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명절 되면 사람이 바글바글했어. 마트 들어오기 전에는 발 디딜 틈도 없었지. 지금은 그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11일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여수 서시장 연등천변. 차가운 길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노점 상인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훈장처럼 새겨져 있다.
여수 금오도 우왕리에서 시집와 평생을 이곳에서 보냈다는 한 할머니는 새꼬막 한 바구니를 만 원에 건네며 옛 시절을 회상했다.
"새벽 5시 나와 13시간… 굴 하나, 꼬막 한 줌에 담긴 삶“
서시장 노점 상인들의 하루는 남들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다. 새벽 5시 반이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저녁 6시 해가 질 때까지 꼬박 12~13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다.
"4년 전 영감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나와. 새벽 5시에 나와서 하루 내내 앉아 있는 거지. 이거 다 팔아야 빨리 집에 갈 건데, 요즘은 통 쉽지가 않네.“
상인들이 파는 것은 단순한 수산물이 아니다. 화양면 굴이 최고라며 자부심을 드러내는 목소리, 손님이 깎아달라 하면 "조금 더 넣어줄게"라며 검정 비닐봉지에 덤을 얹어주는 손길에는 척박한 삶을 견뎌온 강인한 생명력과 정이 묻어난다.
"비바람 막아줄 가림막 하나 있었으면… 상생의 길은 멀기만“
상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거창한 정책보다 당장 피부에 와닿는 '환경 개선'이었다.
"나라가 잘돼서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장사 좀 잘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런 데 바람막이라도 좀 해주면 얼마나 좋아. 예전에 시에서 해주려고 했는데, 가게들이 간판 가린다고 반대해서 못 했어.“
노점 상인들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림 시설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상점가와의 이해관계 때문에 무산되었던 과거의 기억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간판을 밖으로 빼서 달아주면 서로 좋을 텐데…"라는 한 상인의 말에서 상생을 향한 소박한 지혜가 엿보였다.
한산한 상설시장 "그래도 사람이 모여야 시장이지“
인터뷰 도중에도 상인들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갈치 너댓 마리를 손질하는 솜씨는 눈 깜짝할 사이였다. 손님이 줄을 쫙 서야 장사할 맛도 날 텐데, 듬성듬성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며 상인들은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시장 한 바퀴를 돌며 대목 장을 보러 왔다는 한 시민은 "그래도 시장에 와야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며 상인의 손을 잡았다.
여수 서시장 노점상들에게 '꿈'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시장을 찾는 것, 그리고 비바람 걱정 없이 손님에게 싱싱한 굴 한 봉지를 건넬 수 있는 작은 변화였다. 그 소박한 꿈이 이루어질 때, 여수의 심장인 서시장에도 다시금 뜨거운 활기가 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