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수많은 업적을 누가 이루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다수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사람이 없었으면 지금까지의 ‘결과‘는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니까.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사람’이라는 대답에 아이들을 포함시켰나? 이다.
‘사람’이라는 집단 속에는 아이들보다는 어른의 수가 더 많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군집의 중심은 어른이 된다. 20세 이상을 어른으로 인정하고, 요즈음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결과로도 당연하게 어른의 수가 많은 것이다.
그에 따라 다수결 투표 같은 더 많은 인원을 요구하는 것들에서 유리함과 불리함이 나뉜다. 또한, 선거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선거권이 없으니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위한 정책만 내세우고, 유권자 외의 사람들은 ‘유권자를 위한 정책’에 딸린 작은 혜택만 볼 뿐이다.
객관이라고 하는 것들은 어쩌면 어른들의 주관이 모여서 만들어진, 객관의 탈을 쓴 ‘어른들의 주관’이자 허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치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어른들은 “네가 뭘 안다고 그래?” “ 어른들끼리 하는 얘기니깐 저기 가 있어”와 같이 때론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 같은 말을 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선 ‘아이들은 정치에 대해서 잘 몰라’라는 ‘어른들의 주관’이자 편견이 드러난 것이다.
어른들의 ‘주관’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유입된다. 한 지역이 어떤 정권에 대하여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 하면, 아이들은 당연히 자주 그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듣게 되고, 자연스레 넓은 생각을 가지기 어려워져, 어른들과 같이 그 정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예전에 어떤 대통령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보고 나서 “아!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대통령을 비판하는 걸 보고 “이거 뭔가 많이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이런 생각들을 들게 하면 안 되지 않을까? 아이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할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모든 어른들도 아이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그때를 까먹고 당시의 어른을 향한 자신의 불만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는 안된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이라는 하나의 권력을 들먹이며 아이들을 억제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어떤 사람을 비판하면 말대꾸, 버릇없는 아이이고, 어른이 비판하면 주장, 신념이 된다. 아이들의 창의성 당돌함을 격려해주지 못할망정 아이들의 생각을 기어코 짓밟으며 살아가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있기에 더욱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른들의 객관과 우리의 주관이 아닌 어른들의 주관,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않는 것들을 묵인하며 덮어두고 있다. 또 앞서 말한 ‘사람’속에 아이들을 포함시켰나? 라는 질문에 대한 지적을 묵과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을 이해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배척하는 어른들의 편견들로 꽉 차있다.
어른들이 ‘어른‘이라는 것의 무게를 알고 떳떳하고, 아이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어른다운 어른이 많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 어른의 빛을 보고 자란, 인정받고 자란 아이는 다음 세대, 머나먼 미래에서도 빛을 발하는 그 세대의 대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어른을 존경하고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많다면 그것이 진정한 우리가 바라는 행복한 사회, 파라다이스가 될 것이다.
- 이지율 (여수 무선중학교 입학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