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영화 <택시운전사> 1980년에 머문 '가나다 다실'

[인터뷰] 마음 비우고 산다는 주인장, 고순애씨

  • 입력 2017.08.21 08:25
  • 수정 2017.08.21 21:06
  • 기자명 전시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수 진남상가 내 2층에 자리한 가나다 다실

다방에 들어서자 길쭉한 어항이 보인다. 영화<택시운전사>에서 본 모습 그대로다. 천장마다 색색의 등도 있다. 노랑, 에메랄드, 빨강, 흰색등. 
그리고 탁자마다 놓인 설탕통이 보였다. 이런 다방에서 커피에 타는 다방용 설탕통이다.

다실 문을 열면 바로 계산대가 보이고 그 옆에 가족사진이 얌전히 놓여있다. 에어컨 옆에는 신문이 쌓여있다. 공중전화자리에는 전화기 대신 전축이 있다. 시간여행을 온 것 같다.

다방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어항

창가에서 떨어진 정중앙에 자리잡고 앉았다. 앉자마자 아주머니가 탁자에 냉수와 플라스틱 통을 두고 간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가게에 있는 사람은 주인과 대화중인 한 사람 '아는 동생'뿐이었다. 

카메라로 촬영하자  "<택시운전사> 영화보고 왔나봐"하며 주인장 고순애(62, 여)씨는  "영화 촬영 장소는 여기야"하며 안내하길래 영화 무대의 테이블로 가서 냉커피를 시켰다.

영화에서 힌츠 페터 독일인 기자가 다방에서 광주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  ⓒ. 더램프(주)

다방 안에는 그 흔한 음악소리 하나 없이 TV뉴스와 에어컨 소리 뿐이다. 오래된 에어컨 소음만 빼면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최근 방송국에서도 인터뷰가 이어진다고 주인장은 귀뜸한다. 순천 KBS에서도 취재 왔었고, 이어서 광주일보에서도 인터뷰했다고 말했다. 

방송국 사람들은 짜다고. 취재와서는 '여기 대박났다'고 말할 뿐, 커피도 안 시키고, 그래서 그는 방송국에서는 담부터 오지 말라고 말했단다.

에어컨은 오래됐지만 성능이 좋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덥다며 기자를 에어컨 아래로 안내했다. 내어준 컵도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긴다. 기자가 이런 다방에 온 건 처음이지만 예전에 즐겨보던 드라마 응팔이가 떠올라서 낯설진 않았다. 

한낮인데도 곧 비가 내릴 듯 어두운 날씨와 다방 분위기가 잘 어울렸다. 손님이 가고 티비소리와 에어컨소리에 간간이 아주머니가 설거지와 냉장고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기나다 다실 내부 정경

손님이 떠나자 아주머니는 걸레를 들고 테이블과 소파 곳곳을 닦기 시작했다. 깨끗한 내부가 괜히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에어컨 호스는 대야에 받쳐 물받이통을 대신하고 있었다. 오래된 에어컨에 대해 묻자 20년전 전주인에게서 인수할 때부터 있던 에어컨인데 성능이 좋다고 했다.

가나다 다실은 창문을 열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라 평소에는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라면 귀에 거슬렸을 오래된 에어컨 소음마저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막내 딸이 40이라는 사장 고순애(62)씨는 처음 쌀쌀맞은 주인 아주머니 이미지였는데, 마치 오랜만에 만난 엄마 친구처럼 붙임성 좋은 사람이었다.

인터뷰 중 두 여자 손님이 오더니 바로 창가쪽의 영화속 장소를 찾아내어 그 자리로 가더니 사진을 찍는다. 주인이 다가가 다들 오면 그 자리를 찾는다며 말을 건다. 여자는 프림 없는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고순애 아주머니는 하남시가 고향인데 83년도에 여수로 내려왔다. 내내 살림만 하다가 다방을 맡게 되어 처음에는 가게 청소를 하는 데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단다. 
서먹함을 달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제부터 영화<택시운전사> 촬영 얘기다.

“그때 촬영은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했어, 촬영 전에 여기 벽도 다 칠하고, 원래 에어컨 있는 자리는 막았는데”

옆에서 인터뷰를 듣던 아가씨 손님은 이곳을 서울의 '초원다방'과 비교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고순애씨는 촬영얘기를 이어간다.

“여기 다방이 좀 어두워, 45년 된 다방이거든, 그러니까 영화를 찍었지. 장훈 감독이랑 여기서 촬영할 때 내가 유자차를 타서 대접했어.

그 사람들은<택시운전사>개봉 열흘 남겨두고 왔더라고. 그때 영화 찍는 사람이 150명 왔었어, 건물 밖에 큰 차량이 6대나 있었고, 사계절을 다 찍느라고 겨울옷을 입기도 하고. 근데 영화에는 조금밖에 안 나온다고 그래."

하시는 말씀이 어째 영화를 못본 것 같다. 그는 실은  <택사운전사> 영화를 못봤다. 짬 내기 어려운 1인 경영의 '가나다다실'이 처한 현실일게다. 대화는 아랑곳 없다.

"장훈 감독이랑 스탭 20명이 와서 여기 안에서 일하길래 내가 . 장소 보러 다니신 분이 곡성에서부터 내려왔다고 그러더라고, 2층에 위치한 다방을 찾다가 여길 선택했다고. 영화 찍을 때 밖에서 학생들이 구경오고 엄청 시끄러웠어, 나는 (또) 영화 찍고 싶은데, 건물 사장님이 싫다하니까(웃음)....

이런 다방에서 영화 촬영 자주하면 명소가 되고 영업에도 도움되고 좋을텐데, 왜 집주인은 싫어할까. 건물주는 영업과는 무관하다. 건물의 안위(?)가 더 걱정이다.

"영화 찍는 사람들이 (가게)벽을 하얗게 칠하는 데 170 준다 하더라고, 우리는 그냥 두면 좋겠는데. 처음 벽이 어두운 색이었어, 근데 (영화 찍는다고) 디자인 바꾸면서 분홍색으로 바꾼거야. 다방이 핑크색이면 손님들이 더 좋아한다고. 

집을 자꾸 수리하면 고장이 나잖아. 집 주인이 수리하는 걸 안 좋아해. 지금 가게가 조립식으로 이어져 있어서 다행이지, 망치질하면 더 안좋지. 영화 촬영하는 사람들이 일을 잘하더라고. 8월이라 더워서 내가 복숭아 주스도 주고 그랬어. 촬영하는 사람들은 다 좋드만.

얼마 전 광주 신문사 사람들이 취재온다길래 내가 아. 그만 오세요, 라고 그랬어. 여기 대박났다고 말하라고 시키길래, 내가 '와서 커피도 안 시키면서 뭘'이라고 했더니, '전 쌍화차 먹을 거예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오더니 세 명이서 차 한잔씩 먹고 갔어,

이곳에서 장사를 20년 했는데 나도 이제 그만 하려고. 작년 11월에 가게를 내놨는데 건물 터가 좋아서 바로 두 사람이 오더라고, 하지만 건물주는 다방이 아닌 사무실 내주려고 하고 그쪽은 다실을 하고 싶어해서 결국 성사되지 못했어.“

옆 테이블 손님은 아예 이곳을 보존해서 영화촬영전문 건물로 특화시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주인이 아니어서인지 답을 하지 않았다.

“나도 다리가 아파서 이제 오래 못해, (다리에 붙인 파스를 보여주며) 어저께 시청 관광과에서 와서 월요일에 가게에 ‘택시운전사 촬영지’ 라고 팜플렛 해준다고 하더라고,”

이 45년된 다방이 아직도 촌스럽지 않은 이유는 73년도에 건물주가 원래 '가나다 제과점'에서 다실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리고 22년전 (96년도)부터 지금의 아주머니가 계속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가게에서 집이 5분 거리라 편하다는 아주머니는 남편도 가게에 가끔 들른다고 한다.

“건물이 안 나가서 내가 계속 하는거야, 용돈만 벌어쓰는 거지. 장사도 안돼, 한달에 90 몇만원 벌면 집세20, 전기세 10만, 재료비 빼고나면 4~60 밖에 안 남아. 장사 안될 땐 그것도 안 나오고,  가게 내놓을 당시엔 장사가 너무 안돼서  10,20밖에 안 남아서 내놓은 거지.”

인터뷰 도중에 중년 여자 네 손님이 들어왔다. 서울서 왔다는 네 사람은 영화보고 왔다며 도착하자마자 가게 곳곳을 사진 찍느라 분주했다.

가나다 다실  한 테이블에 손님들이 대화중이다.

이 다방은 이제 명소가 됐다.

"이번에 또 영화 ‘마약왕’ 찍자는 제의가 들어왔는데(2018개봉 예정, 현재8.11영화 70%촬영을 마친 상태) 나는 좋은데,  건물주는 누구나 오래된 건물이라 만지고 고치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 거기다 촬영하면 시끄럽잖아. 그래서 주인이 촬영을 거절했어" 

그는 영화촬영을 거절한 걸 아쉬워 하며 날이 어두워지자 등을 켜기 시작했다. 8시다.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아 다방 안은 한층 더 고즈넉해졌다.

다실에서 바라본 비오는 거리

저녁식사를 꺼내자 평소에는 가게에서 누룽지로 식사를 하지만 오늘은 동생이 보내준 갈비를 구워 먹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원래 가게에서 같이 먹는 사람이 있단다.

가끔 어린애들이 오면 주스를 찾아서 일부러 오렌지 주스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둘 정도로 정이 넘치는 분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묻자, 아주머니는 현재 몸 상태 얘기를 꺼낸다. 원래 자식들은 일찍이 가게 문을 닫고 쉬시길 바랬지만 암센터에서 가게를 유지하는 게 (우울증에) 좋을 거라고 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긍정적인 분이라 표정과 말투는 내내 밝았다.

매일 차를 만드는 사장님 손에 붉은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다. 손톱이 보기 싫게 갈라져 어쩔수 없이 바르는 거라며 쑥스러워 한다. 아직도 집에서 스스로 반찬을 하고 자식들에게 나눠주느라 쉴 새가 없는 손이다.

“어릴 땐 집안일만 해서 바깥일을 안 해봤어. 지금 이렇게 장사하는 걸 보면 형제들이 다 놀라. 다방일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야지. 65세까진 해야 되는데...하면 뭐해,  전 기자는 여기 (다방이) 있는 줄도 몰랐다면서(웃음). 아줌마들은 자주 와.  순천, 담양에서도 열 명도 넘게 계모임도 하고 그랬지. 우리 가게가 넓으니까 다 여기 모였지, 근데 계가 깨지면서 이제 손님이 다 줄었지.”

운영이 끝나고 퇴근하는 사장님

시종일관 유쾌한 아주머니 덕분에 편안하게 인터뷰할 수 있었다. 22년동안 이곳에서 빚 안 지고 외상 하나 없이 영업하고 있는 걸 감사해 하는 '가나다다실' 주인장. 그 비결은 '맘 비움'이다

“바람이 있다면, 여기서 앞으로도 영화 자주 찍었으면 좋겠어...호호호. 난 맘 비우고 살아. 가게에 손님 많지 않다고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기도 하는데 나는 걱정 안해. 손님 오면 온대로, 안오면 안온대로... 맘 비우고 사니까 좋더라고.”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