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넘어 선 사랑' 400회 공연한 극단 파도소리를 아시나요
[문화의 공간을 찾아] 극단 파도소리
파도소리 소극장은 여수시 흥국로 41에 위치한 연극공연 전용극장으로 ‘극단 파도소리’(대표 강기호)의 전용극장이다.
입구에서 보면 전혀 극장 같지 않은 자리에 눈에 확 뜨이지도 않아 금방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극장은 지하에 위치하고 사무실은 4층에 있다고 하여 우선 4층으로 방문을 했다.
강기호 대표를 만났다. 한국연극협회 전라남도 지회장이기도 한 강 대표는 미남형의 얼굴에 호감이 가는 말투였다. 30년이 넘게 연극에 종사한 베테랑답게 달변가였다. 미리 약속한 터라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4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극단 파도소리는 지방에서 자생하는 극단으로 1987년 9월 25일에 공연등록을 했다. 공연등록을 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 동안 공연을 했고 결집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80년대 중반부터 그 단초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80년대 암울한 정치상황이었던 시기에 시작한 예술 활동은 척박한 연극시장에서 얼마나 힘든 발걸음을 하였을까. 그것도 서울이나 광주가 아닌 이 조그마한 도시 여수에서 그 고생한 흔적이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연극 인생을 걸어오면서 많이 말아 먹었죠. 내가 가진 재산도, 아버지 재산도, 동생의 재산도 많이 없앴습니다.”
대도시인 광주에서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딸린 식구가 많은 연극극단을 유지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자하는 정신이 베어 있지 않으면 안되는 생산적이지 못하는 예술활동이다.
더군다나 80년대 그 시대에 시민들은 얼마나 문화적인 갈망이나 있었던가. 그냥 먹고 살기에 바쁜 세상살이 어둠이 그늘진 속에서 그냥 제도권이 만들어 놓은 입맛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 프로야구다 프로축구다 하며 그저 먹고 마시면서 당시의 상황을 어찌하면 망각해보고자 하는 향락추구의 도그마에 있었던 시기에 순수예술 활동이란 거의 자살활동과 같았지 않았는가 싶다.
1987년경 창단된 극단은 지금까지 27여년 동안에 크고 작은 공연이 무려 181회나 이루어졌다. 년간 6-7회의 공연을 소화한 것이다. 말이 6-7회이지 한 공연을 올리는데 연습하고 공연하고 하는 기간을 따진다면 다산이나 같은 것이지 않는가 어떤 공연은 몇 달간 지속된 공연도 있곤 했다.
“우리극단의 대표작은 2004년 2월 22일 여수시민회관에서 초연된 제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용서를 넘어선 사랑’이죠. 출연진이 무려 35명에 이른 대작으로 손양원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사랑의 참모습을 진지하게 표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서울, 인천, 대전, 나주, 부산, 대구, 수원 등 전국각지에 순회공연을 하였고 2005년 9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는 미국의 시카고, 디트로이트 5개주를 돌면서 20회의 공연을 치뤘습니다.
스탭을 포함하여 70여명의 인원이 움직인 엄청난 대작이었죠. 어쩌면 당시의 상황으로 불가사의한 공연을 하였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이후 국내에서 끊임없이 공연이 이루어져서 이 작품만도 400회의 공연을 했습니다.”
이 대표작 말고도 근래 들어서 이름 있는 작품을 보니 여순사건을 배경으로 한 강기호 작.연출의 ‘시월의 노래’, 조창연의 가시고기를 각색한 강기호 연출의 ‘가시고기’, ‘거문도의 노래’ ‘악극 번지 없는 주막’ ‘슬비야 슬비야’ ‘남해바다의 영웅 오돌래’ ‘오동도 이야기’ 등 출연진 20명이 넘는 대작들이 수두룩했다.
그것도 이 지역 여수와 관련된 갖가지의 소재들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방 연극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더더군다나 돋보인다.
이런 작업을 하면 후원이나 지원은 어느 정도 되는가 하는 질문에 강기호 대표의 목소리가 사뭇 숙연해졌다.
“여수시에서 지원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전국연극제 등 여수를 대표해서 하는 연극행사에 참여한다고 하면 겨우 제작비의 20%정도나 지원해줄까 그것도 잘해야 년간 한 번인데 이것을 시의 지원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후원회도 없고, 재원이라고 해봐야 결국 공연수입과 개인이 출연하는 정도인데, 결국 제 사재로 충당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죠. 그러다보니 작품을 올리면 올릴수록 빚만 느는 셈이 됩니다.
더군다나 시의 담당자도 해마다 인사철만 되면 계속 바뀌고, 마치 시청직원들이 서로 기피하는 분야인 듯 해년마다 담당자가 바뀐곤 합니다. 이 문화분야는 그냥 밀려서 앉은 자리 같지 않나 싶네요.
그러다 보니 업무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담당자만 바뀌고, 문화적인 마인드가 제대로 서있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원되는 것은 거의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뭐 이런 말을 해서 시의 미움을 사면 그도 저도 국물도 없을 수도 있는데요.” 하고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예술을 하는 것은 배고프다고 했다. 먹고사는 것에 별로 불편이 없다고 하는 요즘에는 그럼 배고프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던진 질문인데도 사뭇 비장감이 들 정도이다.
“더군다나 산단에서도 거의 지원이 없고, 겨우 예울마루라고 공연장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 대관료가 얼마나 비쌉니까. 대관료가 비싸니 예울마루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입니다.
광양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광양제철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공연장을 확보하고 제철이 비용을 들여서 각종 문화행사 등에 기여하고 있는 점으로 봐서는 여수산단은 많은 점에서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대기업의 속성이 그런지 몰라도 오로지 이익창출을 위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인간적인 삶을 오로지 물질에 두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들이 여수산단에 들어선 기업들의 현주소이지 않는가 싶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용서를 넘어선 사랑’과 같은 작품의 경우는 말 그대로 사장을 시키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싶어서 재공연의 의사를 떠봤더니 희색이 만연하면서 한숨 짓는다.
“그것이야 저희들의 꿈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돈이 문제죠. 세트도 모두 교체해야 하고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도 많고, 또 공연장 대관료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담이 크잖아요.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죠. 거의 1억 이상이 소요될텐데 이제는 저지를 여력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말끝을 흐리는 강대표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지방에서 순수예술활동으로 이만큼의 역할을 한 것으로 봐서 2012년 엑스포 때는 야심찬 작품을 올릴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물었더니 오히려 엑스포기간에는 조직위에서 주로 서울 등 외지의 단체들을 대상으로 선정하여 공연이 이루어져서 정작 지방단체에게는 별로 혜택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행정의 편의상 그냥 천편일률적인 전형적인 편의성, 전시성의 행정문화의 일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은 아마도 정치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하에 있는 소극장을 가기위해 사무실을 나서니 연습장이다. 연습장에서는 몇몇의 나이든 배우들이 빙 둘러 앉거나 서서 연습에 열중이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배우들의 진지한 모습들은 주위에서 사진을 찍는지 어떤지 개의치 않고 연습에 열중이다. 그 진지함이 나를 압도해서 셔터를 잡는 손가락이 사뭇 긴장되어 왔다. 괜스레 끼어들어서 방해를 했다는 생각에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연습실을 나섰다.
지하에 자리하고 있는 소극장은 1993년에 개관을 했다고 한다. 건물주인의 지원에 힘입어서 집세는 적게 내고는 있지만 조명등의 시설유지비가 있으니 그것도 유지하는데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90평정도의 공간에 무대가 15평정도에 좌석이 180석이다.
서울이나 광주의 대도시에 있는 웬만한 소극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있다. 지방극단으로 이런 극장을 갖는다는 것이 경이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극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양쪽에는 공연포스터가 줄지어 붙여져서 극장의 이미지를 한결 돋구워 준다. 지하에 들어서서 입구의 문을 들어서니 로비다. 로비에는 여수출신 화가들의 작품들이 몇 점 전시되어 있고 소파와 자판기가 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잠깐의 휴식시간 동안 쉬는 공간이란다. 이런 틈새 공간으로 한숨돌리는 여유가 되기도 하겠다. 작은 공간을 어떻게 하면 쓸모 있게 사용하고자 하는 흔적이 곳곳에 베어있다. 극장전용의 건물이 아니다 보니 뒷좌석으로 갈수록 천정이 머리에 닿을 듯 하기는 해도 제법 소극장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하자.
“공연하면 이상하게 초대권문화가 난무하는 것 같습니다. 하다 못해 할인권이라도 구매하는 문화가 조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를 제대로 접근하는 자세가 기본인 것 같아요. 서울같은 대도시로 가면 그나마 매표로 관객을 동원이 되는데, 이상하게도 지방은 그런 문화에서는 척박함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후원이나 지원을 좀 많이 받아서 좀더 활발한 활동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강대표는 글쎄요 하는 표정이다.
“사람살이는 뭐 거의 비슷하지 않아요.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어찌보면 과거 그 때는 지역사회인만큼 인간미가 있었다고 할까요. 후원요청을 하면 조그마한 가게에서라도 선뜻 지원을 해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당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배부른 만큼의 배부른 자들의 향락을 추구하는 모습,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예술적 표현 그리고 삶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진한 감동으로 만들어내는 이러한 순수예술의 본질이 왜곡되어 버리는 그저 향락문화와 같은 맥락으로 접근해버리는 요즘의 모습에 인간적인 비애가 마음 한켠으로 밀려오는 것 같았다.
요즘은 대도시와의 거리도 훨씬 가까워져서 문화적인 갈망이 있는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는 이 척박한 시기에 참으로 30여년을 한결같이 유지해온 순수예술정신이 참으로 감동스럽게 한다. 이 예술가의 정신들이 그대로 여수의 정신으로 녹여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