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till hungry!”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기적처럼 4강에 진출했고 그 당시 모두의 예상을 깬 결과에 대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수장인 히딩크가 남긴 이 한마디는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오늘은 절박함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기 전 겨울방학에 나는 일생일대의 도전을 해 보기로 결심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학원이란 곳에 다녀보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학원 한번을 안 다녀봤을까 의아해 하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차도, 학원도 없는 섬이었다. 그러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동차보다 소 구경 할 일이 더 많고, 과자보다는 고구마나 감자를 더 많이 먹었으며, 문제집 푸는 시간보다 해루질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부모님은 때아니게 학원을 보내달라는 딸의 요구를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 달만 학원을 다니게 해주면 평생을 풀어먹겠다고 작은 눈 가득 간절함을 담은 딸자식의 소원을 부모님은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달 동안 타자를 배웠다. 작은 손가락이 자판 사이로 숭숭 빠지며 생채기를 입기도 했지만 나는 한달을 꼬박 채우고 다시 섬으로 왔다. 그리고 타자 치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 종이에 자판을 그려서 연습하고, 친척 언니가 상고를 졸업하면서 버리려고 했던 타자기를 얻어와서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타자를 쳤다.
살면서 돈을 내고 무언가를 배웠다는 기쁨과 나의 손끝에서 한자 한자 새겨지는 글씨들의 향연이 주는 성취감은 말로 형연하기 힘들 정도였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서 오는 그 기쁨은 그닥 예쁘지 않고, 그닥 똑똑하지 않았던 나에게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어느새 30년 하고도 수년이 지난 그 한 달의 배움, 그 날의 간절함대로 나는 그때 배운 타자를 기반으로 글을 쓰고, 보고서를 쓰고, 과제를 하고, 상담일지를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때의 절박함을 나는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실천했다.
먼저 말하기 전에 학원 보내지 않기, 간절히 원하면 그 간절함으로 부모를 설득하도록 하기, 그리고 스스로 원하기 전에는 강요하지 않기!!
세상 느긋한 큰 아이는 검도와 태권도를 끝으로 4학년 이후로는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고 철썩같이 믿었던 큰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때 갑자기 수학 학원에 보내달라고 해서 왜 수학학원을 다니고싶은지 설명과 함께 설득을 해보라고 했다.
수학은 내내 공부를 하던 아이들도 따라가기 힘든 과목이건만 중학교 때 19점을 맞아 온 수학을 고등학교때 학원다니면서 메운다는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는 며칠을 엄마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조르고, 설명하고 애원했다.
‘제발 보내주세요!’
그 아이 목소리와 눈동자에서 간절함이 느껴졌기에 학원에 등록을 해줬다. 몇 년간 놓고 있던 수학을 다시 배우고, 수준에 맞게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이는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했고, 생전 처음으로 수학시험을 풀어보겠다고 시험지를 붙들고 있다가 마킹 시간을 놓쳐서 백지 답안지를 낸 뒤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기도 했다.
그리고 본인 말 대로 서울안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붙었다. 동기, 선배들과 얘기하면서 초중고를 본인처럼 놀기만 한 아이들이 없었다고 그리고 학원에 보내달라고 무릎 꿇고 싹싹 빌어본 사람도 본인이 유일하다고 말을 한다.
물론, 이 아이 인생을 성공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약간의 결핍,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간절함인 것이다.
지금 많은 부모들은 자신들의 현재 삶에서 오는 불만족의 이유를 더 배우지 못해서,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충분히 지원해주는 부모를 만나지 못해서, 정보가 부족해서라는 이유로 자녀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또한 자녀의 학원비를 위해 일을 하면서 그렇게 해주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고,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왜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냐?’고 윽박지르면서 결국 공부도, 관계도, 인생도 다 무너뜨리고 있다.
상담에 오는 많은 아이, 성인 중에 부모와의 관계가 갈등과 문제의 시작인 경우가 많다. 격려는 없이 윽박만 지르던 아버지, 얼굴만 보면 공부 얘기뿐인 엄마, 어떤 결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채찍만 휘두르던 부모, 자녀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던 부모를 보면서 아이들은 성취감보다는 좌절을 맛보고, 긍정적 경험보다는 무기력을 경험하게 되며 결국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된다.
히딩크가 대한민국 축구를 4강에 오르게 한 것은 강요가 아니었다. 꿈이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간절함을 이끌어 낸 것이다.
배를 바다로 나가게 하는 것은 만선의 꿈이다. 스스로 목이 마르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아이는 물의 중요성을 알수 없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속담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학원비에 대해서, 공부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 아이가 인지적, 정서적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아이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스스로 느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이 경험해야 할 절박함의 점수가 움직일수 있는 동기로 차 오르기 전에 부모의 절박함으로 밀어붙이거나, 불안으로 몰아세우는 행위는 결국 좋은 결과 또는 고마움보다는 관계의 악화, 자존감의 하락, 불안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배가 고프고, 배고픔을 느껴본 아이만이 밥 짓는 법을 배우고, 벼 키우는 법을 배우고, 밥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도 부모의 역할을 기다려주고, 버텨주는 역할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