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속버스는 오늘도 정시에 출발한다
이는 모두의 시간을 동등하게 대하기 위해서다
얼마 전 정시에 출발한 고속버스를 놓친 고객이 민원을 넣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버스는 시간표에 맞춰 출발했을 뿐인데, “조금만 기다려줄 수 없었느냐”는 항의가 뒤따랐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아래에는 곧바로 댓글이 쏟아졌다. “정해진 시간에 출발한 게 무슨 잘못이냐”는 반응과, “그래도 5분쯤은 기다려주는 게 사람 사는 정 아니냐”는 반응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 짧은 사건 하나에, 우리 사회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코리안 타임’.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는 건 서로 이해해주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져 왔고, 그 관습은 어느새 당연한 문화가 되었다. 문제는 그 ‘조금 늦음’이 언제나 같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어 왔다는 데 있다.
늦음은 실수가 아니라, 때로는 암묵적인 권리?
우리 사회에서는 유독 연장자나 직급이 높은 사람이 약속 시간에 늦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사람들이 이미 다 모여 있고,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중심이 된다. 먼저 인사하는 사람보다, 모두에게 인사를 ‘받는’ 사람이 더 권위 있어 보인다는 오래된 인식 때문이다. 시간마저도 위계의 일부가 되어버린 셈이다. 늦음은 실수가 아니라, 때로는 암묵적인 권리처럼 작동해 왔다.
행사장 풍경을 떠올리면 이 문화는 더욱 선명해진다. 앞자리는 비워둔 채, 사람들은 그 뒤쪽부터 조심스럽게 앉아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어른들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와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공간을 남겨두는 모습은 어딘가 불편하다. 그 빈자리는 단순한 좌석이 아니라, 권위가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도 채워서는 안 되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빈자리를 보며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고, 말수를 줄이고, 시간을 견딘다.
이런 장면은 비단 공식적인 행사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가족 모임에서도, 회의 자리에서도, 심지어 개인적인 약속에서도 비슷한 구조는 반복된다. 늦게 오는 사람을 중심으로 시간이 재편되고, 이미 도착한 사람들의 시간은 조용히 뒤로 밀린다. 기다림은 배려가 아니라 관행이 되고, 불편함은 말하지 않는 쪽의 몫이 된다.
기다린 사람들의 시간과 불편함은 늘 '당연한 희생'으로 여겨왔을까
그래서인지 고속버스 사건은 단순한 민원을 넘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버스는 누구의 체면도, 누구의 지위도 고려하지 않았다. 연장자의 사정도, 손님의 감정도 따지지 않았다. 오직 시간표만을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택 앞에서 되묻게 된다. 왜 늦은 사람의 사정에는 그렇게 관대하면서, 기다린 사람들의 시간과 불편함은 늘 당연한 희생으로 여겨왔을까. 왜 ‘조금만 기다려주지’라는 말은 쉽게 나오면서, ‘제시간에 오는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 엄격하지 않았을까.
나는 기성세대가 늦음으로 권위를 드러내기보다는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늘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다. 보통 10분에서 20분 정도 먼저 가 있다. 행사가 있는 날에는 그보다 조금 더 여유를 두고 현장에 도착해 사람들을 먼저 맞는다.
솔직히 말하면, 어른들은 이런 대접을 좋아한다. 누군가 먼저 와 있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상황 속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듯하다. 그 감정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존중이 언제나 ‘기다림’이라는 형태로만 표현되어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권위'는 늦게 등장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어른들이 먼저 와 있다면 어떨까. 이미 앞자리에 앉아 자리를 채우고, 하나둘 들어오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라면. 늦게 와서 중심이 되는 모습이 아니라, 먼저 와서 그 자리를 조용히 채우고 있는 모습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권위이고, 말없이 보여주는 교육이 아닐까.
권위는 늦게 등장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와서 자리를 채우는 태도에서 생긴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해서 얻는 존중보다, 누군가의 시간을 먼저 존중하는 행동이 훨씬 깊고 오래 남는 신뢰를 만든다. ‘어른답게 행동하라’는 말의 진짜 의미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키는 사람 말이다.
버스는 오늘도 정시에 출발한다. 누구를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시간을 동등하게 대하기 위해서다. 그 단순한 원칙 앞에서, 앞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리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과 권위의 방식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기다림이 미덕이 되기 전에, 지킴이 먼저 미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이런 인사가, 이런 삶이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가 아니라, “미리 와줘서 고맙다”라는 말이 그리고 행사장 앞자리에서도, 우리의 시간 문화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오가는 세상이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