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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된 40만 명 구출? 실화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리뷰] '다이너모 작전'을 알고 보면 훨씬 유익할 영화 <덩케르크>

  • 입력 2017.07.26 22:14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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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병을 옮기는 토미와 깁슨 무수한 군인들이 구조선의 승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부상병을 옮기는 토미와 깁슨.

▲ 무수한 군인들이 구조선의 승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부상병을 옮기는 토미와 깁슨.ⓒ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덩케르크>의 인기가 날마다 크게 치솟는 중이다. 개봉 5일째 누적 관객 수 150만 명을 넘기며 일간 순위 1위를 달린다.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라지만, 이 무더운 여름에 여기저기서 폭탄 화염이 치솟는 '전쟁 영화'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예고편은 '이것은 전쟁영화가 아니다'라고 소개한다. 표면상 전쟁 영화가 맞는데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독일군과 연합군의 '교전'보다는 연합군의 성공적 '철수'에 더 방점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선지 교전 상대인 독일군의 얼굴이나 대사, 병력의 움직임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는 하늘, 땅, 바다에서 펼쳐지는 됭케르크 철수 과정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상과 생존을 위한 사투를 그린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프랑스 북부 항구 됭케르크에 영국군과 프랑스군 등 연합군 40만여 명이 고립됐다. 그들은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철수를 시도한다. 자신을 태우러 올 군함이나 어선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독일 공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아 시나브로 몰살당할 처지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됭케르크에 고립당하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또 이 철수작전의 경과를 알려주는 건 영화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신문기사 쪼가리가 전부이다.
 

공포에 질린 병사들 언제 공습이 있을지 몰라 공포에 떨며 구조를 기다리는 병사들.

▲ 언제 공습이 있을지 몰라 공포에 떨며 구조를 기다리는 병사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놀란 감독이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다루면서도 굳이 그 배경을 알려주는 데 인색한 까닭은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됭케르크' 철수 작전, 이른바 '다이너모 작전'이 서구 유럽에서 그만큼 유명한 상식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치고 다이너모 작전에 대해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한국전쟁의 '1.4 후퇴'조차 젊은 세대 중에는 아는 이가 그리 흔치 않다. 더욱이 물 건너 남의 나라 전쟁사야 오죽하랴. 감독은 유럽 밖 세계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까지는 제작 당시 크게 고려하지 않은 게 아닐까. '됭케르크'는 '다이너모 작전'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는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로 보인다.

독일은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무혈합병하고 그해 9월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1940년 4월에는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하고, 5월 10일에 베네룩스(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침공하는 등 강력한 기갑부대를 앞세워 개전 초반부터 유럽 전체를 금세라도 삼킬 듯이 거침없이 진격하였다. 연합군은 독일 기갑부대가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뚫기는 어려울 것이라 보고 본격적인 공동 대응을 위한 전열을 정비하던 중이었다. 한데 구데리안 장군이 이끄는 독일 기갑군단은 알덴느 삼림지대를 뜻밖에도 손쉽게 돌파해 프랑스를 갈라놓고 연합군을 스당에서부터 됭케르크 해안까지 밀어붙였다.

됭케르크에 고립된 연합군 40만이 몰살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때 히틀러는 됭케르크에서 불과 20km 밖에 있던 기갑부대의 진격을 갑작스레 중단시켰다. 기갑부대를 쉬게 한 뒤 공군과 보병만으로도 패잔병 섬멸은 충분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히틀러의 이 오판으로 됭케르크에 고립된 연합군 대다수인 33만8000여 명(영국군 22만, 프랑스군 11만, 벨기에군과 민간인 8000여 명)은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무사히 철수하였다. 연합군의 철수를 위해 해군함정 222척, 민간선박(트롤선, 소방정, 구식외륜선, 돛단 나룻배, 요트 등) 665척이 동원됐다. 영국군의 철수를 엄호하던 프랑스군 4만여 명은 생포 당하였다.
 

토미  구조선에 오를 궁리 중인 토미.

▲ 구조선에 오를 궁리 중인 토미.ⓒ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전쟁 자체보다는 그 전장에서 '살아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 과정이 처절한가를 보여준다. 됭케르크 해안은 퇴각을 위한 군함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서서히 죽어가는 군인들로 즐비하다. 그들은 전의를 거의 상실한 채 시시각각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로 모두 온통 수심이 가득하다. 뭍에서 싸워야 할 육군이 해변에 늘어 서 있으니 무조건 철수 말고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영국군 토미(핀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승선 순서가 언제인지 모를 막막한 상황에서, 프랑스군 깁슨(아뉴린 바나드)과 함께 한 부상병을 들것에 싣고 병원선을 얻어 타는데 겨우 성공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야속하게도 지휘관은 그들을 콕 집어 "부상병을 옮겨 실었으니 이제 내리라" 명한다.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군함에서 내려 선착장 밑기둥에 숨어서 지켜보며 다른 배에 오를 기회를 찾는다. 그런데 잠시 후 독일군의 공습으로 그들이 내린 병원선은 순식간 침몰한다. 이 장면은 운 좋게 군함을 얻어 타도, 혹은 불행히 타지 못해도 생존을 보장하기 힘든 사면초가 상황임을 잘 보여준다. 

됭케르크 해안에는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 앞다퉈 구조선에 오르고자 아비규환을 이루는 패잔병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같은 연합군이면서도 소속 부대와 국가를 내세우며 자기네 좀 살자고 한 사람이라도 기를 쓰고 배제하려 든다. 이는 주인 모를 한 어선 밑창에 숨어든 병사들 모습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선 주인 없는 한 어선을 발견해 들어가는 병사들.

▲ 주인 없는 한 어선을 발견해 들어가는 병사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들은 누가 쏘는지도 알 수 없는 총격을 받아 구멍이 숭숭 난 배가 점차 가라앉자, 자신들을 살려준 은인 프랑스 군인 깁슨에게 '당장 내리라'고 강요한다.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총탄 세례를 받을 텐데도 자신들이 살아야 하니 '네가 죽어줘야겠다'는 태도다. 저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부끄럽게 살아남았건만 영국 시민들은 생존한 군인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한다. 살아남은 것만도 천만다행이고 훌륭하며 고맙다는 듯 말이다.

다이너모 작전 과정에서 영국공군 전투기 472대가 격추됐고 민간어선과 군함 수백 척이 어뢰나 폭격 등으로 침몰하였다. 이런 엄청난 희생을 거쳐 38만여 명이 무사히 도버해협을 건넜다. 독일 공군이 조금만 더 강했어도, 또는 히틀러가 독일 기갑부대의 진격을 명하였다면 됭케르크에서 도버해협을 건넌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히틀러가 기갑부대의 됭케르크 출격을 명하지 않은 사실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그의 명령만 있었다면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됭케르크에서 괴멸당하였을 것이고 전쟁은 독일의 승리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됭케르크에서 철수에 성공한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미군의 지원에 힘입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침으로써 독일군에 치명타를 안겼다. 그만큼 됭케르크 철수작전이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매우 중대한 고비였음을 알고 이 영화를 본다면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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