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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와 괭이

'춤추는 정원' 연재(19)
여자의 농기구 호미, 남자의 농기구 괭이
젊은 시절, 가부장제를 비판하며 여성해방주의를 외쳤지만 정원을 가꾸며 각자의 영역이 있음을 깨달아

  • 입력 2020.03.28 06:05
  • 수정 2020.04.25 17:09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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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꾸면서 가장 즐겨찾는 쇼핑 장소는 ‘철물점’이 됐다.

철물점은 트랙터나 경운기 같은 대형 기계만 빼고 시골살림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다 판다. 호미나 삽, 괭이 같은 농기구 외에도 정원 관리에 필요한 전정기구, 심지어는 건축자재까지 있을 건 다 있다.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철물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래도 나올 때는 호미 하나라도 꼭 손에 들고 나온다.

정원 이야기에 호미를 빼놓을 수 없다.

호미는 참 원시적인 도구다. 호미만 손에 잡으면 항상 원시인으로 돌아간 듯 야릇하면서도 경이로운 느낌에 젖어 든다.  최첨단 과학시대에 어찌된 일인지 철기시대에나 사용했을 법한 이 호미가 여전히 농사일에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경이로운 호미

호미는 동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도구다. 아직도 수공업으로 하나씩 제작되는 호미는 모두 다른 모양을 지닌다. 때문에 재래시장 철물점에 갈 때면 손에 딱 맞고, 날렵하면서도 적당한 무게감을 지닌 호미를 찾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다.

그렇게 산 호미가 15년간 족히 서른 개는 된다. 넓은 정원에서, 언제든 호미를 들고 일하기 위해 나무에도 걸어 놓고 정자 밑에도 집어넣어 두고 심지어는 따로 호미용 도구함을 만들어 보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호미가 하나씩 사라져 지금은 모두 철수했다.

아무튼 이 호미만 손에 들면 원시인 모드로 돌아가 삶의 속도는 한없이 느려지고, 아무 걱정도 없는 듯 태평한 상태가 된다.

호미는 오로지 여자들만의 농기구다. 대신 남자들은 괭이를 가지고 일한다. 호미를 손에 쥐면 힘이 불끈 솟는데 괭이는 한두 번만 내려쳐도 어깨가 아프다.

남편은 평생 살아오면서 육체적인 일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사람인데도 괭이질은 익숙한 듯 잘한다. 함께 풀을 매자고 아무리 호미를 손에 쥐어 줘도 풀은 절대 매지 않지만 힘쓰는 괭이질은 마다하지 않고 잘한다. 지금 정원 한가운데 있는 연못도 남편의 괭이질로 거의 다 만든 것이다.

심지어 몸이 가느다랗고 여성적인 자인도 깜짝 놀랄 정도로 호미질보다 괭이질을 더 잘한다.

평소 여리고 수동적인 자인은 괭이질을 할 때 비로소 ‘남자’로 보인다.

 

여성성에 대한 긍정

내 10대는 사춘기적 반항심과 저항으로 늘 불만이 가득했다. 20대에 들어서는 온통 ‘여성해방’에 꽂혀있었다.

대학시절, 민속주점에서 친구들과 밤새 막걸리를 들이키면서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며 지내는 시간은 흔한 일상 중 하나였다.

남자처럼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치마는 거의 입은 적이 없고 담배도 때때로 피워 물었다. 전철을 타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는 것이 예사였으니 가끔씩은 사람들이 나를 남자로 오인하기도 했다.

대학 이후로 여성성의 상징인 브래지어도 벗어 던졌고, 그 뒤로 지금까지 브래지어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누가 나를 ‘여자’로 대하며 배려를 해 주면 오히려 화를 내기까지 했다. 당연히 그 시기 난 연애도 못 했고, 20대 내내 애인 한 명 없었다.

어찌어찌 결혼은 했지만 결혼생활의 ‘몰입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항상 엄마와 아내로서의, 최소한의 역할만 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로서 당하는 ‘차별’도 싫었지만, 또 여자이기에 받는 ‘보호’도 편하지 않았다. 결혼생활에서 여자로서의 주체성이 훼손될까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여성해방주의적인 관점은 나를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자 나를 성장시켜온 신념이었다. 영적인 여정에서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를 내려놓지 못하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 내가 이제 정원에서 남자와 여자의 어쩔 수 없는 ‘차이’를 절절하게 느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차이에 큰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땅을 파야 하는 날이나 큰 나무를 심어야 하는 날, 나는 그들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괭이질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맛있는 음식으로 그들의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해주고 한껏 칭찬해주는 것뿐이다.

음식 준비가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의무적으로 부엌일을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여자’로서의 행복을 마음껏 느낀다.

정원에서 여자와 남자의 차이는 ‘차별’로 인식되지 않은 ‘자연’에 가까운 생리적인 것, 호미와 괭이처럼 조화롭다. 비로소 정원에서 나의 여성성을 아무런 갈등 없이 긍정하고 누리게 된 것 같다.

비록 여성성이 사라져 가는 시기에 깨달은 긍정이지만,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듯 사라져 가는 나의 여성성에 편안함과 심지어는 자부심까지 느낀다.

정원 이전의 삶이 여자의 ‘분노’로 내 삶을 밀어 올렸다면 이제 정원에 마주하는 일상은 여자의 ‘기쁨’으로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들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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