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도 봉수대서 통일신라 토기 발굴 ... 여수 성황신 김총과 연관성 조사 필요

2012-02-12     박태환

1월부터 발굴조사 실시 ... 토제마, 철제마 등 다수 발굴

묘도 봉화산 봉수대에서 통일신라시대 토기가 일부 발견돼 대대적인 추가발굴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수의 성황신으로 받들고 있는 김총이 통일신라 헌안왕(憲安王)[857~861] 때 여수 지역의 진례산 아래 적량에다 치소를 차려 당시 남해안에서 날뛰는 적들을 정벌하고 선정을 베풀었다는 문헌이 있어 묘도 봉수대와의 연관성에 대한 조사도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묘도 봉화산 봉수대 유적발굴을 실시한 전남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묘도 봉화산 봉수대에서 고려시대 제사유구와 관련된 토제마, 철제마, 정화통보, 자기류, 기와류, 토기류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곳에서 발견된 제사유구는 충주 단월동 고려묘, 천안 남산리 고려묘, 안동 서삼동 벽화고분 등 주로 고려분묘와 진도 용장산성 제사유구에서 확인된 유물로 고려시대 전기(11~!2세기)시대로 추정된다.

연구소측은 “적어도 봉수대 설치 이전인 고려시대 이전부터 이곳에 제사를 지낸 장소로 이용되었다”며 “묘도 봉화산 제산유구는 통일신라시대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 들어와 건물을 짓고 제사유물을 통해 바다의 풍어와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장소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묘도 봉수대의 크기도 이번 발굴조사에서 드러났다. 봉수의 평면형태는 원형이고 규모의 기저부 최대직경은 900㎝, 잔존높이 약 250㎝, 전체둘레 2,950㎝로 확인됐다. 그러나 석축의 보강석을 포함할 경우 3,200㎝로 늘어난다.

외벽도 잔존 상태에 따라 3~17단까지 아주 양호한 상태로 발굴됐다. 축조방법도 드러났는데 장대석을 이용해 수평쌓기를 했으며 정상부까지 전체를 수평쌓기를 한 것이 아니라 일정 높이까지 수직으로 올라가다 상부의 어느 부분에서 단을 이루어 안쪽으로 들여쌓음으로써 안정감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중심시설인 연조시설은 연대 상부에서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 계단 시설의 일부가 확인되고 있어 상부에 연조시서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묘도봉수는 임진왜한 전란기를 제외하고는 조선시대 전시기 동안 사용된 봉수로 바닷가에 위치한 제5로 노선의 연변봉수로서 여수석보와 전라좌수영에 보고하던 권설봉수였을 것을 판단되고 있다.

한편 이번 발굴조사는 여수시가 묘도 봉화산 공원조성을 위해 지난 1월 6일부터 실시하고 있다.

■ 제5로 노선 : 봉수망은 전국의 주요 간선도로를 5로로 나누어 모두 한성의 목멱산(남산) 봉수로 연결된다. 여수지역은 돌산봉화산에서 시작하는 제5로 봉수노선으로 전남,북의 해안을 거쳐 충남의 내륙과 경기도 및 강화도의 해안을 돌아오는 봉수다.

■ 연변봉수 : 국경과 해변에 설치되어 연대라고도 불린 해안 연변지역의 최전방 봉수.

■ 권설봉수 : 조선후기 군사적으로 중요하였던 영진에 자체적으로 설치하여 본읍본진으로만 연락하도록 하던 봉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