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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아버지가 무서웠지만, 이젠 더 싫어졌어요

2015.10.5.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

  • 입력 2016.07.16 20:23
  • 수정 2016.07.17 18:24
  • 기자명 장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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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굉장히 무섭고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부모가 돼서 자식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렇게 생각이 바뀌면서 아버지가 더 싫어졌어요.

 ⓒ  김자윤

“저는 맞벌이 부부이고, 초등학생인 딸이 둘 있고, 친정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굉장히 무섭고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부모가 돼서 자식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렇게 생각이 바뀌면서 아버지가 더 싫어졌어요. 이제는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아버지 때문에 제 성격이 이렇게 분노와 화, 짜증이 많아져서 괴롭다고 여겨져서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힘들어요. 감사기도, 참회기도를 하려고 해도 화만 나고 ‘자식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으니까 마음에 상처가 되고요. 부모를 좋게 생각해야 제 자존감이 높아져서 괴롭지 않을 텐데 그게 안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스님께 말씀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는데요?”

“옛날에는 화내고 혼내고 욕하고 그랬죠.”

“지금은요?”

“지금은 서로 말을 안 하니까...”

“그럼 따로 살면 되잖아요.”

“따로 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 때문에 내 성격이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굉장히 원망스러워요. 그 원망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러면 그 생각을 안 하면 되잖아요.” (청중 웃음)

“자꾸 생각이 나는 걸 어떻게 해요?”

“술을 자꾸 마시니까 건강이 안 좋아진다고 하면 술을 안 마시면 되고, 담배를 피우니까 폐가 안 좋아진다고 하면 담배를 안 피우면 되듯이, 그 생각을 해서 자꾸 괴로우면 그 생각을 안 하면 되잖아요. 질문자는 그게 재미있으니까 자꾸 보는 거예요. 약간의 고통이 있어야 쾌감을 느끼는 매저키즘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영화를 틀어서 괴롭다면 그 영화를 안 틀면 돼요. 아버지가 지금 화내는 것도 아닌데 옛날에 야단맞았던 기억을 지금 혼자서 영화처럼 계속 틀고 있는 거예요. 기억을 한다는 건 영상을 트는 거예요. 그만 틀면 됩니다. 봐서 슬프다면 안 봐야죠. 그런데 또 틀어놓고 보면서 또 울고, 저한테 와서 ‘그것만 보면 슬픈데요’ 이러고 있어요. ‘그러면 보지 마라’ 하니까 ‘보고 싶은데 어떡해요’ 이러니까 저도 ‘그럼 봐라’ 이러죠. (청중 웃음)

나도 모르게 자꾸 생각이 난다면 이 생각이 딱 들 때, 그러니까 영화가 틀어질 때 ‘아, 이러면 또 괴로워지겠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영화를 꺼야죠. 내가 켜려고 해서 켜는 게 아니라 자동으로 켜진다 해도 보는 즉시 꺼버리면 되죠.“

“그러면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은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영상을 꺼버리는데 원망할 게 뭐 있어요? 그걸 볼 때 원망하는 게 나오지, 아버지 생각을 안 하는데 왜 원망이 일어요? 그걸 굳이 보니까 화가 나는 거죠. 생각한다는 것은 영화를 틀어서 본다는 거예요. 틀어서 보니까 화가 나고 원망이 생기는데, 그걸 아예 틀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틀고 싶어서 트는 게 아니라 저절로 틀어지는데 어떡해요?’ 그러는데 틀어지는 즉시 딱 끄라는 거예요. 트는 건 내 마음대로 못 해도 틀어지는 즉시 끄는 건 할 수 있잖아요. 고개 딱 흔들어버리고 밖에 나가서 100미터 달리기를 하든지 108배 절을 하든지 해서 그걸 끊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절하면서도 그걸 또 틀어서 보겠죠, 뭐. (청중 웃음)

죽고 죽이는 영화도 재미있다고 자꾸 보는 사람들이 있듯이, 울면서도 또 보고 울면서도 또 보잖아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영상을 돌려놓고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거예요. 아버지가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는 옛날에 나를 괴롭혔다면, 그 영상을 지금 계속 틀어서 자기를 괴롭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예요. 그러니까 영상을 끄세요. 자동으로 틀어져서 딱 보일 때마다 ‘어!’ 하고 고개를 확 돌려버려서 생각을 바꾸세요. 벌떡 일어나든지 다른 걸 보든지 해서 생각을 바꾸면 돼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동으로 틀어질 때 끄는 방법은 영화 테이프는 그대로 두는 거예요. 가능하면 테이프를 지워버리는 게 더 좋겠죠. 그러면 안 틀어질 거 아니에요? 테이프를 지우는 방법은 우선 아버지를 이해하는 거예요. 나를 야단칠 때 아버지는 몇 살쯤 되었을까요?”

“30대 중반이요.”

“질문자는 지금 나이가 얼마예요?”

“45살이요.”

“그럼 질문자보다 10살이나 어린 남자잖아요. (청중 큰 웃음) 35살의 인간이란 건 내가 어릴 때 보면 굉장한 어른 같지만 커서 보면 완성된 존재가 아닌 불완전한 존재예요. 질문자 어머니는 어때요?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고분고분하고 잘 했어요? 어머니가 고집이 좀 셌어요?”

“어머니는 굉장히 인자하신 편이세요...”

“인자한데 어떻게 아버지가 화를 내겠어요, 아이고 참. (청중 큰 웃음) 여자가 착해도 말을 했을 때 상냥하게 ‘네, 여보.’ 하지 않고 입 꾹 다문 채 대답을 안 하면 답답해서 성질이 나요.(청중 웃음) 질문자도 애 키워보면 그렇잖아요. 야단쳤을 때 대들어도 화가 나지만, 엄마가 뭐라 하는데도 아무런 대꾸를 않고 방에 팩 들어가 버리면 더 성질나잖아요. 그런 것처럼 35살 때의 아버지는 아직 인격도 덜 성숙했고 뭔가 사업이 안 풀리거나 부부 갈등이 있거나 해서 자기 성질을 부린 것 뿐이지, 질문자를 일부러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에요. 질문자가 거기에 상처를 입은 거예요. 이제 다 컸으니 이해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고, 뉘 집 아들인지 몰라도 결혼해서 그 나이에 참 힘들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별 거 아니에요. 어리다는 건 어리석다는 이야기거든요. 어렸을 때 이해하지 못해서 상처 입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이젠 다 컸으니 ‘아버지도 그때 참 힘들었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을까’하고 이해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다음은 감사하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준 건 고맙잖아요. 법륜 스님은 질문자에게 화는 안 냈지만 질문자를 키워주진 않았잖아요. (질문자 웃음)

아버지는 화를 벌컥벌컥 내긴 했어도 재워주고 먹여주고 키워줬잖아요. 옛날 며느리들도 그래요. 맏며느리는 부모를 모시고 살지만 나머지 며느리는 명절 때만 오잖아요. 명절 때만 와서 하루 있다 가니까 시어머니한테 잘 해줘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이걸 몰라요. 그래서 둘째, 셋째 며느리는 착하게 여기고 맏며느리는 욕합니다. 사실은 일상적으로 돌봐주는 사람이 제일 효자예요. 불평도 좀 하고 성질도 좀 내지만 그 사람이 제일 효자예요. 배우자가 성질 버럭버럭 내고 좀 골치 아파도 이혼하고 보면 그만한 인간이 없어요. (청중 웃음)

어떤 사람이 돈 벌어주고, 어떤 사람이 밥해주겠어요? 세상 일이 뭐든지 다 내 마음대로는 될 수가 없어요. 그걸 고치려 들지 말고 ‘그래, 내가 원하는 대로 100퍼센트는 안 되지만 그래도 돈 벌어주는 사람, 밥 해주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잖아. 내가 아파서 병원 가면 걱정해주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지’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여기까지 오도록 키워준 사람이 성질은 좀 버럭거릴지언정 그 사람밖에 없단 말이에요. 법륜 스님은 겉으론 좋아보여도 질문자가 자라는 데 털끝 하나 보태준 게 없는데, 왜 그걸 다 보태준 아버지는 미워하고 해준 것도 없는 법륜 스님은 좋아해요? (청중 웃음과 박수)

영화 테이프를 지우는 방법은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때의 아버지 나이를 생각하면서 ‘아버지가 그때 참 힘들었나 보다’ 하고 이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를 키워줘서 감사하다’ 하고 고맙게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화 안 내고 잘 해줬다면 더 좋았겠지요. 그러나 세상이 다 내 원하는 대로 만은 안 돼요. 내 원하는 대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살아 계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죠. 돌아가시고 나면 뭘 어떻게 해드리고 싶어도 해드릴 수가 없잖아요. 살아 있으니까 그래도 뭔가 해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 부모님 계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세요. 돌아가시면 또 후회합니다. 사람 심리가 희한해요. 있을 때는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없으면 또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불효자가 많이 운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죽은 뒤에 울지 말고, 살아 있을 때 고맙게 여기세요. 최소한 미워는 하지 말아야죠. 저는 효도하란 이야기는 절대로 안 합니다. 그런데 미워는 하지 마세요. 부모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줬지 나한테 손해 끼친 게 없으니까요. 야단친 건 ‘야단은 쳤지만 먹여줬다’고 생각해야 해요. 질문자는 야단치고 먹여주는 사람이 나아요? 야단은 안 쳐도 굶겨 죽이는 사람이 나아요? (청중 웃음)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절을 하면서 ‘아, 아버지도 힘들었겠다’ 하고 이해하는 것이 하나이고 ‘그래도 나를 이렇게 키워주셨다’ 하고 감사하는 것이 둘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좋아져요. 그리고 자꾸 생각나면 생각날 때마다 빨리빨리 전원을 끄세요. 리모콘을 하나 사 줄까요?” (스님 웃음)

“네, 고맙습니다.”

질문자는 큰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화를 내던 아버지는 그 당시엔 35살의 불완전한 사람이지 않았느냐’, ‘야단은 쳐도 먹여주고 키워주지 않았느냐’ 는 말씀에 질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눈물이 맺힌 질문자에게 청중들은 박수를 보내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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