 20여 년 전부터 ‘가림(佳林)’이라는 호를 사용해 왔다. 가(佳)는 ‘아름다울 가’, 림(林)은 ‘숲 림’. 즉 ‘아름다운 숲’이라는 뜻이다.

“저는 늘 혼자 있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반면 숲은 텅 비지 않고 서로 어울려 채워져 있죠. 그런 따뜻함, 어울림의 의미가 좋아 ‘가림’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갤러리 2층과 3층을 가득 채운 그의 작품들은 오랜 시간 정진해 온 문인화 30년, 민화 8년의 결실이다. 문인화의 필력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민화의 색채와 상징성을 접목해 ‘선민화(禪民畫)’라는 독자적 장르를 만들어냈다.

‘선민화’의 탄생... 문인화∙민화∙불심의 결합

▲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필력이 돋보이는 50호 대작인 천수관음도다. ⓒ조찬현

허종은 관장은 불교와 깊은 인연을 계기로 “예술과 도(道)가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문인화의 필력, 민화의 색감, 그리고 부처님의 불심을 하나로 녹여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선민화’입니다.”

그의 작품 속 호랑이, 꽃, 산수 등에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게 표현된 부처님, 관음상, 불심을 상징하는 낙관 등이 숨어 있다. 이처럼 상징적·영적 요소를 결합해 기존 민화와 차별화된 세계를 구축했다.

산정 추수장 명장, “감동을 주는 사람 가림 허종은”

순천에서 서각 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는 산정 추수장 명장은 가림갤러리 개관을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그는 오랜 시간 호남의 예술 환경이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고 느껴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호남엔 재능 있는 예술인이 참 많아요. 그런데 챙겨주는 사람도, 길을 내어주는 사람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앙 무대에서 활동하며 우리 지역 예술가들을 돕고 싶었죠. 그러다 가림 허종은 선생님의 작품을 처음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허종은 관장은 전통미술대전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하며 초대작가로도 활동하는 등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실력 있는 작가다. 산정 명장은 특히 그의 흔들림 없는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올해 78세이신데도, 아직도 청년 같은 열정을 유지하고 계세요. 만약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열정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문인화 전시작 중 허 관장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새우 그림’을 꼽았다.  ⓒ조찬현

한편, 문인화 전시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허 관장은 ‘새우 그림’을 꼽았다.

“새우를 이렇게 표현한 건 드문데, 제게는 특별한 작품입니다.”

단아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필치, 여백의 미와 색채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수의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 가림갤러리는 이제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허종은 관장의 삶과 철학, 그리고 호남 예술의 저력을 담아낸 새로운 지역 예술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 허종은 관장과 여수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화작가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조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