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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4시간, 사방이 눈 천지인 설국에 가는 법

[몽골여행기] 홉스글 서쪽 저지대 다르하드를 가다

  • 입력 2020.02.04 12:26
  • 수정 2020.02.04 15:00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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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영하 30도 다르하드 지역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홉스글쪽으로 펼쳐지는 눈덮힌 장엄한 산맥은 남미의 파타고니아 설산과 비슷했다 ⓒ오문수

죽기 전에 사방이 눈에 둘러싸인 설국을 방문해 보고 싶었다. 그것도 원주민들이 하얀 순록을 키우고 있는 마을을 방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북극이 가까운 알래스카나 시베리아까지 도전하기에는 쉽게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해결책이 있다. 한국에서 가깝고 쉽게 갈 수 있는 몽골 최북단 다르하드 지역에서 순록을 기르며 사는 차탕족 마을을 찾아가면 된다.

교통편이 열악한 다르하드 저지대

몽골 북부지역은 수천년 동안 튀르크어를 쓰는 시베리아 부족들과 훈족, 위구르족, 몽골족으로 이루어진 스텝 부족 대연맹 사이에 위치한 국경지대였다. 시베리아 부족 중 일부가 지금까지 몽골에 살고 있는데 그 중 홉스글 아이막 북쪽의 차탕족이 유명하다.

홉스글 호수에서 서쪽으로 약 50㎞쯤 가면 벽처럼 높이 서있는 산맥 뒤로 다르하드 저지대라는 넓은 평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대초원과 숲, 호수 300여개가 어우러져 황량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차탕족마을로 가는 도중에 얼어붙은 차강노르 호수에서 홉스글 쪽에 장엄하게 펼쳐진 눈덮힌 산맥을 바라보니 남미의 파타고니아 모습이 떠올랐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설국에서 기념촬영한 일행들 ⓒ오문수
얼어붙은 차강노르 호수 위를 달리던 푸르공 운전사 바인졸이 갑자기 차를 세우며 눈밭에 난 발자국을 설명해줬다. "어젯밤에 지나간 발자국 같은데 왼쪽 것은 여우 발자국이고 오른쪽 것은 늑대 발자국이에요" ⓒ오문수

이 지역은 접근하는 루트가 워낙 어려워서 계곡의 거주민들 중 일부인 차탕족만 여전히 전통적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이곳은 강력한 샤머니즘의 중심지로 신목(神木)에 하닥을 걸쳐놓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닥은 몽골사람들이 신성한 장소나 신성한 나무 등 신앙대상물을 장식하는 데 사용하는 가늘고 긴 비단 천을 말한다.  

얼어붙은 차강노르 호수에서 1미터 두께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는 현지인들. 잡은 고기를 얼음 위에 두자 2분도 안되어 얼어죽었다 ⓒ오문수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염소들이지만 풀이 안보이자 작은 나무를 뜯어먹고 있다 ⓒ오문수

몽골에서 가장 물이 좋은 지역이며 흰 잉어와 송어가 많이 서식한다. 또한 연어와 타이멘(몽골연어)도 잡힌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여름철에는 벌레가 들끓어 모기장과 살충제를 단단히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여름에는 진창길이 되어 차강노르 호수 인근부터 말을 타야 하는 험난한 길이라 몽골인들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고 한다.

승마 경험이라고는 작년 타왕복드를 올라갈 때 해본 5시간 밖에 안 되어 자신이 없다. 그래서 선택한 계절이 겨울이다. 겨울에는 영하 40도에 가까이 내려가기 때문에 모든 길이 얼어붙어 차량운행이 가능하다.

몽골 가이드이자 4륜구동차량을 운전하는 '저리거'뿐만 아니라 푸르공 운전사 '바인졸'도 이 지역은 처음이라고 한다. 해서 홉스글 주도인 '므릉'에 도착하자마자 홉스글이 고향인 푸르공 운전사 '저거'가 합류했다. 길을 안내해줄 가이드 역할 뿐만 아니라 교대로 운전하기 위해서다.

므릉의 사슴돌 유적지 '오시깅 으브르' 탐방을 마친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올랑 올(Ulaan Uul)'이다. 홉스글쪽으로 가던 차량이 도로를 벗어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었다.

영하 30도 초원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을 보고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유목민이 일행을 찾아왔다 ⓒ오문수
영하 30도에서 라면을 먹다 혼이 난 일행은 차탕족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오토바이 타고 왔던 유목민에게 부탁해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일행이 영하 30도에서 라면을 끓여먹던 모습을 애처럽게 보았던 유목민은 흔쾌히 점심을 차려줬다. 맛있는 점심을 먹은 일행이 유목민 가족과 기념촬영했다 ⓒ오문수

유목민 게르와 축사가 있는 양지쪽 산자락에는 군데군데 눈이 녹아있다. 염소와 양들은 앞발로 눈을 헤치며 풀을 뜯고 있었다. 일행을 태운 차는 러시아 국경이 가까운 북쪽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죽기 전에 설국에 가보겠다고 용감하게 도전했지만 일말의 두려움이 엄습한다. 차가 눈에 미끄러져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차량이 눈속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건 아닐까? 완전히 얼어붙지 않은 홉스글 호수를 달리던 차량이 빠져 차량을 건지지 못했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혹시 몰라서 여분의 통에다 기름을 준비했지만 불안하다.

걱정하던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설원을 달리던 푸르공이 180도 빙그르르 돌기도 하고 때론 360도 돌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도로가 아니고 전후좌우로 차량이 없어서 차량이 미끄럼을 탄 것 뿐이다.

날은 어두워지는 데 우리가 쉴 곳이 나오지 않는다. 가이드이자 운전수인 저리거가 차를 몰고 리조트로 갔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눈길을 헤치며 앞에 가는 거대한 트럭을 추월하자 승용차가 몇 대 보인다. 행색으로 보아 관광객인 그들을 보며 안심이 됐다. 그들 중에는 지역을 잘 아는 가이드가 있어 쉴 곳이 가까워졌다는 걸 알았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살아있는 '홉스글 올란 타이가 특별보호구역'

앞서 가던 승용차에서 관광객들이 멋지게 생긴 오보를 촬영하고 있었고 게시판에는 '홉스글 올란 타이가 특별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제대로 오긴 왔나 보다. 보호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중심으로 작은 오보들이 멋진 자태를 보여준다.

다르하드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오보로 이색적이다. 특히 첫번째 보이는 오보의 맨 상단에 나무로 새를 깎아 높이 세워 놓았다. 우리의 솟대가 이곳에서 유래된 건 아닐까? 다르하드 지역은 몽골 샤머니즘이 강력한 지역이다 ⓒ오문수
다르하드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표지석. 옛 몽골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을 새겨놨다. 차탕족 뒤로 독수리와 늑대 모습이 보인다 ⓒ오문수

동행한 신익재 씨가 다가와 "선생님! 저 오보가 지금껏 보아온 오보들과 다른 점이 없습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껏 보아온 천여 개의 오보와 다른 점이 있었다. 삼각형 '티피'처럼 생긴 오보 끝에 조각한 새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한국에서 말하는 '솟대'의 모습과 똑같다. 새는 인간과 하늘과 땅과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샤머니즘은 모든 만물을 존중해야 한다는 자연법적 인식체계가 기저를 이룬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솟대는 이 지역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영하 40도 가까운 날씨가 준 쓰라린 체험

차탕족 마을을 방문하기로 결심하고 그곳의 겨울 기온을 체크하니 영하 40도 가까이 내려간다는 기록이 있었다. 군 시절 남한에서 가장 추운 곳인 화악산 아래에서 3년을 지내보았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았다. 당시 한겨울 추위가 영하 20도를 넘나들었고 가장 추울 때는 영하 30도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영하 40도 가까운 날씨에 '올란 올' 숙소 마당에 세워둔 푸르공이 시동이 걸리지 않자 몽골 운전사 '저거'가 커다란 토치로 엔진을 데우고 있다. 두 시간 후에야 시동이 걸렸다 ⓒ오문수

깜깜한 밤에 올란올에 도착해 몽골운전사 지인의 '저거' 지인의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잡았다. 숙소에 배낭과 짐을 나르기 위해 차문을 열면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폐부를 찌른다. 차문을 여는 순간 냉기 때문에 기침이 나온다. 다행히 숙소주인이 난로에 장작불을 지펴놔 숙소는 따뜻했다.

일행 모두는 두꺼운 겨울 침낭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불이 꺼지면 큰일날 것 같아 새벽까지 난로 당번을 하고 있는데 새벽 4시쯤 중무장을 한 '저거'가 밖으로 나가 푸르공에 시동을 걸었지만 꿈쩍도 않는다. 숙소로 돌아온 그는 커다란 토치를 들고 차량 밑으로 들어가 엔진을 데우기 시작했다.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엔진을 데우자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몽골운전사 저리거도 30분 동안이나 씨름을 하다 시동을 걸었다. 차탕족 티피에서는 너무 추워 네 명 모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하 30도 추위에서 라면을 끓이는 일행들. 장갑을 끼고 라면을 끓여 먹은 시간이 딱 30분이었지만 동상이 걸린 줄 알았다 ⓒ오문수
영하 30도에서 라면을 먹은 게 딱 30분. 동행한 신익재씨의 눈썹이 얼어붙었다 ⓒ오문수

차강노르 호수가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푸르공에서 커다란 버너를 내려 불을 붙이고 라면을 끓여 먹은 시간은 딱 30분. 장갑을 끼고 라면을 먹었는데도 동상이 걸릴 것 같았다. 동행한 신익재 씨의 눈썹은 얼어붙었다.

뿐만 아니다. 차강노르 호수에서 두께 1m쯤 되는 얼음을 깨서 고기잡는 현지인들이 잡은 고기 두 마리가 채 2분도 안 되어 얼어 죽었다. 그렇게 험난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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