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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이야포는 말한다'

연속보도.... 69주년 맞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및 제막식 열려
시민단체 및 주민 80명 참석해 희생자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 촉구
추모시와 추도사 함께 하며 슬픔나눠.... 마지막 헌화 퍼포먼스로 마무리

  • 입력 2019.08.04 13:37
  • 수정 2019.08.08 07:05
  • 기자명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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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의 아름다운 섬 전남 여수시 남면 안도(安島). 이곳에 있는 이야포마을은 '오메가'처럼 생긴 천연 포구가 있다. 이곳에 69년 6.25 전쟁 당시 미군폭격기 4대가 350여명을 태운 피난선을 공격해 격침됐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950년 8월 3일 발생한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으로 150여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다쳤다. 특히 조기잡이 어선을 폭격해 10여명이 사망한 8월 7일 횡간리 두룩여사건과 여자만 미군폭격사건으로 이어졌다. 3일 본지와 해양구조단여수구조대, <여수뉴스타임즈>가 공동 주관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및 제막식 행사를 연속보도한다.

 

[8신] 중학생이 촬영한 미군폭격사건 드론영상

69년 전 피난민 학살이 자행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를 드론으로 촬영해 제작한 중학생 '드론영상'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여수중 3학년 윤광래군과 여수중 2학년 윤광연 형제다.

이들 두형제는 드론조종과 드론촬영 전문가 직업을 꿈꾼다. 특히 전남도지사배 보물섬 찾기 영상콘테스트 및 공군참모총장배 드론레이싱 대회등 비롯 각종 촬영공모전에 입상한 수상경력이 있다.

왼쪽부터 여수중 3학년 윤광래군과 여수드론교육원 고동운 대표 그리고 윤광연 여수중 2학년 형제의 모습

추모행사를 촬영한 윤광래군은 "드론촬영을 접한지 1년 8개월 동안 열심히 연습을 하며 많은곳을 다녀보았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런 좋은 기회가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625때 이야포미군폭격사건을 모르고 있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동생 윤광연군은 "촬영하기 전에는 이야포 해변 미군폭격사건의 역사적 배경을 몰랐다"며 "이번촬영으로 미군들의 무자비한 기습에 의해 희생당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추모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들을 직접 지도한 여수드론교육원 고동운 대표는 학생들을 데리고 현장을 찾았다. 추모제에 참가한 고대표의 말이다.

"우리 지역의 과거 역사적인 아픔의 장소에 와서 드론촬영 활동으로 조금이나마 그분들의 무고한 희생과 살아남은 가족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과거 잘못된 역사에 대한 온전한 법적 물질적 배상과 그분들의 명예회복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영상제작에 수고하신 여수드론교육원 드론촬영팀에 감사 드립니다."

<기사 이어집니다>

[7신] 하늘에서 본 이야포 추모제 드론영상

69년을 맞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식에 참가한 단체들이 추모식 행사를 다녀온 후 추모글이 줄을 잇고 있다.

당일 행사 때 드론촬영으로 행사를 기록한 여수드론교육원 윤승인 원장은 직접 제작한 추모영상을 보내왔다. 또 행사를 다녀온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수 남면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을 아십니까? 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여수교육원은 이날 고동운 대표를 비롯해 드론촬영팀 5명이 합류했다.

추모제 촬영중인 여수드론교육원 드론촬영팀

윤승인 원장은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3일 전남 여수시 안도에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및 표지판 제막식에서 여수드론교육원이 참여해 영상촬영을 했다“면서 ”특별히 초청받은 저희 교육원에서 행사에 함께해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윤원장은 이어 ”다시는 이러한 만행이 저질러져선 안된다“며 ”정치인들은 법안을 마련함으로써 이분들의 원혼을 달래드릴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의미있는 행보에 함께해 그날의 진실을 밝혀내고 억울한 시민들의 혼을 담아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이야포 미군포격사건 추모제의 모습

직접 제작한 드론영상 말미에 이민숙 시인의 '이야포를 아시나요' 시를 발췌했다. 영상에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의 진실규명에 대해 국가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밝힌다는 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드는 일

사람답게 산다는 건 진실해야 한다는 것

진실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하며

그 선함 아래 백성은 신의를 가슴에 심을 것입니다

여수드론교육원 윤승인 원장의 모습

추모제를 다녀온 윤승인 원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을 싣는다.

여수 남면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을 아십니까?

 

이 사건을 재조명하며 진실을 파헤치는 일을 나서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수넷통뉴스>, 해양구조단여수구조대, <여수뉴스타임즈> 희생자유족회,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등이 그분들인데요.

 

이분들은 수년간 준비하며 매년행사를 거쳐 올해 특별하게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및 표지판 제막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함께 한 여수드론교육원은 진실을 밝히는데 참여하게 되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고 이 땅에 다시는 이러한 만행이 저질러져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높여봅니다.

 

정치인들은 법안을 마련함으로써 이분들의 원혼을 달래드릴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기사 이어집니다>

[6신]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식 유튜브 영상

특별취재팀: 심명남, 오병종, 전시은

지난 3일 여수 남면 안도 이야포 해변에서 69년전 발발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식 및 제막식이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이날 본지 오병종 편집국장은 당일 진행된 추모식 행사를 전세계에 페이스북 생중계를 진행했다. 또 여수모든뉴스로 공유된 추모제 방송은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가운데 하이라이트 영상이 나왔다.

오국장이 만든 유튜브에 실린 17분 30초 분량의 '여수시 남면 이야포미군폭격사건 추모제 영상을 그대로 싣는다.

<기사 이어집니다>

참가자들이 추모식과 제막식을 가진후 한컷

[5신] 여천고 문예반 참가학생... 추도사후 숙연한 마음으로 '헌화'

여천고 2학년 이기범 학생을 비롯 고은준, 윤준혁, 하준영, 이진학 학생이 참여했다. 스스로 추모제에 참가한 학생들은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에 대해 몰랐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사건을 알리는데 앞장서 유가족들이 하루속히 진상규명과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이기범 학생이 대표로 추도사 낭독이 끝나고 모두 즉석에서 참가소감을 밝혔다. 이들 학생의 추도사와 참가소감을 싣는다.

추도사하는 여천고 2학년 문예반 이기범 학생과 친구들의 모습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도사(여천고 2학년 이기범)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야포 폭격사건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참석한 여천고등학교 2학년 이기범입니다.

 

먼저 이야포 폭격사건으로 희생당하신 피해자분들과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1950년 8월 3일 미군의 불법적인 안도리 폭격이 있었습니다. 그것에 의해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부산에서 남해안 도서로 피난중이던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150여명이 사망했고 50여명이 부상당했지만 정부는 6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로부터 정확한 진실규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주범인 미국, 이를 묵인한 정부뿐만 아니라 저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이야포 폭격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대한민국에 알려야합니다. 이 비극이 발생하고 69년이 지났지만 저는 이 행사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 조차도 모르고 지낸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생존자, 유가족 분들이 더 이상 마음고생하지 않도록 이 사건을 대한민국에 알리기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이야포 폭격사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생존자 유가족분들 앞에 꽃길만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아직 어리고 투박한 학생의 글이지만 저희 학생들의 진심이 희생자, 생존자, 유가족분들께 전해졌길 바랍니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을 알기위해 스스로 참석한 여천고 2학년 이기범, 고은준, 윤준혁, 하준영, 이진학이 추도사와 즉석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어 4명의 학생들은 즉석에서 참가소감을 밝혔다.

“부끄럽지만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을 몰랐는데 이번 추모제를 참가하게 되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 유가족분들이 보상을 빨리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2학년 고은준)

“오늘에야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 사실이 제 얼굴을 화끈케 만들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살고 있었던 여수에서 이러한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학년 윤준혁)

참가자들이 국화꽃을 이야포 바닷가에 헌화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

“이야포 폭격사건 추모제에 참가하기 전까지 이런 사건이 있는 줄 몰랐는데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직접 나서서 이 사건에 대해 알리는데 앞장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학년 하준영)

“지금까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에 대해서 우리 또래는 아무도 몰랐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렇게 심각한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려져서 진실이 밝혀지고 보상을 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학년 이진학)

'이야포를 아시나요' 직접 쓴 추모시를 낭독하는 이민숙 시인의 모습

<기사 이어집니다>

[4신] 참가자 울린 '이야포 추모제' 낭송시

이날 경건한 마음으로 엄숙히 진행된 추모식에서 샘풀인문학연구소장 이민숙 시인이 직접 쓴 추모시 낭독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야포사건을 바라보는 이민숙 시인은 “모든 암흑의 감춰진 비극의 역사는 절멸(絶滅)의 역사”라며 “이야포에서 한 잔 부끄러움을 올립니다. 이야포에서 죄송스러움을 올린다”라고 국가폭력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접하고 며칠에 걸쳐 시를 썼다는 이민숙 시인은 이날 여러명의 회원들과 참여했다. 이야포 추모시를 싣는다.

하늘에서 본 이야포 포구의 모습

 

이야포를 아시나요 (이민숙 샘뿔인문학연구소장)

 

흰 연꽃은 밤새 피어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걸까요

바알간 홍련은 또한 이 여름을 피고 지고 피우고 사랑하는데

진창의 어둠에서 거둬 올린 아름다움에 넋을 놓을 때

이야포에는 총소리 피튀김 아우성, 서러운 애기 울음소리,

엄마의 절규가 하늘로부터 쏟아 내리는 살상의 비극으로 뒤덮였습니다

 

아우성이 침묵으로 변하여 어언 70년!

살아있음에도, 죽었음에도,

그 참담한 하루, 죄 없는 목숨들 150여명! 아니 더 이상일 수도!

흘린 핏자국은 마르지 못 한 채 누군가의 강제가 있었습니까

 

민주와 정의와 인권이 국가의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한 줄 밝은 역사로 기록되지 못 했습니다

원한의 목소리들 침묵한 채, 죄 없이 고개 숙인 채

1950년 8월 3일의 이야포는 아직 미궁입니다

 

사실이라면 미궁일 수 없고

미궁이라면 이젠 명백한 역사의 한 줄로 밝혀 기록되어야 합니다

 

밝힌다는 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드는 일

사람답게 산다는 건 진실해야 한다는 것

진실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하며

그 선함 아래 백성은 신의를 가슴에 심을 것입니다

 

믿음의 꽃! 정의의 뿌리!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랄 수 없이 엄마를 사살해 버린

그날의 이유가 전쟁이었다면 그 오류를 인정해야 합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사과한다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해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어둠을 거두어야 할 때,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모든 암흑의 감춰진, 비극의 역사는 절멸(絶滅)의 역사!

어찌 우리가 외면할 수 있습니까

스스로를 유배시켜버린 사회와 국가가 완성할 수 있는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8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참담한 상처를 위로하는 의식을 치르고자 하는 우리들

이 하루가 더욱 죄스럽지 않도록

이 하루가 조금은 함께 웃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이 하루가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되돌려줄 수 있도록

 

이야포에서 한 잔 부끄러움을 올립니다

이야포에서 한 허리 죄송스러움을 올립니다

이젠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세상의 그 어떤 곳에서도 이러한 무고를 외면하지 않기를

 

사람이라면, 사랑이라면, 연꽃처럼 그 지극정성 받아 안아

화엄세상! 정의를 꽃 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국가라는 어머니됨을 소망합니다

두살박이 아이가 70이 되어 아직도 울고 있는 오늘을

껴안아주는 국가 대한민국을 염원합니다

 

이야포 폭격사건이 민주주의 밑거름이 되는 날을 바라봅니다

여수 앞바다 평화의 깃발로 나부끼는 현재와 미래,

우리 한껏 삶은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 것이므로

추모사를 낭독후 추모하는 이민숙 시인의 모습

<기사 이어집니다>

180여명의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돌재단을 쌓고 정성스럽게 재물이 차려졌다

[3신] 69년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피로 얼룩진 세월은 어느덧 69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및 제막식 행사장 해변은 가만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불볕더위였지만 참 평온했다.

180여명의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돌재단을 쌓고 재물이 차려졌다.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제사상이다.

이번 행사는 본지와 해양구조단여수구조대가 공동주관했다. 여수해양구조대를 비롯 시민단체와 마을주민 80여명이 참여했다. <여수뉴스타임즈>와 본지 회원들의 자발적인 후원은 눈길을 끌었다. 안도출신 한 독지가는 제사상을 직접 준비했다. 다른 회원은 국화국을 또 다른 독지가는 참가자들에게 수건을 기증했다. 여수시에서는 조계완 남면장을 비롯 김영배 안도중계소장이 함께해 행사를 지원했다.

특히 여수드론교육원 윤승인 원장과 고동운 대표를 비롯 4명의 드론촬영팀에서 드론을 띄웠다. 그리고 드론과 사진촬영을 병행한 정종현 작가는 연신 셔터를 누르며 사진을 제공했다. 여수드론교육원 드론팀이 제작에 나선 재능기부 영상은 곧 본지에 실릴 예정이다.

11시를 넘자 추모식이 시작됐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여수넷통뉴스> 엄길수 이사장이 인사말에 나섰다.

이야포 미군포격사건 추모위원회 공동대표 엄길수 이사장의 인사말 모습

“오늘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 일어난 69년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진상규명이 안되어 잊혀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에 대한 위로는 살아있는 사람이 책무입니다.

작년 추모제를 시작으로 올해도 <여수뉴스타임즈>와 여수해양구조단, 지역사회연구소와 많은 학자, 문학인, 당시 생존 피난선 생존 유가족, 그리고 현장을 목격해 증언해 주신 주민이 함께 했습니다.

여수시의회 지역구의원과 여수시가 함께해 주셔서 추모제와 제막식을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번행사가 유족들께 조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이곳에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조그마한 '평화공원'이 만들어지길 제안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을 되새기면서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길 희망합니다.”

한국전쟁미군폭격사건민간인희생자유족회포항지구 허맹구회장은 20대 국회에 계류중인 특별법 통과를 촉구했다

이어 한국전쟁미군폭격사건민간인희생자유족회포항지구 허맹구회장은 “다시는 역사에 이런 날이 없어야 한다”면서 “젊은 세대는 이 사건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허회장은 “왜 전쟁에서 부모형제가 죽어야 했는지 진실을 찾으려고 20년을 헤맸다”면서 “유가족 이춘혁씨도 20년을 헤매고 있다. 국가는 말로만 법법하지말고 실지로 배보상이 이뤄질 수 있록 해 달라”라며 20대 국회에 계류중인 특별법 통과를 촉구했다.

‘전문가 해설‘도 이어졌다. ‘여수역’을 쓴 양영제 작가는 유족이었던 이춘송씨가 그린 폭격전투기와 피난선 사진을 제시하며 왜 이 사건이 미군에 의한 ‘학살’인지 설명을 이어갔다.

1950년 6.25 전쟁당시 피난선의 모습. 소설가 양영제 작가는 "이야포에 격침된 피난선은 사진과 흡사한 모양으로 사람이 더 많이 탈수있는 2층 구조로 이보다 배가 더 컸다"고 설명했다(사진=양영제 제공)
‘여수역’을 쓴 양영제 작가는 유족 이춘송씨가 그린 폭격전투기를 보이며 슈팅스타와 모습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저는 사건을 반드시 알려 미군의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사건에 매달렸습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단순한 폭격사건이 아닙니다.

미군이 한국전쟁때 민간인을 오폭했다? 전쟁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변명하는데 이것은 그런 사건이 아닙니다. 엄연한 '학살'입니다. 전쟁와중에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노근리사건은 전선이 형성되어 되어 방어하는 가운데 민간인이든 인민군이든 학살이 일어났지만 여긴 산발적인 전투가 있었지만 전선이 형성된 곳이 아닙니다. 그러함에도 미군기가 태극기를 단 피난민선을 폭격한 것은 엄연한 학살입니다.

학살한 비행기 슈팅스타는 당시 B29이후 나온 최신 전투기였습니다. 이비행기는 작고하신 이춘송 유족이 그린 그림과 일치합니다. 대법원에서도 학살사건을 인정했지만 소멸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보상이 안됐습니다.

노근리사건도 처음 미국이 부정했지만 유가족의 엄청난 노력으로 클린턴이 '유감'이란 표현이후 노근리에 평화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엄청난 이야포사건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는 것은 참으로 여수시민으로서 답답하고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이싸움을 끈질기게 이어가야 합니다.”

추모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이춘혁 어르신(좌측 두번째)이 슬픔에 잠겨 지긋이 눈을 감고있다

부산에서 달려온 유일한 유족대표 이춘혁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당시 우리는 배(피난선)가 어디 가는지 모르고 이곳에 밤에 도착했습니다. 아침에 주먹밥을 먹던중 전투기가 날아와 폭격했습니다. 1차 폭격하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 2차 폭격에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때 당시 우리 가족 7명의 탔습니다. 아버지(44세)와 여동생(6살)은 배위에서 총맞아 돌아가셨고, 엄마(37세)는 나룻배로 건너오다가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배가 뒤집어져 업힌 남동생(3명)과 돌아가셨습니다.

4명은 죽고 나(16세)와 남동생(13세) 그리고 누나(18세)만 살았습니다. 시집간 누나는 옆에서 총맞은 아버지를 봐 전쟁 트라우마로  28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고 동생도 3년 전 세상을 떠나 이제 나 혼자 남았습니다.

여기계신분들이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게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표지판이 설치되어 고맙지만 비석을 설치해 누가 보더라도 6.25때 희생된 사건임을 알 수 있게 해주십시오."

350여명이 탄 피난선을 폭격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은 1950년 8월 3일 아침 안도 당산(우측)에서 이야포마을 해안(좌측)에 정박중인 피난선을 기총사격해 침몰시켰다고 증언했다

당시 미군폭격사건을 직접 목격한 이야포 주민 이사연씨는 20여년을 법정에 서며 목격담을 증언했다. 하지만 얼마전 혈액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투병중인 가운데 현장을 찾아 가슴을 찡하게 했다.

이씨는 “며칠전 전남대병원에서 암투병을 받고나와서 말할 기운도 없다”면서 “표지판에 쓰인 문구는 사실이다. 당시 너무 참혹했다”라고 증언했다. 이어 “앞으로 이 사건이 유족들 뜻대로 잘 해결되어 보상문제와 위령비가 세워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힘없이 말을 이었다.

지역사회연구소 박종길 이사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재조사를 강하게 촉구했다. 

지역사회연구소 박종길 이사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재조사를 강하게 촉구했다.

"20여 년 전 이춘송 선생님이 제보를 주셨지만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아 이 단어가 금기시 되었습니다. 98년 처음 <세계일보>와 <오마이뉴스> 오문수 기자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피난민이 통영에서 욕지도에서 2박하고 안도로 왔습니다. 당시 이야포에 10척의 멸치잡이 선단과 멸치막이 있었는데 호주기의 공격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슈팅스타인지는 더 확인해 봐야합니다.

이후 횡간도 두룩여와 여자만에서 연이어 미군폭격사건이 발생했는데 '확인불능'으로 처리했습니다. 다시한번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재조사가 이어져야한다는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분들이 살아 계실 때 반드시 배보상이 이뤄져합니다."

박희자 안도이장은 "처음엔 작게 시작했지만 나중에 잘자라 이야포에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후손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표지판 설치작업을 지켜본 박희자 이장은 “안도라는 지명이 편안한 안자를 썼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주민들이 많이 슬펐고 마을이 어지러웠다”라고 말했다.

박이장은 이어 “면장님을 비롯해 박성미 의원님이 도와줘서 표지판을 7월 10일부터 마련해 만들었는데 유족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며 "용두사미보다는 처음엔 작게 시작했는데 나중에 잘자라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후손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69만에 세워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표지판 제막식 모습
이야포에 세워진 미군폭격사건 표지판

이후 표지판 제막식이 열렸다. 사건발발 69년만에 설치된 표지판은 그동안 꿈쩍도 않던 지역에서 금기어로 묻혀있었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려는 많은 분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이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은 지역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지역구 박성미 의원이 발벗고 나섰기 때문에 표지판 설치가 가능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정치권에서 더 큰역할을 기대한다.

<기사 이어집니다>

피난선의 흔적을 찾기위해 수중탐사에 나선 여수구조대원들의 모습

[2신] 피난선 수중탐사에 나선 여수구조대

69년전 격침된 피난선을 찾기위해 3일 여수구조대 수중탐사팀이 추모제에 앞서 수중탐사가 시작됐다.

해녀들이 난파선의 흔적을 봤다는 마을 주민의 제보에 따라 다이버 4명이 투입됐다. 작년과 정반대편의 위치인 이야포 남쪽 해변이다. 김명곤 전 어촌계장은 ”해녀들이 이 야포 이곳 바다에서 작업을 하면서 바닷속에 시커먼 배 인물(선수)이 보인다는 얘기를 들려줘서 오늘 그 포인트를 알려주러 왔다“라고 말했다.

대원 4명이 다이버가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피난선의 흔적을 찾기 위한 수중탐색 모습

수중탐사 현장은 취재하던 <여수뉴타임즈> 곽준호 취재부장이 현장취재에 동행했다. 오늘의 의미에 대해 곽부장은 ”그동안 지역언론이 무심했다“고 말했다.

”69년 만에 두 번째로 이어지는 추모제인데 그동안 지역언론들이 무심했던 관계로 잊혀있던 역사가 하나씩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을 계기로 지역언론 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묻혀있던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아는데 함께 힘을 보탰으면 좋겠습니다.“

대원들이 수중탐색 펼치막을 펼친모습
수중탐색 도중 바닷속에 널린 폐어망에서 물고기가 갖힌 모습

장비착용을 마친 <여수넷통뉴스> 박정우 문화위원장은 여수구조대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오늘 입수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면서 “작년에는 처음 피난선이 침몰된 지역을 탐색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는데 오늘은 꼭 찾겠다“라며 파이팅을 외쳤다.

해양구조단 여수구조대 김남중 대원은 ”우리지역에서 69년 전 뼈아픈 사건이 있었다는 것에 통감을 느낀다“면서 ”오늘 좋은 자료를 발굴해 미약하나마 큰 힘을 발휘하고자 이렇게 참석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곳에 추모비를 세웠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김회철 대원은 ”가슴이 많이 아프다“며 ”우리 지역에서 일어났던 뼈아픈 사건을 통감하며 물속에 들어가서 잔해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위원회 공동대표인 여수구조대 박근대장이 바닷속 수중탐사를 설명하는 모습(사진=정종현 사진작가 제공)

이후 40여분 만에 수중탐색을 마쳤다. 하지만 오늘역시 어떠한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69년 전 침몰한 피난선 수중탐색을 마친 여수구조대 박근호 대장의 말을 직접 들어봤다.

“조금전 구조대원 4명과 전어촌계장님이 수중에 해녀들이 작업하다 난파선의 잔해가 있다는 곳을 찾아봤는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심이 10~12m 나오는데 주변을 탐색해보니 모래와 자갈밭이었습니다.

오늘은 못 찾았지만 해녀들이 봤다는 위치가 있으니 추후 해녀와 어촌계장님과 상의해 다시한번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시민들과 계속 함께 이야포 사건의 진상규명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태풍의 길목인 이야포. 이곳에서 69년전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잔해는 영영 찾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이곳 마을 주민은 "당시 태풍에 피난선이 해변으로 떠밀려 누군가 엔진은 떼어갔고 부서진 피난선의 잔해 일부가 해변에 떠밀렸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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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주년을 맞은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식 및 제막식' 가는 도중 시민단체가 해상에서 펼친 퍼포먼스 모습(사진= 박근호 제공)

[1신] 미군폭격지 이야포 가는 길

3일 날씨 우려했던 바다날씨는 장판처럼 잔잔했다. 바다가 삶터인 어부들의 마음은 늘 두가지 양면성이 존재한다. 바로 지옥 아니면 천당의 모습이 아닐까. 어머니 품속처럼 평화로운 바다는 때론 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삼킬듯 변해버린다.  

특히 물속 그물을 물밖으로 잡아당길 때 쓰이는 ‘로라‘라는 기계는 때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줄을 잡아당기다가 밧줄이 휘감기면서 큰 사고로 이어져 많은 어부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래서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행사장 가는길 어선과 마주친 모습(사진= 박근호 제공)
추모제 행사 가는길에 여천항을 지나고 있는 모습(사진= 박근호 제공)

그래서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곳이 바로 '바다'다. 이렇듯 바다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오늘처럼 장판 같은 평온한 날에는 한없는 평화로움이 몰려든다. 하지만 바다가 아무리 변덕스럽지만 미물인 사람만 하겠는가?

그래서 옛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하지 않나?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복잡한 맘처럼....

아침부터 행사를 위해 이야포가는 길이 분주하다. 차편은 돌산 신기항에서 집결했고, 우린 웅천항에서 출발했다. 한참을 출발했는데 하루 전부터 이상했던 엔진이 갑기 멈춰 섰다. 우려했던게 현실로 나타났다. 선장님과 엔진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30여분을 해맨뒤 문제점을 찾았다. 바로 기름을 공급해주는 부분이 문제였다. 문제점을 찾으니 해결방법이 바로 나왔다. 성공이었다.

그동안 골머리를 앓았는데 말끔히 해결되어 추모제 가는 발길이 한결 가벼워졌다. 속도를 높여 시원한 남해안의 바다를 가로 질렀다. 아마도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들이 우릴 돌보나 보다. 한참을 달리니 횡간도 해상에서 앞서가던 돌산-여천항행 여객선을 앞질렀다. 두룩여에서 한가로이 낚시하는 풍경이 눈에 띄었다. 배는 바다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추모제 행사를 위해 여객선으로 출발한 일행들이 상쾡이 보호구역에서 펼침막을 든 모습(사진= 박근호 제공)
추모제에 참석한 회원들이 안도대교에서 일제불매 펼침막을 들었다(사진= 박근호 제공)

이윽고 안도대교가 보인다. 이야포 추모제와 제막식 행사 펼침막 그리고 일행들이 미군폭격피난선 수중탐사를 알리는 펼침막을 폈다. 배는 안도대교 아래를 한 바퀴 빙~ 돌았다. 다리위에서 박근호 대장이 사진을 찰칼 찍었다. 높다란 다리위에서 바라본 수중탐사선이 눈에 확 띤다.

69주년을 맞은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식 및 제막식' 가는 도중 시민단체가 해상에서 펼친 퍼포먼스 모습(사진= 박근호 제공)

물살을 가로질러 이야포 해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벌써 바쁜 바닷일을 뒤로하고 김명곤 전 안도촌계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수해양구조단 대원 4명이 수중탐사 준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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