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찾고 싶은 섬, 여수 여자도 대동마을에 찾아온 봄
그날 여자도에서, 나는 새움이 돋아나는 봄을 보았다
지난 21일, 지인 사진작가들을 따라 자동차가 없는 섬, 여자도를 찾았다.
여수 섬달천에서 배를 타고 20분가량 달려 도착한 여자도는 우리나라 200가구 이상이 사는 섬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동차가 없는 청정 섬이라고 한다.
윤슬 반짝이는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배는 육지에서 묻어온 고단한 시름을 씻어 주는 듯 상쾌했다. 순간을 놓칠세라 사진작가들의 셔터 소리도 분주했다.
여자만에 위치한 여자도는 2개의 유인도와 5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사람들이 살고 있는 소여자도와 대여자도를 여행하기로 했다. 섬을 찾은 목적은 해안길과 마을길을 걸으며 섬을 둘러보고, 대동교회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에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일행은 먼저 소여자도에서 내려 마을을 둘러보고 정자에서 도시락을 먹은 뒤, 섬과 섬을 잇는 560미터 연육교 붕장어다리를 건너 대여자도로 향했다.
봄은 섬을 먼저 찾아온 듯했다. 마을 골목길은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있었고, 물고기 벽화와 집집마다 걸린 부표와 그물은 이곳이 어촌마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여자도에서는 특별한 빨간 우체함을 발견했다. 도시 아파트 우편함처럼 여러 사람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다.
마을 어르신께 여쭤보니, 우체부가 배 시간 때문에 우편물을 한꺼번에 내려놓고 가면 주민들이 각자 이름을 보고 찾아간다고 했다.
섬이라는 환경이 만든 방식이지만, 노인들이 많은 마을이라 조금은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여자도를 뒤로하고 대여자도로 향하는 연육교 초입에 다다르자 물고기 동상과 낚시하는 동상이 우리를 반겼다.
2012년 5월에 준공된 길이 560미터의 연륙교 데크길을 걸으며 양쪽으로 펼쳐진 바다 풍경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풍경을 찍는 작가들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는 일도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대여자도에 도착한 후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해안길에는 데크가 놓여 있어 걷기 편했고, 중간중간 붉은 바위와 각진 납작 자갈들이 눈에 띄었다. 붉은 바위는 철 성분 때문이고, 납작한 자갈은 파도가 잔잔해 둥글어지지 못하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자연이 만든 시간의 모양이었다.
해안길을 지나 마을길로 들어서자 농사 준비를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밭은 고르게 정리되어 있었고, 부쩍 자란 마늘과 붉게 핀 동백, 보랏빛 개불알풀, 성큼 올라온 쑥과 냉이, 활짝 핀 개나리, 몽글몽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는 벚나무까지. 바닷가에는 후박나무가 많고 먹구슬 열매가 조랑조랑 달려 있었고, 염소들은 반갑다며 메에 울었다. 역시 봄은 섬을 먼저 찾아와 있었다.
대동마을에 도착하니 예상보다 집들이 많았다. 이렇게 큰 섬에 자동차가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신 골프장에서나 보던 카트가 마을 길을 오가며 짐을 나르고 있었다.
자동차가 없어도 살아가는 방법을 만들어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지혜가 보였다. 자가용은 모두 육지 섬달천 선착장 주차장에 두고 들어온다고 했다.
대동교회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교회 종이 눈에 들어왔다. 종을 보는 것도, 종소리를 떠올리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종은 매일 낮 12시, 일요일 예배 전에 친다고 했다. 어린 시절 들었던 교회 종소리가 문득 떠올라 한참동안 종을 올려다보았다.
대동교회 이기정 목사는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앞두고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교회 옆 부지에 '산다이 동산'이라는 문화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버려지는 담수를 활용해 작은 폭포와 족욕을 할 수 있는 물길을 만들고, 높이를 다르게 만든 객석과 돌단으로 만든 작은 무대도 마련했다.
이곳 산다이 동산에서 '봄은 오는가'라는 주제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마을 어르신들과 교회 사람들, 외부에서 온 사람들까지 50여 명이 함께한 공연이었다. 비영리단체 '여수뮤지션 서포터즈' 팀의 대표이자 보컬 안철, 피아노 김혜진, 바이올린 최수경, 첼로 김엘림 연주가 봄바람을 따라 섬마을에 울려 퍼졌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시작으로 '섬집 아기', 송창식의 '한 번쯤', '연분홍 치마', 그리고 안철의 '청석포', '꽃이 세상의 벽을 허무네', '봄은 오시는가'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이어졌다. 음악을 듣는 동안 섬 사람들과 육지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한 시간의 공연은 너무도 짧게 느껴졌다.
공연은 베토벤 '환희의 송가'를 찬송으로 부르며 마무리되었다. 공연 후 교회에서 준비해 준 봄철 별미 숭어회와 전국 생산량의 75%가 이곳에서 나온다는 여자도 새꼬막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대동마을은 장수마을이라고 한다. 102세 최고령 조계방 할머니를 비롯해 스무 분이 넘는 장수 할머니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섬에서의 고된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마을 주민들의 이런저런 사연, 특히 응급상황 때 겪는 어려움과 생계 때문에 억울한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촌의 애환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다. 조계방 할머니를 집 앞까지 모셔다 드리고, 남은 간식 오렌지 두 개를 드리며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배에 올랐을 때, 바다 끝에 황금빛 해가 머물고 있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고, 해가 진 뒤 가장 아름답다는 매직아워의 황혼이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여자도의 하루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여수는 올해 9월 열리는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다. 대여자도 대동마을 사람들도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고 한다.
3월 31일에는 여자도 벚꽃축제도 열린다고 하니, 여수 섬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참고해도 좋겠다.
여자도를 찾게 된다면 연륙교 붕장어다리도 꼭 걸어보고, 해안길과 마을길도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대동마을 대동교회 옆 산다이 동산에서 잠시 쉬어가길 바란다.
여자도 새꼬막도 맛보고, 청정 섬의 고요한 선율 속에서 마을 길을 걸어보는 여행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음악회에서 들은 이기정 목사의 인사말 한 구절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봄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새움이 돋아나는 것을 보는 것이 봄입니다.
자연이 겨울을 지나 봄을 맞듯,
우리 인생의 봄도 다시 살아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날 여자도에서, 나는 새움이 돋아나는 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