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26일) 밤 책을 보다가 졸려 깊은 잠에 빠진 내게 전화벨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밤늦게 전화 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월요일(27일) 새벽 6시에 맞춰놓은 알람인 줄 알고 전화벨 소리를 끄려는데 화면을 보니 군대 동기의 전화다.
"자냐?"
"아니! 이제 일어나서 아내 일을 도와야지"
"내일 여수갈테니 점심이나 같이 먹자"
"그래! 내일 oo장소로 12시 반까지 와"
내 전화 알람은 매주 월•수•금 오전 6시가 되면 자동으로 울린다. 아내의 사업을 도와야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전화를 끊은 나는 이부자리를 걷고 작업복을 갈아입은 후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였다. 내가 일어나면 반드시 지키는 일과가 따뜻한 물 500cc를 마신 후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을 끓이며 시계를 바라보니 밤 10시 반이다. "건전지 수명이 다 되어 시계가 죽었나?" 하고 의심한 나는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 시계를 열어보니 일요일 밤 10시반이다. 하, 이런 낭패가! 어처구니가 없어 허허 웃다가 시계를 50년 전으로 되돌렸다.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새벽인 줄 알고 신문배달하러 나갔다가 경찰에 두 번 불려가 1972년 광주에서 자취하며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동아일보를 배달하고 있었다. 시계가 없던 나는 새벽이면 항상 긴장해 있다가 주인댁에 걸린 커다란 벽시계가 5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다섯 번 울리면 광주시청 인근의 신문보급소까지 달려갔다.
자취 집 주인아저씨에게는 매달 한 번씩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제주도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는 동생이 새벽 5시쯤 찾아와 집안이 시끌벅적해진다.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면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신문보급소로 달려가는 게 일상이었다.
11월 어느날 잠결에 주인집 동생 목소리가 들리고 집안이 시끌벅적해졌다. 신문보급소에 늦게 도착하면 총무님으로부터 혼쭐이 나기 때문에 밤공기를 가르며 보급소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안왔다. 평소같으면 일찍 왔던 동료 들이 보이지 않아 "오늘은 내가 제일 먼저 왔네!"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의자에 앉아 동료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10분, 2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아저씨 지금 몇시입니까?"하고 묻자, "응? 밤 11시 55분이야"
"아! 이런 새벽인 줄 알고 달려왔는데 밤 11시 55분이라니. 아! 이제 야간통행금지에 걸리겠구나!"
쓴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방범 순찰 중이던 경찰이 나를 불러 파출소로 데려가 취조를 시작했다.
"어디 고등학교 몇 학년 몇반이고 담임선생님 이름은 누구야?"
"oo고등학교 2학년 2반으로 담임선생님은 ooo입니다. 신문배달 소년으로 시계가 없어 새벽인 줄 잘못 알고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뭐라고? 장난하나? 고등학교 다니는 놈이 그따위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면 통할 줄 알아?"
화가 난 나는 경찰의 말을 되받아쳤다.
"아저씨! 고등학교 다니는 놈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여기 내주머니에 동아일보 수금장이 있으니 보십시오"
교련복을 입고 내 주머니에서 나온 수금장을 본 경찰은 내 팔에 싸인펜으로 사인을 해주며 "너 조금 더 가면 검문소에서 또 걸릴거야. 그러면 내가 네 손목에 해준 사인을 보여주면서 네 사연을 말하면 통과시켜줄 거야"라고 말했다.
인사를 한 나는 자취집을 향해 걷다가 집 가까이에 있는 검문소에 불려갔다. 내 사연을 들은 경찰은 내 손목에 써진 사인을 본 후 웃으며 집으로 가라고 했다.
한밤중 걸려온 군대동기의 전화가 일으킨 해프님에 한바탕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