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 여수시장님! 돈 좀 주이다"
내가 만난 여수사람 ⓷ 1970년대 여수산단이 들어섰지만 시민이 아닌 서울서 온 엔지니어의 일터 일제 보온도시락을 든 아이와 양은도시락을 든 아이의 빈부격차만 실감해 경도 개발을 보며 카지노업체만 이득 본 강원도 사례와 개발로 내쫓긴 보라카이 원주민이 겹쳐져
여름 끝자락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경도 선착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화가가 그린 여수해협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이는 곳이라 시름없이 찾는 곳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여수도 재난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배들은 바다를 가르며 지나고 경도를 오가는 배도 열심히 왔다 갔다 합니다.
경도로 들어가는 차를 실은 배가 선착장을 떠나자 승용차들에 가려져 있던 광주리장수 할머니가 보입니다. 할머니는 무연히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옵니다. 따가운 햇살 때문에 할머니 이마에는 땀방울이 성글성글 열렸습니다. 입을 가린 마스크도 얼마동안이나 쓰고 있었는지 시커멓습니다.
“아자씨, 강냉이 좀 팔아 주씨요.”
머리에 올려져있는 광주리를 내 앞에 내려놓습니다. 비닐봉지에 담긴 찐 옥수수들이 가득합니다. 오늘 장사가 형편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 봉지 얼마 다요?”
“삼천원인디 장사도 안 된께 이천원만 주씨요.”
그 돈이면 할머니가 자장면 한 그릇 사먹을 수 없지만 시내버스 비용은 될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장사가 잘 안 되요?”
“코로나 땜시 장사 되는거이 뭐가 있다요.”
“그래도 경도 골프장 가는 차들은 많은께 좀 팔믄 쓰것그만‘”
“차만 타고 씩 가분디.”
경도가 개발된다고 해도 할머니 옥수수 장사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득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상을 해 봅니다. 만약 할머니 손에 십만 원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아마도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한 달은 희망을 가지고 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옛날,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여천공단이 개발되었습니다. 여수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일자리가 생겨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공단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여수사람이 아니라 서울에서 내려온 엔지니어 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딴 세상 사람들이었습니다. 공단에 사택을 지어 살았고 자녀들은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습니다. 일제 보온도시락에 계란프라이 반찬을 싸온 공단 아이들과 신 김치에 고구마를 양은 도시락에 싸온 여수 아이들과는 달랐습니다. 빈부격차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천공단이 개발되면서 그곳에서 닭 키우면서 살던 주민들은 어디로 밀려났을까요.
국외와 국내 두 곳이 생각납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 필리핀 보라카이는 하늘과 바다가 서로를 파랗게 탐닉하는 섬으로 세계 3대 해변으로 불리는 낙원입니다.
섬의 원주민인 소수민족 아에타족 불행은 1980년 개발바람이 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에타족에게는 ‘개발’의 동의어는 ‘추방’이었습니다. 그들이 부쳐 먹던 밭 위에 호텔이 들어서고, 고기 잡아 생계를 꾸리던 해안에는 리조트가 들어섰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해 원주민은 어업뿐만 아니라 수영마저 금지되었습니다. 아에타족들은 섬에서 먹고살 수 있는 터전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내륙에 아에타족 정착촌을 만들어 수용했습니다. 쉽게 말해 유배지인 것입니다.
개발에 대해 입안자들은 개발경제효과로 일자리 창출, 지역소득확대 등으로 표현합니다. 원주민들은 유동인구 증가로 인한 땅값 상승 등 경제적 혜택을 받을 것으로 상상합니다. 개발 입안자 말대로 정말 개발지역 원주민들이 정신적 경제적으로 나아지는 것인지 국내 사북지역 예를 들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너지를 석탄에 의존하는 시대에 강원도 사북 고환 탄광촌에는 많은 광부들이 판잣집에서 살면서 탄을 캐어 나라 경제발전에 이바지 했습니다. 팔십년대 에너지가 석유와 가스로 대체되자 사북은 탄가루만 날리는 죽은 도시로 전락했습니다.
이때 경제개발입안자들은 사북경제를 살리고 지역을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내국인 카지노를 내세웠습니다. 개발에는 지역주민들의 지지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카지노 수익금의 75%를 지역발전기금으로 내놓는다는 달콤한 조항을 앞세웠습니다.
게다가 카지노 인력 일정 정도를 지역주민으로 채우겠다는 약속도 곁들였습니다. 정부의 1995년 ‘폐광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일환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익금의 지역 환원은 개발참여업자들의 수익분배율 불만에 의해 10% 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지역주민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발결과는 어땠을까요. 개발업자들이 돈을 쓸어 모으는 동안 지역주민들은 황폐화 되어갔습니다. 평생 탄을 캐던 광부가족들이 전문적인 기능이 필요한 카지노 딜러가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났고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만 남아 카지노 대리석 바닥 대걸레질이나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탄차 대신에 고급승용차가 쉼없이 드나들고, 한탕이 판을 치자 주민들도 얼마 되지도 않는 폐광 보상금을 들고 돈 놓고 돈 먹기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지역주민들은 보상금마저 날리고 카지노 화장실에서 쓰러져 있거나 목을 매었습니다.
카지노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수익금은 지역주민들에게 귀속되지 않았고 그나마 줬던 보상금마저 카지노는 회수해 갔던 것입니다. 그후 지역주민을 위한다는 명문으로 카지노 출입제한요건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지역주민은 돈도 잃고 카지노 출입조차 제한 당하고 거리를 떠돌게 만들었습니다.
개발이라는 문명에는 야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철학자 들뢰즈 (Gilles Deleuze, 프랑스 철학 사회학자)는 자본주의의 페티시즘(fetishism, 물신숭배)에 의한 영토화에 이은 재영토화라고 부릅니다. 페티시즘은 주술적 초자연적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이라 하는 것은 신이 행하는 현상이 아니라 개발입안자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주술입니다.
여기서 개인적 해석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야겠습니다. 국가나 지방정부는 일정지역을 규제로 묶어 둡니다. 이를 영토화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역주민들은 규제 때문에 땅에 대한 집착으로 도착증이 생겨납니다. 개발제한 해제하라는 현수막이 나붙는 것이지요. 개발입안자들은 화려한 조감도를 흔들면서 개발에 따른 경제효과 수치를 들어 원주민들 상상을 조작합니다.
이를 본 원주민은 화려한 이미지와 현재의 모습 차이에서 결핍을 느끼게 됩니다. 결핍은 더욱 거센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이때 지방정부는 슬며시 개발제한을 풀어 줍니다. 그러나 개발을 한다고 해서 욕망이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결핍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지요.
땅이 개발되면 결국 원주민들은 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개발지역의 일용노동자가 되어 가는 아이러니가 일어납니다. 이를 '영토의 재영토화'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원주민들은 자신이 살던 땅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빈부격차 문화현상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의 땅에서 신기루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때는 자신은 그 땅의 주인이 아닙니다. 이런 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원주민은 또다시 돈에 대한 집착증으로 정신분열현상까지 일어날 정도로 심신이 황폐화되어 갑니다. 들뢰즈는 이를 자본주의 정신분열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일련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은 관계의 변화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영토화 상태에서는 지역정부 지역사회 원주민의 관계이지만 개발이 시작되면 지역정부와 개발업자 원주민의 관계로 이동하게 됩니다. 관계가 달라지면 구조도 달라집니다. 구조가 달라지면 개발성질도 바뀌게 됩니다. 즉,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킨다는 개발성질이 개발이윤극대화 성질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때 관계에서 제외된 지역사회는 본래의 개발목적과 달라질 것을 우려한 비판을 하게 되고 지역정부는 슬며시 물러나 있는 상태에서 지역사회와 원주민과 사이에 갈등이 노출됩니다. 지금 여수가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개발은 실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가수요를 만들어냅니다. 프리미엄이니 전매니 차익실현을 노리는 초과수요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여수 웅천택지개발지구에 부동산 투기 ‘떴다방’이 설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여수를 개발해서 여수 시민들에게 이익이 환원된다면 마다 할 것이 있겠습니까. 개발에 따른 개발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여수가 비리 없이 개발이 된다면, 그 또한 마다 할 것이 있겠습니까. 시장님 말씀대로 재난지원금 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개발( 여수넷통 10월8일자 기사 ‘재난지원금보다 민간투자 정상화로 일자리 창출해야')이 우선이겠지요.
그런데 정말 경도개발을 하면 여수시민들에게 일자리가 창출 될까요. 옥수수 파는 할머니에게 도움이 될까요. 그거 따지기 전에 우선 당장 희망이라도 가지게 재난지원금 지급은 안 되는 것인가요. 시장님, 여수시장님 강냉이 파는 할머니에게 당장 재난지원금 십 만원만 줘 보이다. 할매가 얼마나 좋아하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