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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정리하는 장농의 '봄날'

뉴질랜드서 플리마켓에 참가하며 중고품에 대한 인식 바뀌어
물건이란 필요한 사람이 사용할 때 가치있는 것임을 깨달아

  • 입력 2020.03.31 17:52
  • 수정 2020.04.01 15:43
  • 기자명 김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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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아름다운 가게'  나눔행사할 때 모습

나는 좀 번거롭더라도 하루 날을 잡아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모두 꺼내 하나하나 구별해서 처리하는 편이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중고사이트에 사진을 찍어 내놓기도 하고, 판매가 되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한다.

중고 물건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는 오래 전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면서부터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플리마켓 또는 게라지 세일이라 해서 햇볕 따뜻한 주말 사람들이 집옆 도로변 풀밭 위에 좌대를 펼쳐 놓고 쓰지 않는 물건을 팔곤 했다. 뉴질랜드 원주민을 ‘키위’라고 부르는데, 플리마켓에서는 이 키위 가족들 중 주로 어린 아이가 앞장서서 물건을 팔곤 했다. 일종의 벼룩시장이다.

“이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사용하던 것이고, 저건...”

키위는 플리마켓에 내놓은 물건을 가리키며 이 물건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죽은 사람이 사용한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고 파는 모습이 좀 생소했지만, 그들의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웠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그들은 물건이란 필요한 사람에게 올바르게 사용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환경보호운동의 일환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 않고도 물건을 재활용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 이유다.

재활용장에서 주워온 스티로폼 상자에 옷을 담아 전달한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할 옷

뉴질랜드에서 겪었던 경험을 통해, 이제껏 중고품을 단순히 ‘버리지 않은 쓰레기’라고 여기던 내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도 나는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쌓인 재활용품을 유심히 살피고 쓸 만한 것을 골라 전혀 다른 용도로 새롭게 사용한다. 또한 나 역시 인터넷을 통해 중고물품을 사고 팔기도 한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봄날, 여전히 한겨울인 우리집 장농문을 활짝 열어 봄소식을 전했다. 얌전히 봄나들이를 기다리던 옷들이 옷장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마음 먹은 김에 옷장을 정리해 안 입는 옷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고 싶었다. 얼마 전에도 사용하지 않는 가방을 중고 사이트에서 적당한 가격에 팔아 이웃과 식사를 나눈 재미가 쏠쏠했다.

내 방 장롱에는 소위 ‘브랜드’라는 이유로 아까워서 몇 번 입지도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옷이 몇 벌 있다. 주로 인도에서 생활할 때 구매한 옷들이다. 물가가 싼 인도에서는 한국에서 비싼 가격에 팔리는 옷들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다.

현관문에 걸린 '아름다운 가게' 기증자 팻말과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주판의 변신

여수에서 생활하는 지금, 환경이 바뀌니 입는 옷도 달라졌다. 밭에서 일하는 일이 많다보니 서울에서 지낼 때 입던 고급스러운 옷은 이제 꺼낼 일이 거의 없다. 버리기 아까운 옷은 다림질하여 구김을 펴고 카메라발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 중고 사이트에 올린다.

중고 사이트에 올리자마자 구입을 문의하는 문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다들 쓸만한 것은 어찌 그리 잘 찾아내는지, 옷 몇 벌이 금방 팔리고 통장에 십여 만원이 입금되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이웃과 함께 식사를 나누기에 충분하다.

나머지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 기증 품목에 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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