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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매력에 푹 빠진 이승은 씨 "글과 춤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탱고 추는 작가가 '틀린 스텝'을 대하는 법

  • 입력 2025.11.22 10:15
  • 수정 2025.11.22 10:19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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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철 북콘서트홀에서 강연 중인 이승은씨 모습 ⓒ이승은
▲ 이호철 북콘서트홀에서 강연 중인 이승은씨 모습 ⓒ이승은

며칠 전 일이다. 은은한 불빛이 비치는 여수 밤바다 카페에서 탱고와 마주쳤다. 탱고를 처음 본 건 아니다. 몇 년 전 남미 여행할 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 콜론 극장에서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연주되는 '뽀르 우나 까베짜' 음악을 들으며 멋진 무용수들이 춤추는 탱고를 본 적이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눈으로만 즐기는 예술이라며 잊어버렸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탱고가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한 여인이 상대와 얼굴을 맞대고 현란한 스텝을 밟고 있었다. 뒤풀이 장소에서 저녁을 먹으며 그 여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내 편견을 깨버린 이승은씨. 지난 6일, 잔잔한 미소로 질문에 대답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아래는 그녀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는 시간' 탱고를 시작한 이유

- 탱고는 언제 시작하셨나요?

"2019년도 여름부터 탱고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배운 지 얼마 안 되어서 코로나가 터졌어요. 코로나로 많은 탱고 학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으로 수업을 못하게 되었어요. 탱고학원 뿐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었어요. 초반에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탱고를 강제로 몇 개월간 쉬어야 하니 그 시간 동안 애간장이 타더라고요. 학원이 문을 닫으면 어쩌지? 나를 위해 배우게 된 탱고를 여기서 멈추게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드니 더욱 매달리게 되었어요. 남편, 자식을 위해 쓰는 시간도 물론 좋았지만,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는 시간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심지어 세상이 달리 보였어요.

제가 농담으로 '배가 고플 때는 국어, 수학, 영어가 필요하고 마음이 고플 때는 음악, 미술, 체육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종종했는데 그 동안 마음이 고팠나 봐요. 사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탱고를 추셨다고 들었거든요. 탱고를 시작하고 좋아하게 된 게 아버지를 닮아서 생긴 일이라면 유산 상속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적어도 내게 세상을 살아갈 힘은 주고 떠나셨구나. 그래서 이렇게 마음의 허기를 조금씩 채워가고 있던 중에 코로나라는 상황 때문에 억지로 중단하려니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탱고를 놓지 않겠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고 지금까지 탱고를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노무현 재단에서 탱고 공연 중  ⓒ이승은
▲노무현 재단에서 탱고 공연 중  ⓒ이승은

- 탱고의 역사를 설명해준다면?

"탱고는 19세기 말, 188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생겨난 춤입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고종이 통치하던 시절이었어요. 우리나라가 혼란 속에 있었던 시기와 반대로 아르헨티나는 이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산업 발전으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등 유럽 이민자들이 몰려들었고, 항구는 노동자들로 붐볐지요. 우리나라가 예전에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고 건너갔던 것처럼 '아르헨티나 드림'을 꿈꾸며 유럽 이민자들이 몰려들었어요. 하지만 맞지 않는 성비,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서로를 안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형식도 이론도 없던, 그저 온기가 그리워 시작된 춤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탱고는 하층민의 춤이라며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파리에서 탱고가 느닷없이 유행하게 됐어요. 아르헨티나 연주자들이 파리 살롱에서 탱고를 연주하며 파리에서 탱고가 유행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 시기가 전쟁이 없던 '벨 에포크' 시절이었고, 파리는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파리를 통해 탱고는 유럽 전역으로 번져 나갔고 파리의 세련된 매너와 살롱 문화를 겸비하여 유럽 상류층의 예술로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탱고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역수입되어 아르헨티나에 퍼지게 되었고 지금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춤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 처음 탱고를 배울 때 남편과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 탱고를 배울 때 그냥 너무 좋아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빨리 저 사람이 어서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나 탱고 배운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 생각밖에 없었어요. 호감을 보이면 그게 너무 좋았고, 조금 떨떠름한 태도를 보인 사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딱히 그 반응이 제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더라고요. 탱고를 배워보고 싶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을 때, 남편 말에 의하면 '그 아우라가 너무 강해서 저걸 반대하면 큰일 나겠다' 싶었대요.

엄마는 아빠 때문인지 제가 탱고 추는 것을 좋아하셨었어요. 예전부터 제가 춤을 좀 췄으면 좋겠다면서 넉넉지 않은 형편에 룸바 개인레슨을 엄마가 직접 알아보고 두 달간 끊어 주신 적도 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제가 춤을 추는 게 좋았대요.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음식 솜씨가 좋은 엄마가 뒤풀이를 해주세요. 엄마는 제가 탱고를 추는 것보다는 혹시 남편이 불편해 할까봐 걱정하셨는데, 탱고 추는 걸 반대하지 않는 남편을 보고 오히려 남편을 더 좋아하게 되셨어요. 저희 아이들은 제가 탱고를 추는 걸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물어보니 춤추는 엄마가 예뻐서 좋고, 늘 성실하게 수업에 참석해 기특하다고 느낀대요.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하라고 1등이 되라고 오히려 저에게 훈수를 둡니다."
 

▲이승은씨가 쓴 '나의 첫 탱고 수업표지 '모습 ⓒ설렘
▲이승은씨가 쓴 '나의 첫 탱고 수업표지 '모습 ⓒ설렘

"실수를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해요"

- 탱고의 기본 동작인 '워킹-오초(반만 돌기)-히로(돌기)' 같은 동작을 잘 구사할 줄 알아야 보기 좋은 피구라(동작)를 만들 수 있다고 하셨는데, 스텝이 틀려 실수하면 어떡하죠?

"<여인의 향기> 영화에서도 그런 말이 있지요. '스텝이 엉키면 그것이 탱고다'라고. 탱고를 배우기 전에는 단순히 도전을 해보라는 말인가보다 생각했는데 막상 탱고를 춰 보니 스텝이 틀렸을 경우 틀린 스텝을 바로 잡으려고 하면 오히려 춤을 망치게 되더라고요. 음악에 맞춰 상대와 추다 보니 틀린 스텝을 바로 잡으려고 하면 이미 시간 차 때문에 음악은 지나가 있고, 동시에 새로 흘러가는 음악과 맞지 않게 되어 더 엉망이 돼요.

그래서 빨리 틀린 스텝을 흘려보내고 계속 추던 춤을 춰야 해요. 실수를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남아있는 시간 동안 춤을 망치지 않고 출 수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틀린 동작이 새로운 동작을 만들어내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탱고는 실수도 매력으로 만들 수 있는 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건 앞에 말씀했다시피 기본동작, 워킹, 오초, 히로 같은 기본 동작이 탄탄하게 완성된 이후에요. 기본기를 쌓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좋아하는 힘만큼 강력한 건 없다"

- 탱고를 배우던 중 세계적인 예술가와 교류하며 느낀 게 많다고 하셨는데요?

"세계적인 예술가를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위치에서 높은 기준을 가지고 꾸준히 실력을 유지하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날 (공연을 선보인) 카페에서 같이 탱고를 한 저희 선생님(박준균)도 그런 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탱고의 불모지였을 때, 살롱탱고를 우리나라에 멋지게 소개하신 선구자적인 분이고 20여 년이 넘게 탱고를 가르치고 계셔요. 처음 탱고학원을 찾으려고 영상을 뒤지고 뒤졌는데, 선생님의 영상을 처음 보는 순간 이 분이다, 하고 생각했어요. 음악과 자연스럽게 일체를 이루는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에 끌려서 이런 탱고라면 배울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높은 기준과 책임감을 가지고 그 분야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선생님을 통해 배웠어요.

뮌헨에 계시는 그랑 마에스트로 '로베르토 에레라' 선생님도 역시 그런 분이라고 생각해요. 로베르토 에레라 선생님은 9살 때부터 아르헨티나 국립민속 발레단의 무용수로 활동했는데,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쉬지 않고 활동하고 계세요. 유명 영화, 탱고 쇼에 출연 하고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초대 받아 오셨어요. 그래서 그분에 대해 찾아보다가 뮌헨에 있다는 걸 알고 고민 끝에 로베르토 에레라 선생님께 수업을 신청해서 2주간 수업을 들으러 갔었어요. 그게 2022년이었어요.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날 줄 알았던 탱고 원정이 2023년, 2024년, 2025년에도 계속되었어요. 이번에는 가족 모두 함께 가느라 수업에 집중 못 했지만 제가 뭘 하는지 본 아이들에게도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제가 로베르토 에레라를 세계적인 예술가라고 이야기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요. 첫 번째로는 탱고에 관해 제게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주었어요. 탱고는 흔히 쇼 탱고와 살롱탱고로 나뉠 수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강렬한 이미지, 열정이 넘치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탱고가 쇼 탱고에요. 쇼 탱고는 이미 안무를 만들어서 음악에 맞춰 추는 거라 음악보다 동작이 좀 더 주가 되는 경향을 많이 보이는데, 로베르토 에레라가 추는 걸 보면 음악과 춤의 조화가 정말 아름다워요. 음악과 함께 안무가 완성된 춤을 춘다는 게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구나 싶어요. 동시에 춤이 사람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처음 경험했어요. 두 번째로는 같이 추는 사람에게, 춤을 보는 사람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줘요. 처음 로베르토 에레라와 탱고를 췄을 때 무슨 보약을 먹은 것 같았어요. 탱고만 같이 춰도 이렇게 기운이 넘칠 수 있다니. 그러면서 알게 되었어요. 정말 좋은 예술가는 자기를 뽐내는 걸 넘어서 남에게 기운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이 생각들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그 날 카페 공연에서 함께 기타를 연주하신 안형수 선생님도 세계적인 예술가이세요. 안형수 선생님은 독학으로 기타를 하셔서 콩쿨 1등을 하시고 전 세계 기타 1등들이 모인다는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에서 수석으로 졸업하셨어요. 대학교에서 자리를 잡으실 수도 있는데 '삶 속에서 나누는 문화'가 중요하다며 자리를 내려놓고 사람들의 삶과 가까운 음식점, 카페, 도서관 등에서 연주하시고 병원에서 위로하는 음악회도 봉사로 많이 활동하셨어요. 안 선생님은 좋은 노래들을 기타 버전으로 편곡하셔서 사람들에게 기타의 매력을 알게끔 하는데 애를 많이 쓰시고 좋은 공연을 위해 평소 연습을 정말 성실하게 하셔요. 옆에서 보면 기타의 천재이시기도 하지만 반복의 천재이시기도 한 거 같아요.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는 법,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뽐내지 않고 삶에서 예술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안형수 선생님을 통해 많이 배웠어요."

▲세계적인 탱고 전문가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은 후 기념촬영한 이승은씨 모습  ⓒ이승은
▲세계적인 탱고 전문가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은 후 기념촬영한 이승은씨 모습 ⓒ이승은

- 탱고가 본인의 인생에 던진 의미는 무엇인가요?

"누구든 좋아하는 자기 세계가 있다. 좋아하는 힘만큼 강력한 건 없다. 좋아하는 것을 가지면 남과 비교하지 않게 되더라. 그리고 그 좋아하는 것을 갖기 위해 남의 시선에 의해 나를 결정하지 말고 내가 나다운 나로 살 수 있도록 하자! 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사실 최근 1년 사이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나만의 탱고, 나만이 할 수 있는 탱고를 가지고 싶어 고민하다가 글을 써서 협성문화재단 공모전에 당선이 돼 올해 책이 나왔어요. 또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안형수 선생님의 제안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전혀 다르게 시작된 이 두 가지 일이 맞물리면서 도서관, 책방, 문학관, 소규모 클래식 홀 등 다양한 곳에서 탱고 북토크 강연과 공연을 하고 있어요. 아! 내 인생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마냥 신기하기만 했고 감사하더라고요.

막상 이렇게 기회가 생기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우선 주어진 공연, 강연을 꾸준히 잘 꾸려가면서, 삶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글로 더 표현해 보고 싶어요. 이번에 책을 내면서 느낀 건 저는 '삶'에 관련된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소설, 학술, 판타지 이런 분야는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어요. 탱고에 관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탱고가 사람들의 삶에서 나온 춤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들려 주고픈 삶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글로 표현하는 일도 놓지 않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건 결과물이 나오면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실제 공연을 통해 사람들이 가진 춤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고 싶어요. '너의 글과 춤을 보고 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탱고가 이렇게 멋있는 춤이었구나. 춤을 보니 음악이 더 잘 들려'라는 새로운 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정말 잠도 못 잘 정도로 기쁘더라고요. 그래서 단순히 기술을 뽐내는 게 아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좋은 콘셉트를 가진 이야기와 공연을 만들어 실현해보고 싶어요. 꼭 탱고곡이 아니더라도 좋은 음악에 맞추어 탱고를 추는 공연을 다양한 곳에서 꾸려보고 싶어요. 음악과 춤은 뗄래야 뗄 수 없거든요. 좋은 음악이 있어야 좋은 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코로나 시대 이후 화면을 넘어 실제를 눈으로 만나는 게 너무나 중요해졌어요. 조금 생뚱맞게 들릴 수 있지만 코로나 시절을 겪은 아이들을 보며 알게 되었어요. 화면으로 먼저 모든 걸 배우다 보니 어른들과는 조금 다른 정서를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글과 춤을 통해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요. 실제를 만나는 게 예전보다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어요. 그 중요한 일에 글과 춤으로 함께 하고 싶어요. 너무 욕심이 앞서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솔직한 마음은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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