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납북어부의 아들』 저자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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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납북어부의 아들』 저자 심명남
  • 오병종
  • 승인 2017.12.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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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지 섬 출신 여수산단 노동자의 '꿈틀거림'

'시민기자'를 겸했기에 저널리스트적 시각 다양하게 선 보여 

심명남 기자가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모아서 『납북어부의 아들』이란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펴냈다. 특히 여수산단의 노동자이면서 <오마이뉴스>와 지역의 <여수넷통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한 저자만의 특별한 이력이 더해져 저널리스트적인 면모도 보여 관심을 끈다.

『납북어부의 아들』지은이 심명남을 본지 오병종 편집국장이 만났다.

한편, 14일 오후 6시 30분 학동 목화웨딩홀에서 열리는 <여수넷통뉴스>창간 6주년 기념식에서는 심명남 기자의 '북콘서트'도 함께 열린다. 독자 여러분을 정중히 초대합니다.

 

지난 11일 <여수넷통뉴스> 편집국에서 오병종 편집국장(오른쪽)과 인터뷰 하는 저자 심명남(왼쪽)   ⓒ 김숙현

Q.지난 2월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으뜸상'을 수상한 기념으로 인터뷰 하고 10개월만이다. 그때 책을 펴내볼까 구상중이라고 했는데 약속대로 실천했다. 축하한다. 책 제목이 수상(?)하다.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책을 출간하면서 그동안 저의 살아온 삶을 되돌아 봤다. 학창시절 소풍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던 기억에서부터, 카메라를 메고 취재현장을 누볐던 지난 9년간의 시민기자 활동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범한 직장인이 그 누구도 걸어보지 않는 길을 간다는 건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일이다. 

납북어부였던 아버지 삶이 그랬고, 시민기자인 저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철들면서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느그 아부가 이까잡이(오징어 낚시) 갔다가 납북어부가 되어 이날 평생 고생했다' 라는 말씀이 늘 맘에 걸렸다.

섬에서 군복무 시절 파출소 업무를 하면서 우연히 아버지가 지금껏 납북어부로 감시당하고 살았던 비밀문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탁성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1971년 8월 30일 오전 오징어잡이에 나선 아버지가 탔던 배가 납북되어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다. 

<납북어부의 아들>은 내가 태어난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여수에서 동해로 오징어잡이에 나섰다가 입항중 안개로 방향을 잘못 잡아 북한경비정에 끌려간 아버지 이야기의 일부다. 또 그동안 시민기자 활동을 책으로 펴냈다. 책을 쓰면서 모진 고문과 평생을 감시를 당했던 아버지의 인생을 생각해봤다. 

분단의 현실 속에 납북어부로 살아왔던 말 못할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막상 책을 펴내놓고 보니 제목과 다르게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너무 적더라. 내 첫 작품의 한계다."

Q.아버지 얘기를 좀 더 해보자. ‘납북어부’는 우리사회에서 어떤 이미지가 있다. ‘이북’에 대한 거부감, 반감... 반공교육의 잔재라고 보는데, 그런 아버지의 위상이 어려서는 어땠나?

"우리 사회에서‘납북어부’라는 어감은 좋지 않다. 납북어부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감이 드는게 사실이다. 요즘시대에도 손끝만큼이나 북한과 연결되면 낙인찍히는 세상 아닌가. 반공으로 정권을 유지했던 당시에는 어땠겠나? 근현대사만 봐도 그렇다. 간첩은 정권 안보차원에서 필요하면 만들어지지 않았나. 

일례로 군산 납북어부 서창덕 간첩조작 사건은 1967년 황해도 앞바다에서 조업 중 북한에 피랍되어 귀환했으나 간첩이란 누명을 썼다. 이후 무죄선고를 받았으나 그가 간첩혐의를 벗고 완전한 자유인이 되기까지 24년이 걸렸다. 

한평생 고통 받은 그분의 일생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나. 저희 아버지 역시 납북어부라는 이유로 일생을 감시 속에 살았다. 어머니는 형사들이 다녀간 사실을 동네 이웃 분들을 통해 들었다.  

어린 시절 기억나는 게 아버지는 매년 섬에서 여수로 나가 어딘가를 다녀올 때면 꼭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보기관이 납북어부를 소집해 여수산단, 포항제철, 반도체 등 전국 곳곳을 산업시찰 명목으로 납북어부들을 주기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납북 당했던 자신의 얘기는 한마디도 들려주지 않았다. 

납북어부로 북에서 송환된 이후 감옥을 다녀오며 모진 고문과 감시 탓에 자식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일절 말씀이 없으셨다. 자신의 납북이야기를 무덤까지 당신 혼자 삭히고 사셨던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버지가 '납북어부'다. 그는 아버지 얘기를 꺼내며 숙연해졌다.   ⓒ 김숙현

Q.책속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것 같다. 이제 본인이 아버지다, 가족관계를 보니 세살 터울의 세 자녀를 두었다. 아들과 자전거여행도 책에 실었다. 이제 본인은 어떤 아버지이고 싶은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말씀은 곧 법이었다. 자상했지만 때론 아버지의 성격은 호랑이 같았다. 한때 사춘기가 찾아온 중학생 시절 아버지에 대한 반항도 컷다. 술 때문이었다. 술을 안 드시면 그렇게 자상하던 아버지는 술로 인해 가정불화가 잦았다. 그날은 온 가족이 비상이었다. 어머니와 싸우는 모습에 욱하여 나도 다컸으니 제발 그만좀 싸우라고 대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의 교육방식은 좀 특별했다. 가정이 어려워 자식들에게 공부보다는 세상살이를 가르치셨다. 공부하라는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고 살았다. 자신이 필요하면 언젠가 스스로 알아서 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저 역시 세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3년터울로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인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였을까 생각하니 아쉬움이 크다. 더 자상하지 못했던 점, 아빠의 고집으로 가끔 매를 들었던 점, 충분한 용돈을 주지 못한 점, 가족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한 점 등 부족함 투성이 아빠였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아빠의 살아온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눈으로 보고 자라는 것이 산교육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교대근무를 하지만 항상 목표를 향해 뭔가 꿈틀거리는 아빠의 모습을 자녀들이 기억하리라 본다. 자신의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착한 아이들이 되길 바랄뿐이다." 

Q.책 소개좀 해 달라

"책속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 이었다. 별다른 스펙도 없는 내가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컨셉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사실에 입각한 ‘날것’을 있는 그대로의 담기로 했다.

좋은 책은 한 사람이 경험한 세상이 책속에 담긴다는 말이 있다. 책을 쓰기에 앞서 내가 아는 지인 네 분께 전화통화로 추천서를 부탁했더니 즉석에서 오케이 확답을 받았다. 삶을 헛살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중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님의 책 소개는 감동이었다. 부족한 제게 이런 과분한 평을 해주신 점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책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1부 납북어부의 아들에는 납북어부로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 가족사 이야기가 실렸다. 2부에는 여수산단의 평범한 직장인이 노동운동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뜨고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취재한 기록이 담겼다. 마지막 3부에는‘뉴스의 힘!’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는 시민기자 저널리스트의 활약이 소개됐다." 

Q.산단 노동자다. 책을 읽어보면 노동운동을 하면서 노보 편집했던 게 시민기자로 뛰어든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맞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한건 바로 노동운동이었다. 여수산단 노동운동의 큰 획을 그은 천중근 노조위원장님을 통해 노동운동을 배웠다. 노동운동의 불모지였던 여수산단이 최고의 근로조건과 복지를 갖춘 건 다름 아닌 노동운동 탓이 크다. 

노동현장을 바꾸려는 선배노동자들의 희생덕분에 권위적이었던 현장의 민주화도 이루었다. 이때 일일소식지와 한 달에 몇 번씩 발간하는 노보에 많은 글을 썼는데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다. 노조활동 후에도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내 자신의 근본위치가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노보를 통해서 글을 쓰고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된 건 사실이다"

Q.노보편집과 시민기자 활동이 책을 저술하게 한 자양분이자 원동력이라고 보인다. 본인도 그렇다고 보는가?  왜 그렇다고 보는가?

"겨울을 지나야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고 알에서 깨어나야 더 넓은 세상이 보이는 법이다. 고통 없는 인생이 남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다고 본다. 그동안 내 삶이 마른자리만 찾아다니지 않았다. 노조 전임자를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다듬었다. 이후 임기를 마치고 그동안 쓴 노보 소식지를 보면서 글을 배워야겠다고 맘먹었다.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기사 쓰는 법을 배워 더 큰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 지난 9년간의 시민기자 활동을 통해 수상의 영광도 안은 반면 고발도 당했다. 그동안 취재한 일부 얘기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이번 책 '납북어부의 아들'은 여수에 근거를 둔 '넷통 미디어'에서 첫 발간한 책이다. 여수시내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 오진웅

Q. 시민기자는 어떻게 노크하게 되었나?

수세식 변소가 없던 섬에서 재래식 변소에서 용변을 보면서 오래된 신문을 읽는 재미는 화장실 보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언젠가 기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니 그건 허튼 꿈에 불과했다. 한국사회에서 기자의 벽이 얼마나 높나. 이후 즐겨보던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모토가 눈에 띄었다. 

오마이뉴스의 기자학교인 강화도 오마이스쿨 글쓰기 학교를 수료했다. 이후 꾸준한 시민기자 활동을 통해 글을 쓰면서 언론의 힘을 알게 되었다. 이제 기자의 꿈을 이뤘다. 작으나마 글을 통해 지역을 바꾸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건 글이 갖는 힘이다." 

 

Q. 시민기자 활동이 전방위적이었다. 책을 보더라도 활약이 돋보인다. 우리 언론에 대해 느낀 바가 많았다고 본다. 어떤가?

"세상이 크게 바뀌고 있다. 언론지형이 종이신문에서 인터넷신문으로 기울고 있다. 이제는 SNS시대다. 페이스북, 유튜브, 텔레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스마트폰에 올리면 그것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이명박근혜 시절을 통해 절실히 느꼈지만 방송과 언론이 정권에 유착되어 얼마나 많은 가짜뉴스를 생산했나? 

이런 사회를 두고 지식인들은 가짜언론이 파시즘 사회의 파수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순실 사태를 파헤쳤던 JTBC 손석희 사장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브론즈 마우스를 받았던 그가 종편으로 자리를 옮길 때 많은 이들이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공정보도는 결정권을 가진 자리의 문제라는 것과 사람이 문제라는 걸 보여줬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에서 부역자 노릇을 한 MBC 김장겸 사장이 보기 좋게 퇴진 당했다. 이제 최승호 사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반면 거기에 부역했던 일부 언론의 보도행태는 바뀌었나? 이들 역시 단죄해야 한다. 시민들이 나서 언론정화 운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저 역시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금은 지역 언론 여수넷통뉴스에서 이사기자로 활동 중이다. 성역을 깨트려 지역 언론을 바로 세우려는 엄길수 이사장에 대한 시민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저 역시 지역을 바꾸는 일에 작으나마 일조하고 싶다."

Q.이제 언론이 특히 지역언론이 바로 서야 하는데, 긍정적으로 보는가?

"여수라는 작은 지역사회에서 언론의 보도행태도 문제가 많다. 여수에 언론인으로 등록된 기자가 2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여전히 성역이 많은 것 같다. 현 여수시장의 조카와 관계된 돌산 상포지구 보도를 관심 있게 다룬 언론은 한국일보와 노컷뉴스 등 몇 안 되더라. 특히 상포지구를 심도 있게 보도한 여수넷통뉴스의 탐사보도는 인상 깊었다. 지역 언론이 지역을 감시하는데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Q.시민 기자로서 수상을 많이 했다. 소개해 달라.

"9년간의 오마이뉴스 활동을 통해 얻은 다양한 수상의 영광은 잊을 수 없다. 중앙지인 오마이뉴스에서 3월 뉴스게릴라상을 시작으로 공모기사인 아버지 우수상, 오마이뉴스 창간일인 2월 22일상, 세월호와 6.4지방선거 보도부문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을 수상했다. 또 지역 언론인 여수넷통뉴스에서 시민기자상, 특종상도 잊을 수 없다. 지금껏 여수넷통뉴스 감사와 학생글쓰기대회 심사위원, 시민기자학교 강사를 맡았고 이사기자로 활동 중이다." 

Q.기자로 글쓰기와 이번에 책을 펴내면서 출간에 따르는 글쓰기는 어떤 점이 차이가 있는가?

"기자나 작가 할 것 없이 글을 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임진왜란의 패장인 원균과 승자인 이순신의 차이는 '기록' 의 차이였다. 이순신은 난중일기를 남겨서 난세의 영웅이 되었다. 이렇듯 기사나 책에 수록된 활자는 오랫동안 남는다. 

그동안 시민기자 활동은 책을 출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책을 펴내면서 느낀 게 많다. 지금껏 별 생각 없이 책도 사보고 직접 작가에게 선물도 여러 차례 받아 봤지만 책 한 권  쓴다는게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깨달았다. 직접 책을 쓴 작가들이 그렇게 존경스러워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이번 출간은 여수넷통뉴스가 출판업을 시작하는 첫 작품이다. 출판 준비기간이 너무 촉박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여수넷통뉴스 창간6주년 기념식과 북콘서트를 함께하려고 추석 전에 논의가 됐다. 원고부터 출판까지 딱 한 달 반이 걸린 셈이다. 원고마감은 정말 피말리는 시간이었다. 기자활동만 믿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착오였다. 

운영진 회의에서 일정을 못 맞출 것 같다며 나중에 북콘서트를 따로 가지자고 제안했지만 내가 밀어붙였다.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출판사에서는 납기일이 지나도 최종교정이 계속되자 연말이 겹쳐 도저히 납기일을 맞출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로 인해 엄길수 이사장과 오병종 국장, 전시은 기자 그리고 이정남 선생님은 주말을 반납한 채 밤을 새우며 문장과 오탈자를 교정해 파이널 원고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통해 그동안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저자 심명남은 "나를 바꾼 건 '오마이뉴스'였다"며, 글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 지역을 바꿀 수 있다는 데 기자의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 김숙현 

Q. 1부에 보면 가족들 얘기가 많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들, 사촌형님 이야기까지. 심 작가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결혼 22년째다. 결혼초기 처남댁은 십자수로 새긴 ‘가족’이라는 제목의 액자를 선물했다. 지금도 벽에 걸린 액자에 ‘한밭에서 나옵니다. 거기서 인생의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립니다(중략) 세월이 제 아무리 모든 것을 갈아엎어도 없어지지 않고 없앨 수도 없는 가족은 우리의 사랑이요 그리움입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저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가족사의 아픔이 존재한다. 

우리 가족사의 아픔을 글로 써봤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억울하게 구천을 맴도는 큰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되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저에게 늘 가족은 사랑이요 그리움이다."

 

Q.오연호 대표의 추천사 대목 중에 ‘꿈틀거리는 사람’이라는 평이 눈에 들어온다. 책 내용을 보더라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충분히 느꼈다. 또 다른 꿈틀거림을 기대한다.

"지금껏 시민기자로 꾸준히 글을 써온 게 저의 큰 자산이라 생각된다. 지난 8월 오연호 대표님과 동고지명품마을에서 합동워크샵을 가졌다. 오 대표는 6년 전 여수넷통 창립 당시 언론의 방향과 노하우를 직접 지도해 인연이 깊다. 700회 강연을 가진 오 대표는 세계 행복지수 1위 덴마크 교육의 철학을 담은 꿈틀리 인생학교를 세워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상중이다. 안도와 금오열도도 그 하나라고 말했다.

여수넷통뉴스는 지역의 성역을 깨고 새로운 판을 벌여보자는 취지의 언론정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젠가 이 지역에서도 '꿈틀리 인생학교' 가 세워졌으면 좋겠다. 저 역시 시민기자활동을 통해 체득한 글쓰기를 통해 작가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올 2월 여수넷통뉴스 오병종 편집국장과 인터뷰에서 책을 펴내겠다고 했는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앞으로 두번째 출간도 이어갈 예정이다. 이 시간을 통해 출간에 도움 준 많은 분들과 미디어넷통에 무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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