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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동생들이라 여기고 잘 보살피고 있어요”

여남고 기숙사 사감 윤득경 선생님 이야기

  • 입력 2017.05.01 13:35
  • 기자명 정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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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득경 선생님과 기숙사 학생들이 운동장 잔디밭에 모여 앉아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영어를 전공한 윤득경 선생님은 부산 출신이다. 
부산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한 후 2016학년도에 전남에서 교직을 첫 발을 디뎠다. 대도시에서만 자란 윤 교사는 전남이라는 지역 자체도 생소했지만 첫 부임지가 여남고라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여남고는 여수의 작은 섬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섬에 근무할 거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은 일요일, 고향인 부산에서 점심을 먹자마자 여수로 향하는 발길이 언제나 가볍다. 

다음 주 학교생활을 위해서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오는 70여 명의 학생들과 금오도에 거주하는 10여 명의 아이들을 기숙사에서 맞이하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윤 사감선생님은 학생들이 자신을 형이나 오빠처럼 편하게 대하고 먼저 다가와주는 것이 늘 고맙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80여 명이 한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교직생활의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사감 일은 대개 밤 9시부터 시작된다. 공부를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올 학생들을 위하여 문을 개방하고 여름철에는 에어컨을, 겨울철에는 보일러를 켜둔다. 각 방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시설은 안전한지도 함께 점검한다. 

1, 2학년 학생들은 밤 10시에 야간교육활동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온다. 간단한 청소와 세면을 마치고 나면 10시 45분부터 점호를 시작한다. 이 때,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 학생들이 있는지, 특이사항이 있는 학생들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한다. 

점호하는 동안에 학생들과 그 날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웃을 때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느낀다. 3학년 학생들은 1시간 정도 공부를 더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학생들의 취침은 대개 자정 무렵에 이루어진다.

학생들이 잠자리에 들었다고 사감선생님도 잠을 잘 수 없다. 새벽 2시까지는 CCTV를 통해 학생들이 완전히 잠이 들었는지, 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지 등을 확인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응급환자가 생길 것도 대비해야 한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새벽 2시 30분경에 휴식을 겸해 잠시 눈을 붙인다.

기숙사 야간 점호 시간, 사감선생님과 학생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취침 전 점호를 취하고 있는 모습

새벽 시간에도 사감선생님은 학생들보다 30분 일찍 일어난다. 학생들을 기상 시킬 준비도 하고, 날씨도 확인한다. 6시 30분에 학생들을 기상시키고, 건강 이상 여부도 체크한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체조가 끝나면 간단한 세면 시간을 주고 식사 지도도 한다. 

아침 식사를 거르려고 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8시경에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나면 각 실을 순회하면서 시설 고장 여부나 청소 상태 등도 일일이 점검한다. 8시 30분이 되어서야 길고 긴 사감으로서의 역할은 마무리된다.

윤 선생님은 사감을 처음 맡은 지난 해, 실수도 있었다. 각 실마다 전 학년이 고루 섞이어 한 방을 사용했는데, 다른 방에 거주하는 1, 2학년 학생들이 놀러와 방을 어지럽혀 놓은 상태에서 그대로 나가버린 것이 발단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온 3학년 선배가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방을 보고서 1, 2학년 학생들에게 훈계를 하는 과정에서 후배들이 불손한 태도를 보이자 순간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기숙사 학생들이 취침 전에 모여 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경험이 있는 사감이었다면 3학년 선배들이 후배들과 그 문제로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사감 입회하에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3월 초부터 4개월 동안 폭력 사건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학생들끼리의 대화를 허락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성적 판단이 아직은 미숙한 학생들이기에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판단이었다. 

연간 단 1건 발생했던 이 폭력 사건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거치면서 사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작년도에 입주한 새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침대에 누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처음에 기숙사에 들어온 학생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중학교 때까지 자유롭게 생활하다가 짜여진 틀에 맞추어 생활해야 하는 기숙사 생활이, 그것도 외딴 섬에서 이루어지는 규칙적인 삶이 마치 군대에 입대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감들은 3월 한 달간은 특히 긴장해야 한다. 가족들로부터 처음으로 떨어져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마음까지 아프다. 마음이 아프니 덩달아 몸도 아프다. 보건소에서 학교에 집단 질병이 돌지 않았나하는 의심까지 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4월 중순쯤이 되어서야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에 서서히 적응한다. 단체생활을 하면서 규칙을 지키는 것이 편하고 자유롭다는 것도 깨닫는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도 몸으로 느낀다.

 

여남고 남학생 기숙사는 3학년 학생들이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1, 2학년과 다른 방으로 배치된다. 3학년 학생들이 기숙사로 들어오는 시간이 1시간 가량 늦어지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은 선배들과 함께 생활하기를 희망한다. 

작은 학교에서 선후배가 가장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한 방을 쓰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 때문이다. 한 방을 사용하면 선배들로부터 배울 것도 많다는 것을 알아간다. 선배들도 후배들을 친동생같이, 때로는 친구같이 대해주는 과정 속에서 우정도 싹튼다. 

다른 학교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학교생활의 재미도 찾아간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통해 한 가족이 되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여남고는 학교에서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기숙사에 들어오면서 핸드폰을 선생님께 맡기고 금요일 오후, 귀가할 때 찾아가기 때문이다. 여남고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학생들 사이에 좋은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밤에 잠을 충분히 잘 수 있어서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거나 운동을 할 수밖에 없어 교우관계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학년에 상관없이 모두가 한 형제, 자매처럼 지내기 때문에 학교폭력도 발생하지 않는다. 선생님들과도 허물없이 친하게 지낼 수도 있다.

기숙사 아침 점호 시간에  기숙사  학생들이 체조를 하고 있다.

윤 사감선생님은 기숙사는 단체생활이고 개인의 사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다른 사람에게 많은 피해를 주지 않도록 규정에 따라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다. 

학생들을 엄하게 꾸짖기도 해야 하는데, 그런 날은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사감선생님을 학생들이 이해해주고 잘 따라주어서 항상 고맙다. 학부모님들도 자녀들의 학교와 기숙사 생활에 대해 전폭적으로 신뢰해 주셔서 늘 감사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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