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개봉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청춘 남녀의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1순위 영화다. 남녀관계에서 일어나는 심리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다뤘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서 큰 끌림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나는 사람. 그리고 사랑.
정신분석학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기능하는 인간의 기준을 ‘일과 사랑’으로 두었으며 그 외 많은 학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청춘남녀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은?
에릭 에릭슨의 경우 인간이 성장하면서 해결해야 할 발달과업에서도 학령기의 근면성 이후 성인기에 이뤄야 할 과업으로 친밀감, 생산성, 통합 등의 과제를 제시하면서 청춘남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과업은 친밀감과 이를 통한 인연과 사랑이라고 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정과 사랑에 대한 욕구가 있으며 이를 증명하듯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상담에서 호소하는 문제와도 이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발달과정과 속도가 정상범위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유아동기를 거쳐 학령기 아동·청소년의 고민은 성적, 성격, 외모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직장인의 경우에도 일 보다는 관계 때문에 상담을 오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 미혼의 경우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나의 인연이 누구인지,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나고 싶은데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인지 모르겠고, 가끔은 떠나간 인연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을 고스란히 싸 들고 상담실에 찾아온다.
아무리 짚신도 제짝이 있다지만 나의 짝을 찾는 과정은 절대 만만치 않다.
이상형에 대한 많은 조건이 있지만 막상 인연을 맺은 사람은 내가 목청껏 외쳤던 이상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상형이 아닌 사람과의 만남이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누구에게 반하는가? 즉, 끌림의 본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끌림이란?
관계를 위한 첫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
외모, 성격, 학벌 등 여러 가지를 재고 따지지만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어린시절 가난했거나, 부자였거나, 행복했거나, 불행했거나 상관없이 지극히 익숙한 그 감성과 정서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 고향에 돌아오면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귀향 증후군이라고한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 역시 사랑의 본질은 상대방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라고 했다. 상대방을 통해 나의 익숙한 정서를 확인하면서 그것을 편안하다고 생각하고, 그 편안함을 다시 좋다고 착각해 버린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편하거나 좋은 게 아니라 익숙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상대방과 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커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와 100미터 달리기를 한 이후의 심장박동은 비슷한 속도로 빨라지는데, 힘들었을 때의 심장박동에 대해 구분해 본 적이 없다면 우리는 힘든 상황에 대한 익숙함으로 인해 단지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만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보며 사랑한다고 착각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끌린다면 상대방에게 “내가 왜 좋아?”라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왜?”라고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그 사람의 말투, 감성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라면 그 편안함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기억과 연결되어 있고, 누구를 떠올리게 하는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관계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가끔 관습에 기대는 사람도 있다. 끌림이 없는데도 소개팅 이후 세 번은 만나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으로 억지로 만나보지만 역시 끌림보다는 단점이 더 많이 들어오게 된다. 한 번 만났을 때 끌림이 없는 사람은 세 번을 만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사람에게서 나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것
가족 상담사 보웬에 따르면 불행한 결혼의 세대 전수는 잘못된 배우자의 선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즉 어린 시절의 정서 재현이나 상대에게서 나를 보는 것은 결국 어린 시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반복하게 되고,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만나 결혼했지만 결국 문제상황에서는 그 시절의 어린아이들이 튀어나와 싸우고, 투정을 부리고, 문제를 악화시키고 결국은 유치하게도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린 채 ‘sad ending’으로 마무리 지어버리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옥시토신이라는 사랑의 묘약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엄마가 갓난쟁이에게 젖을 물릴 때도 분비가 되기 때문에 모성애라는 것이 결국 출산 이후 잦은 스킨십과 눈맞춤을 통해 생성됨을 이해하게 된다.
남녀가 사랑을 할 때도 옥시토신은 3개월 정도 분비가 된다. 이것을 사람들은 콩깍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후에는 호르몬 영향으로 끌렸던 그 모습과 상대를 보며 설레었던 기억으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되는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이 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귀하게 대하지 못하고,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기는 쉽지 않다. 결국 끌림, 관계, 인연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선택하기 전에 나에 대해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힘 없는 그 시절 받았던 상처와 감정들을 찾아 위로하고, 그때의 두렵고 불안했던 마음을 이해하고, '네 잘못이 아니었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 공감해주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해결해주는 작업 뒤에야 비로소 객관적인 눈으로 상대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다시 한 해가 시작되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은 다를 수 있지만 올해만큼은 어느 해보다 멋지게 살고 싶은 바람은 같을 것이다. 일에서, 관계에서, 돈에서 '끌리는 사람'이 되는 것!!
'끌림'은 어제도 내일도 아니며 타인도 아닌 지금-여기에서의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며 어떤 경우에도 나의 선택은 나에게는 최선이었음을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