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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와 우렁이 이야기

귀농일기 (10)

  • 입력 2017.02.28 18:21
  • 기자명 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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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윤

오늘 토론의 기조발제는 장문인이 하고 있었다.

보통 키에 날아갈 듯 마른 체형, 그리고 튀어나온 광대뼈, 까무잡잡한 피부, 아무렇게나 주워 입은 헐렁한 반바지 차림에 날카로운 인상, 뭐 이런 지극히 한국적인 특징을 다 갖춘 그는,

자기가 아마 어느 전생에 중국 무당산의 무당파 장문인 이었음에 틀림없고, 금생에 한국의 모후산에 들어온 것도 다 무당산의 도를 선양해서 중생을 제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 때문이라고 썰을 풀었다,  

- 그리고 너희 같은 논두렁건달들도 허구한 날 곡차에 주사로 허송세월하는 것은 하늘이 내린 ‘性命(성명)’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는 일이지 않느냐, 시골에 들어와서 농사짓고 김 메고 마실 다니며 노는 것은 좋으나 거기에 그치는 것은 도가 아니다.

좌중의 건달들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일장 구라를 풀어댄다.

그런 장문인이 이번엔 느닷없이 농사 얘기를 끄집어내었다. 

- 빌어먹을 그놈의 잡초 때문에 농사를 지어먹을 수가 없단 말이여, 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풀들이 날 잡아먹을라고 하는지 모르겠구만, 농사는 풀들과의 전쟁이라고 누가 그러던디, 딱 맞는 야그여,

우렁이가 제초의 기술자라 해서, 어렵사리 구해갖고 와서 작전에 투입을 했다 이말이지, 아 그런데 말이여 글쎄, 이 년놈들이 하라는 제초는 안허고 시도때도없이 즈그들끼리 짝짝이 붙어갖고, 거  뭐시냐, 그 짓거리만 하고 자빠졌드란 말이지.  

ⓒ 김자윤

심드렁한 심사로 듣는둥 마는둥 하던 건달 일동이 급 호기심 발동하여 고개를 삐죽 내민다. 그래갖고? 

- 즈그들도 다 사람처럼 남녀가 있는 것이고, 그리고 또 오죽 급했으면 하라는 일은 안하고 그러고 있겄냐, 싶어서, 내 인간적으로 백 번 천 번 사정을 봐 줄라고 노력을 했제, 며칠간 여유를 줬어, 인자 그러다보면 즈그들도 정신 차릴 때가 있겄지 하고 말이야.  

듣고 있는 건달들이 속이 탄다. 그래갖고? 

- 그래갖고 설라므네, 말하자면 며칠 후에 다시 이놈들의 근황을 살피러 갔지, 근데 말이야, 내 속으로 인자 이것들이 반성을 하고 설라무네, 무논에서 올라오는 잡초들을 사정없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그래서 말하자먼 이 주인의 체면을 봐서라도 논바닥을 좀 깨끗하게 청소하고 그러고 있겄지, 하고 들여다봤더니만, 아니야, 웬걸, 이건 또 무슨 조화람. 

ⓒ 김자윤

태연한 척 귀를 쫑긋거리는 건달들을 힐끗 보고는 장문인이 다시 말을 잇는다. 

- 지난번엔 쌍쌍파티를 벌이던 것들이 인자 볼수록 가관이야, 벌써 새끼를 다 까분  모양으로다가 빨간 콧농 같은 알집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것이 아닌감, 하라는 작업들은 안허고 즈그들 볼 일만 보고 있는 이놈들을 보고 있으니 내 울화통이 터져 죽는 줄 알았고만, 이 우렁이놈들,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너무 한심해서 환장하겠더라고.

농사는 타이밍의 예술이라는디, 우렁이 투입 작전의 타이밍에 혹 문제가 있었나, 아니면, 우렁이 종자에 문제가 있었나, 이러고 집중적으로다가 연구를 해부렀단 말이시.  

아무래도 우렁이 종자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결론을 맺고 보니, 장문인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질 떨어진 종자가 결국 문제다, 내 다시는 우렁이 농법 같은 것은 안 하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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