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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와 익수형제의 죽음③

행정저수지 공사판으로

  • 입력 2018.09.24 13:38
  • 수정 2018.10.16 13:40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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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한밑천 잡겠구나 하던 차에 본전도 날려 버리고 무엇보다도 놀란 가슴에 당장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달포 남짓을 놀다보니 처자도 있는데 빈둥거릴 수가 없었다. 그것이 광수의 성격이기도 했다.

그래서 두 형제가 돈벌이로 나선 것이 해방 전부터 접치고개 아래다 막고 있는 행정저수지공사판이었다. 

광수와 익수가 공사를 했던 접치 행정저수지

주암면의 동쪽 끝자락인 접치고개아래 행정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행정저수지는 해방되기 이태 전인 1943년 9월 1일 수리조합에서 주암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착공을 하여 멀리 외지에서도 기술자와 인부들이 와서 공사를 하였으나 해방이 되면서 반 이상을 막은 상태로 중단이 되었다가 일본 놈들이 물러가고 다시 공사를 시작하여 거의 완공되어 가던 중이었다.

그래서 광수형제는 더 이상 놀고 있을 수만 없어 날마다 이곳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외지인들과 함께 함바에서 먹고 자며 일을 했다 집이 있는 문길은 같은 주암이라 거리가 샛길로 십리도 되지 않아 아침으로 조금만 서두르면 집에서 다닐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부인과 두 살배기 아들이 있음에도 함바 생활을 한 것은 아침저녁으로 서두르는 새벽걸음이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그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새벽밥을 먹고 일터로 나갔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비좁은 집의 불편함 때문이었다.

당시 시골의 가난한 집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식구는 많고 방이 모자라 부모자식은 물론 삼대까지도 비좁은 한방에서 오글오글 자는 집이 있을 정도였다. 방이 두 개인 광수집도 밤이면 어머니와 며느리(광수 처) 등은 큰방에서 자고 광수는 늦총각 익수와 둘이 문간방에서 잤다. 그러니 각시와 아들이 있는 집의 잠자리보다는 오히려 함바 생활이 자유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본래부터 괄괄한 데가 있는 두 사람의 성격에다 외지를 돌며 장사를 하는 동안 객지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살아본 그들이었기에 제법 거친 사람들이 모여 술과 노름도 있고 늘 시끌벅적한 그곳이 오히려 편했다.

그러나 무슨 운명의 날벼락인지 일을 시작한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두 형제는 좌우가 부딪는 난세의 혼돈에 이성이 마비된 한 인간에 의해 참담한 동시죽임을 당해 한 많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스물아홉의 광수와 꽃다운 스물네 살 익수 형제가 공비들과 내통을 의심받아 한꺼번에 총을 맞고 붉은 물을 다 쏟아내고 검게 굳어버린 몸으로 거적을 둘러쓰고 접치고개에 누워 밤바람을 맞으며 제발 좀 나를 데리러 오라라고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지만 연락이 닿은 것은 다음날 오후였다.

그때 광수 집은 만주에서 돌아와 광수아버지가 죽은 뒤로 큰딸은 먼 친척의 소개로 어느 나이 많은 남자를 따라 광주로 갔고 막내는 서울로 남의집살이를 떠나 며느리와 돌 지난 손자 셋이서 살고 있었다.

아무리 전화가 없는 때라지만 반시간 남짓이면 도달 했을 거리에서 일어난 엄청난 소식이 하루가 더 지나서야 겨우 일보러 나간 동네 사람에 의해 그것도 소곤거림을 듣고 겁먹은 얼굴로 알려온 것은 사상 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의 소용돌이가 인륜마저도 가로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광수네 집 마당에는 상문이 조샌의 뒤를 따라 소문을 듣고 달려 온 친척과 이웃들이 무섭고 안타까운 얼굴로 광수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기를 바랐지만 내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큰어무니, 문 좀 열어보시오.”

광수보다 여섯 살 아래인 작은집동생 장수가 툇마루위로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 흔들며 목청을 높여 불렀다. 그래도 문을 열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당숙모가 “어이 정재로 한번 들어가 보소.” 했다

헛기침으로 말뜻을 알아차리고 정재 문을 열고 들어가 쪽문을 밀어보니 밀려 났다 허리를 굽혀 고개를 디밀었으나 방 가운데 윗목을 보고 앉은 큰어머니는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큰어무니 좀 나와 보시오. 우선 말부터 들어보고 찾으로 가든지 해야 헐거 아니요.”

했으나 여전히 대꾸도 안했다.

하는 수없이 방으로 들어가 문고리를 풀고 방문을 열어젖히자 모두가 몰려들었고 당숙모가 들어와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귀찮다는 듯 일어서서 밖으로 나오면서도 여전히 입을 다물고 사람들과는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어께를 부딪치며 마당으로 나갔다.

뒤늦게 쫓아온 동내 유지 조병학 어르신이 광수어머니가 앞장서야 같이 가서 데리고 올 것이 아니냐고 달랬으나 그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나설 생각은 아예 않고 부엌으로 갔다 뒤 안으로 갔다 하며 아무거나 만지고 붙잡아 덜그럭거릴 뿐이었다.

그제야 밭에서 돌아온 광수 처는 등허리에 아들을 붙이고 열려 있는 사립문으로 들어서며 마당의 분위기를 살폈다. 장수 처와 당숙모가 재빨리 앞을 가로막아 문간방으로 밀고 들어갔다. 잠시 후에 목소리를 삼키며 흐느끼는 소리와 당숙모의 달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한참을 허둥대던 광수어머니는 여러 사람이 보내는 눈빛에 눌렸는지 한마디씩 하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는지 갑자기 사람들을 향해 걸어오더니

“나 무서와서 못가.”

하고서는 그대로 밖으로 휑하니 나가 누가 따라붙을 시간도 주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문간방에서 나온 당숙모가 곧 돌아 올껀께 모두들 내려가시오. 하자 조병학 어르신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하나 둘 돌아가고 장수와 친척들 몇 사람만 남아서 기다렸다.

누군가가 우리가 그냥 가서 지고 내려 올것인디 그랬는 갑네, 그러자 옆에서, 거그를 아무나 가면 된다요? 주인이 허가를 받아 갖고 앞장서야 되는 것이제, 하니

『-그런디 뭣 땜시 저러는지 속을 모르겄그만 이~.

-오직 속이 상허먼 저럴 것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

-글씨 그 맘을 누가 알겄소.』

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마디씩 했지만 어찌 광수 어머니 맘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설마 어디 멀리 갔으랴 곧 돌아오겠지, 하고 기다렸으나 어둠이 지붕위로 내려앉아도 오지를 않아 친척들이 여기저기 찾아 나섰으나 보이지가 않더니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야 휘적휘적 집 앞에 나타났다. 당숙모와 장수어머니가 어디를 혼자 그렇게 돌아다니느냐고 책망하듯 묻자 언제 그랬냐는 듯 총한 눈빛을 보이며 또렷한 말로

“암시랑토 않은께 걱정들 말고 모두 돌아가라.”

하고서는 방으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그래도 맘을 놓을 수가 없어 장수는 어머니와 함께 자정이 다되도록 옆에 앉아 있다가 잠이든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장수는 눈을 뜨자마자 어머니를 모시고 큰 집으로 달려갔다.

앞장선 장수가 사립문을 들어서며, 큰어무니 기시요오, 하고 불러보았으나 대답은 없고 집안이 냉랭하였다.

아차 싶은 마음에 방문을 여니 큰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 다시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문간방문을 열어 보니 광수 처는 거의 실신한 사람처럼 아이를 붙들고 앉아 있었다. 뒤를 이어 당숙이랑 당숙모 그리고 친척 이웃들이 따라 들어왔다.

장수가,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개비요. 멀리 가지는 안혔을 건께 여자들은 집에 있고 남자들이 모두 나가 찾아봅시다”

하자 누군가

 “혹시 혼자서 접치로 가뿐 것 아니여?”

라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러지는 안 혔을 것이요. 하고 한마디씩을 하며 갔을 만한 곳을 뒤져보기로 하고 두 패로 나누어 양쪽으로 나섰다. 집주변 새 터에는 몇 집이 안 되니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때 나이 많은 당숙이 장수에게, 혹시 즈그아부지 뫼 있는디로 한번 가보소, 했다.

예에, 하고 대답을 하는 순간 거기에 가면 꼭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장수는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이든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좀 다르구나, 하면서 신더리재 방향에 있는, 옛날에 광수네가 짓던 밭두렁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제일 먼저 앞서간 사람이 뒤돌아서서 “여그 기시요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모두 허겁지겁  달려가보니 뼈만 앙상하게 마른 할머니가 서방 묏가에 쭈그린 채 쓰러져 있었다.

“살았는가 죽었는가? 얼른 업소.”

발이 보이지 않게 집으로 달려 방에 눕히고 살펴보니 다행히 숨을 거두지는 않아 방에 불을 때고 여자들이 달려들어 주무르고 입에 물을 떠 넣고 했지만 쉽사리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서너 시간이나 지났을까,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점심 무렵이 다 되었을 때 몸을 꼼지락 거리더니 눈을 떴다. 옆에서 초점 흐린 눈을 굽어보며 광수어무니 어디 말 잠 해보시오, 하고 불러도 듣는지 못 듣는지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그 정도가 되자 일단 한숨을 놓고 장수 집사람과 당숙모를 남기고 남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큰 마을로 돌아갔다. 저녁이 되자 장수가 넘어와서 집사람을 보고 좀 어쩐가? 뭣은 좀 묵었고? 하고 물으니 당숙모가 나서서 아까 보담은 조까씩 더 움직이는 것 같기는 허다마는 내나 한 가지라고 하였다.

“얼른 정신을 채래야 헐 것인디 저녁에는 자네가 여그서 자야 겄네”

하고 집사람에게 말하니 당숙모가

“혼자서 어떻게 잔다냐? 나허고 항꾸네 잘 것인께 니는 걱정 말고 내려 가그라” 

하여 어두워 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고생들 하라, 하고 내려갔다.

 

나 무서워서 못가

닭이 세 번째 울었든가 접치 쪽이 부옇게 트여 오는디 여태 꼼짝도 않고 누워 있던 광수어무니가 갑자기 일어나면서 무슨 말인지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두 사람이 달려들며 말려도 소용이 없고 다 죽어가던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억지로 붙들 수가 없어 따라 나가니 마당으로 내려가자 접치를 바라보고 익수야 광수야 를 부르짖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사이사이 흐느낌에 묻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섞어내며 몸을 앞뒤로 흔들고 손으로 땅을 후비며 몸부림을 치다가 마침내 정신 줄을 놓아 버리는가 싶더니 방으로 옮겨 눕히니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이 되어 깨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밥을 달라고 하여 정신없이 먹고 나더니 멀쩡한 사람처럼 다시 눕더니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는 해질 무렵에야 깨어나더니 우두커니 앉아서 중얼거리다 잠이 들고 또 일어나서 중얼거리기를 반복하는 것이 영락없이 실성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사람처럼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나가 손수 밥을 차려먹고 옷을 챙겨 입더니 휘적휘적 큰 동네로 내려갔다. 만나는 사람들이 인사를 했으나 몹시도 바쁜 사람처럼 지나치는데 만약 눈동자를 보았다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골목으로 들어가 한집 문 앞에 멈춰 서더니

“동환아 여그 광수하고 익수 안 왔냐아”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이어서

“일환아! 광수 익수야!”

를 계속 부르다가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집 저집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문길 새터 사망자 숙부 한장수 증언자 댁

“광수어무니 왜 이러시오?”

이미 실성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붙들고 일으켜 세워 작은집인 장수네 집으로 데리고 갔다.

“큰어무니 정신 차리시오. 왜 놈으집 앞에서 그러시오.”

하고 장수가 달래자

“동환이 오라 그래! 나 순사 무서와!!”

하고 횡설수설 하면서 모여든 사람들을 낯선 사람 훑어보듯 초점 없는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광수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동네 유지인 조병학 어르신이었다.

“광수 어머니 순사 안 오요. 동환이 조금 있으면 올 테니 걱정 말고 집으로 갑시다.” 

하고 손을 잡아 흔들자 무슨 말로 알아들었는지

“나 무스와서 못가.” 

를 반복하였다.

이미 제정신이 아님을 안 조병학 어르신은 세상 참!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광수어머니가 문 앞에 쓰러져서 부른 동환이와 일환이는 익수와 광수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 마을의 좌익선동자들은 사회적 분위기와 유혹에 망설이는 그들 형제를 거의 반 강제적으로 입산시켜 빨갱이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입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조계산에서 마을로 내려왔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소동이 벌어졌지만 동생 동환이는 달아나고 일환이만 붙들렸다.

다행이 일환이는 마을사람들의 적극적인 대변과 유지들의 도움으로 자수자가 되어 경찰들을 도와 빨갱이를 잡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처구니없게도 형은 경찰보조원이 되어 자기 동생을 잡으러 다니는 꼴이 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저녁에 동환이가 양식을 구하려고 건너편 등계산에서 내려와 자기 집으로 가는 길에 불안해서 그랬는지 익수 집에를 들렀었다. 광수어머니는 불쌍한 동환이에게 밥을 먹이며, 일환이를 보드라도 자수하면 괜찮은께 자수하라,고 달랬다. 그러나 동환이는 아무 말없이 허겁지겁 밥그릇만 비우고서는,

“엄니 혹시라도 내가 잽혀도 여그 왔다는 소리는 죽어도 안 헐 것인께 엄니도 절대로 모른다 그러시오”

하고는 두리번거리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그것이 광수어머니가 착했던 익수의 친구 동환이의 살아 있는 모습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동환이가 가자재로 쫒기다가 토성칠교(파인힐골프장 내) 아래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쫙 퍼졌다.

당시 주암은 여순 사태가 발발하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좌익 활동이 갑작스럽고 혼란하게 파고들자 뭣 모르고 휩쓸린 많은 젊은이들이 조계산 등으로 입산을 해버린 바람에 한 아들은 공비가 되어 쫒기고 다른 아들은 경찰이 되어 형제에게 총을 겨누며 잡으러 다니는 집안이 더러 있었으니, 이러한 기막힌 현실을 겪어야 했던 부모의 심정을 감히 누가 이해할 수 있다 할 것인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역사의 한 그늘 치고는 누구도 휘말리지 말아야 할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이었다.

광수어머니의 정신은 날이 가도 돌아 올 줄 모르고 점점 심해졌다.

헤헤 웃으며 이웃마을까지 돌아다니는가 하면 사람을 만나면 잔뜩 겁먹은 얼굴로 숨는 행동을 하면서 순사 무서와, 반란군 무서와를 반복하고 다녔으나 결국은 광수아버지의 묘로 가는 샛길에 있는 통나무를 건너지른 작은 개울에 웅크린 채 죽어 있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발견하고 남편의 묘 옆에 장사지냈다.

그래서 광수형제는 끝내 사랑하는 어머니의 손을 잡지도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몇 삽의 흙 이불에 덮여서 접치고개에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2009년.

 

* 이 이야기는 2009년 광수와 익수 형제가 살았던 주암면 문길마을에 생존해 있는 작은집 사촌 한 장수(86)옹을 수차례 방문하여 고인들의 일생에 대한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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