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산만한 영화 <리얼>... 그래도 의미는 있었다

[리뷰] 가면 쓴 현대인의 진짜 얼굴 찾기

  • 입력 2017.07.19 11:32
  • 수정 2017.07.19 15:28
  • 기자명 정병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리얼'의 한 장면. 가면을 쓴 또 다른 장태영(김수현).

▲영화 '리얼'의 한 장면. 가면을 쓴 또 다른 장태영(김수현).ⓒ CJ엔터테인먼트


'아시아 최대 규모 카지노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와 전쟁'. 이 거창한 홍보 문구와 '극사실주의 액션'을 추구한다는 감독의 이야기를 보며 사실 썩 끌리진 않았다. 앞서 본 <악녀>나 <불한당> <프리즌> 등에서 폭력 과잉의 액션물에 적잖이 싫증났기 때문이다. '폭력과 마약 빼고는 영화 만들기가 힘든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예고편을 보고 '뭔가 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후기 한 편 읽어보지 않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첫 장면은 곱상하게 생긴 조폭 장태영(김수현)이 신경정신과 의사 최진기(이성민)에게 심리치료 상담을 받는 모습이 펼쳐져 뜻밖이었다. 장태영은 카지노를 주름잡는 보스이지만, 해리성 장애(다중인격 장애) 환자다. 그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자아를 제거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갖고자 한다.
 

영화 리읠의 한 장면 장태영의 애인 송유화

▲ 영화 리읠의 한 장면장태영의 애인 송유화ⓒ CJ엔터테인먼트


의사 최진기는 상담 도중 장태영이 금방이라도 한방 날려버릴 듯 을러대는 행동을 보이는데도 노련한 의사답게 태연히 그를 대한다. 그는 최면으로 장태영의 눈을 감긴 뒤 상담을 이어가며 그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영화 <24 아이덴티티>에서 흥미롭게 선보인 해리성 장애. 그 질환을 가진 카지노 보스와 예사롭지 않은 의사의 등장은 이 영화가 조폭들이 펼치는 단순한 액션물이 아닐 거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장태영의 분신(김수현의 일인이역)은 자칭 르포 작가이자 카지노 시에스타 보스 장태영을 도우려는 손 큰 투자자기도 하다. 그는 안면에 큰 부상을 입어 가면을 쓴 채 등장한다. 점차 완치돼 가는 동안 그 가면을 조금씩 떼어내며 자신이야말로 실제 장태영이라고 주장한다. 조폭 장태영과 르포작가이자 투자자 장태영, 이들은 처음에는 목소리나 행동이 전혀 다르다. 투자자 장태영은 조폭 장태영을 닮고자 그를 촬영한 영상을 보며 그의 언행을 흉내 내려 애쓴다. 이런 그의 행동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닮고자 밤낮 없이 그의 사진과 영상에 푹 빠져 사는 청소년 같아 보인다. 
 

 장태영과 상담 중인 의사 최진기

▲장태영과 상담 중인 의사 최진기ⓒ CJ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조폭 대부 조원근(성동일 분)은 본의 아니게 두 장태영의 역할을 바꿔놓는다. 그는 진짜 장태영을 총으로 쏘았다. 이 때를 기점으로 두 장태영은 두 자아가 바통 터치하듯 뒤바뀐다. 즉 카지노 조폭 장태영이 르포작가가 되고 르포작가 장태영은 카지노 조폭으로 돌변했다. 속사정은 알기 힘드나 조폭 장태영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신세가 되자 허약한 자아의 르포작가로 변신한 것으로 보인다.  

시에스타 카지노를 차지하려는 '거대한 음모' 따위는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두 장태영의 분열된 모습과 그들이 서로를 알아가며 역할 교대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그들은 현실인지 꿈인지 알기 힘든 세계를 넘나들며 갈등하고 연대하며 조원근 일당과 결투를 벌인다. 말이 결투이지 장태영 혼자 조폭 수십 명을 순식간 때려눕히기에 너무 일방적이다. 그리 실감나는 액션은 아니다.
 

 암흑가 대부 조원근은 표면상 친절한 신사다.

▲암흑가 대부 조원근은 표면상 친절한 신사다.ⓒ CJ엔터테인먼트


조원근은 표면상 그의 딸에게 자상한 아빠이고 부하들에게도 친절해 보인다. 장태영이 그의 앞에서 오만하게 굴며 자신의 부하를 폭행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흥분하는 건 좋지 않다"며 젊잖게 타이른다. 그의 잔인함은 한참 뒤에 나온다. 어느 날 조원근은 부하들을 무릎 꿇려 놓고는 무슨 이유인지는 불분명하나 한 부하의 머리를 주방도구로 초죽음이 다 되게 두들겨 팬다. 어느 게 진짜 조원근일까. 아마 둘 다일 거다.

영화 <리얼>에 등장하는 마약 '시에스타'는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열쇠 역할을 한다. 시에스타 카지노, 그 뒤에서 밀거래되는 막대한 마약 '시에스타'('낮잠'이란 뜻의 스페인어). 두 장태영과 그의 애인 송유화(설리), 의사 최진기까지 모두 시에스타에 중독된 상태다. 마약 시에스타는 사람에 따라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아무렇지도 않게 환각작용만 주기도 한다.

영화 <리얼>은 장태영의 분열된 자아를 시에스타라는 마약을 매개로 개연성을 높이려 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중독자인 송유화에게서는 이중적 모습을 보기 힘들다. 최진기는 노련한 의사이면서도 상습 도박꾼이라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도 마약 중독자다운 행동을 그다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리얼>은 이해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가 하면, 진짜이고자 하는두 장태영이 경쟁하기에 혼란을 준다. 여기에 그 카지노를 먹으려는 조폭 대부 조원근과 그를 뒤쫓는 형사 노염(이경영 분)까지, 인물들이 다소 산만하게 꼬여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볼거리가 적지 않다. 가령 어스름한 초저녁 드높고 현란한 서울의 빌딩숲에 둘러싸인 수영장을 배경으로 장태영과 그의 애인이 벌이는 정사는 한 폭의 그림같다. 또 그 수영장에서 마주한 두 장태영의 모습은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게 무엇인지 상징한다. 장태영과 조폭들의 격투를 군무로 묘사한 장면도 자못 색다르게 다가온다. <리얼>은 도시의 욕망으로 점철된 포스트모던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갈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스토리가 썩 설득력 있진 않지만 나름 신선한 시도가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