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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의 기억

절이나 시골 정원에서 여름을 빛내는 정원수
배롱나무를 보면 싫은 소리 한번 없던 시어머니가 생각나
환희 저서 '춤추는 정원' 에서 연재

  • 입력 2020.07.24 13:46
  • 수정 2020.07.25 17:15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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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정원을 가장 빛내는 나무는 단연 배롱나무다. 미끈한 가지에 흔들리는 분홍빛 고깔 모양의 배롱나무 꽃은 여름 내내 정원을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절 마당이나 시골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배롱나무는 전생의 나무처럼 친숙하다.

정원의 문을 들어서자마자 한 그루, 본채 입구에 두 그루, 윗마당에 두 그루, 아래 마당에 세 그루 총 여덟 그루가 자라고 있다.

 

배롱나무 아래의 인연

한여름 배롱나무가 피어날 때면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생각난다. 그분을 처음 만난 곳도 배롱나무가 화사했던 시댁의 정원이었고, 그분과 영원히 헤어졌던 때도 배롱나무가 한창이던 여름 백중날이었다.

남편과 연애시절,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간 날이었다.

조금 오래돼 보이는 낡은 한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입구부터 온통 꽃천지였다. 200평 정도 되는 마당의 정원에는 낡고 오래된 바깥 시장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별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때는 여름. 채송화, 봉숭아, 칸나 등 유년의 정원을 생각나게 하는 재래종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고, 군데군데 감나무와 연두색 알이 주렁주렁 달린 대추나무, 화려한 주황색 꽃이 만발한 석류나무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당 한편에는 고추며 상추, 호박 등 먹을거리가 풍성한 텃밭도 있었고 장독대도 제법 널찍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옥의 한 부분을 온실로 만들어 온갖 선인장도 키우고 계셨는데 분홍색, 노란색, 하얀색 등 다양한 색깔의 선인장 꽃들은 한옥과는 대조적으로 이국적이기까지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당 전체를 화사한 분홍빛으로 환하게 밝혀주고 있는 커다란 배롱나무였다.

그 나무 아래 남편의 어머니가 아이보리 블라우스를 입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환갑이 넘은 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얼굴에 티 하나 없이 맑고 고운 분이셨다.

결혼 준비로 시댁 식구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거의 모 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있었다. 모두들 나보고 ‘인덕人德’이 많다고 난리였다.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불보살’이라고도 하고 ‘조선시대 마지막 여인’이라고도 했다. 시어머니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살아보니 그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시어머니가 남편을 꾸중하거나 혼내거나 심지어는 조그마한 서운함조차 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건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내게도 단 한번 싫은 소리를 해본 적이 없으셨다.

 

심층의식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커다란 연못과 형형색색의 다양한 꽃이 주변에 가득 피어있는 절이었다. 절을 구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바라보자 스님은 즉시 몸을 돌려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꿈을 깼다.

아마 그 뒤부터였을 것이다. 갑자기 108배 수련을 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생겼다. 당장 커다란 절 수련용 방석을 사서 그 무더운 여름, 거실에서 매일 아침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절 수련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시어머니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우리 집에 오셨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항상 시어머니와 사이에 느껴지던 ‘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 이후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그 견고한 장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후 시어머니와 나는 매일 아침 동네 공원을 같이 산책하고, 함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마트에서 쇼핑을 했다. 처음으로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머니는 인생을 정리하듯 나에게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대화가 있다. 시어머니가 대화 도중 질문을 하나 던지셨다.

“내가 아침마다 부처님께 기도를 하는데 어떤 기도를 하는 줄 아니? 난 다른 기도 안 한다. 그저 죽을 때 너희들 고생시키지 않고 죽게 해달라는, 오로지 그 기도만 한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올 뻔했다. 죽을 때조차 자식을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저 사랑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시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거의 ‘신을 대신한’ 사랑처럼 불가사의해 보였다.

그렇게 시어머니는 며칠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자식과 손자와 시간을 보내고 올라간 뒤 보름 만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찾아온 시어머니의 죽음에 남편과 나는 거의 얼이 빠져버렸다. 이제야 겨우 철이 들어 시어머니와 함께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다니, 슬픔과 회한으로 한동안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그후 남편과 나는 100일 동안 시어머니의 죽음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함께 108배를 올렸다.

또 한 번 인간의 심층의식 세계에 대한 놀라운 경험을 나는 시어머니의 죽음의 과정에서 체험했다. 우리의 의식은 연결되어 있고 시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실상’이 현실을 떠받치고 있다.

시어머니는 어디로 사라지셨는가. 현실에서는 사라졌지만 실상에서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현실에서 시어머니의 존재감을 느낄 때가 있다. 시어머니는 단순히 우리의 마음 속에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적’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우리는 시어머니의 묘 앞에 조그만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지나 배롱나무도 많이 컸다. 추석 때 성묘를 가면 이미 꽃은 지고 조그만 열매들이 매달려 우리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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