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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광양 '길호 횟집' 역사 속으로

강정훈·여미자 부부의 일생 고스란히 남아

  • 입력 2017.08.23 18:05
  • 수정 2017.08.23 22:13
  • 기자명 정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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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길호 횟집이 마지막 영업을 마쳤다.
30여 년 넘도록 한결같은 ‘마음’과 정성담긴 ‘맛’을 선보이던 길호 횟집. 이제 길호 횟집의 정겨움은 기억 속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됐다.

다소 투박해 보여도 깊은 맛을 내던 밑반찬들과 냄새에 한 번, 맛이 두 번 놀라던 장어구이의 감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이 됐다.

30년 전 길호는 작은 섬 마을이었다. 굴과 바지락을 채취해 생계를 영위하던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작은 선착장 주위로 10여 개의 횟집도 즐비해 있었다. 강정훈 대표와 길호 횟집의 고향은 ‘길호’다. 길호가 매립돼 흔적이 사라지기 전부터 길호 횟집은 자리를 지켜왔다. 매립이 되고 난 후에도 터만 옮기고 상호는 그대로 가져왔다.

   
▲ 길호횟집을 찾은 올림픽 국가대표선수단 사진을 들고 있는 강정훈 씨

제철소가 들어오기 전, 강정훈 씨는 여수에서 고기잡이 배를 탔다.

한 번 나가면 12일 동안 바다에 머물렀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높은 파도에 배가 뒤집힌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운이 좋았다. 강정훈 씨는 “배를 타면서 죽을 뻔한 적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다행히 구조가 돼 살아날 수 있었다”며 “생계였기 때문에 쉽게 관둘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0년이 넘도록 해왔던 일을 갑작스레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관뒀다. 홀아버지를 모시러 여수에서 고향인 길호로 다시 돌아왔다. 길호로 오기전, 25만원을 주고 작은 배를 하나 샀다. 우선 새우나 작은 고기라도 잡아 팔 요량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배를 타고 들어오면 자루모양 그물인 호망 작업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인 여미자씨를 만나 길호 횟집을 차렸다. 부부에게는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강정훈 씨는 “길호횟집을 운영하면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이들을 교육시켰다”며 “횟집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인생 전부였다”고 말했다.

힘든 일도 많았다. 식당을 오는 모든 손님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더 정성껏 손님을 모셔야겠다고 다짐했다.

길호 횟집은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광양에서 길호 횟집은 ‘이정표’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길호 횟집을 중점으로 이순신대교가 있고, 먹거리 골목이 즐비한다. 길을 헤매던 사람에게도 “길호 횟집 옆으로 있는 집”이라고 하면 “아!”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길호 횟집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다녀간 사람들도 많았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 광양축구위원, 드래곤즈, 제철소장, 영화배우 최민수도 다녀갔다. 빛바랜 사진 속으로 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강정훈 씨는 그동안 길호횟집을 찾아준 모든 고객들에게 “길호횟집을 찾아준 모든 단골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며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주인들도 나이가 많이 먹었다. 이제는 여행도 다니고 편히 쉬고 싶다. 많은 고객들에게 갑자기 문을 닫게 돼 미안하고 죄송하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길호횟집은 이제 추억이 되었지만, 많은 세월동안 함께 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세월이 갈수록 더 진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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