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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게 다가온 옛 여수 기찻길의 아쉬움

  • 입력 2018.02.19 11:54
  • 수정 2018.02.19 15:05
  • 기자명 주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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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평역에서 만성리역 방면의 오림터널 입구 모습

전라선 옛 기찻길을 걸었다. 일명 폐선 부지이다. 오늘 걸었던 기찻길은 미평공원(옛 미평역)에서 만흥공원(옛 만성리역)까지 대략 왕복 9km 거리이다. 연휴 마지막 날이기 때문인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도 있고, 걸어서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전라선은 1930년 12월 25일 광주와 여수를 잇는 광려선(160km)의 개통에서 그 역사를 찾아 볼 수 있다. 때문에 전라선에는 일제강점기 경제적 수탈과 강제동원 그리고 여수신항 건설과 여수 신도시 건설 등의 역사가 담겨있다.

폐선 부지 휴식 공간

이후 1936년 11월 18일 익산에서 여수를 잇는 전라선으로 변경된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KTX 전라선이 2011년에 완공되면서, 여수역, 미평역, 여천역, 소라역, 율촌역으로 이어지는 전라선 기찻길은 81년 만에 폐선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현재 시민 휴식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여수역에서 미평역까지 이어진 전라선 기찻길에는 3개의 터널이 있다. 덕충굴, 마래터널, 오림터널이다. 안타깝게도 덕충굴은 국도 17호선의 자동차 전용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훼손되어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마래터널은 현재 마래2터널(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로 불리며 만성리와 덕충동을 잇는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오림터널은 이번 전라선 옛 기찻길 폐선부지에 포함되어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돌아왔다.

오림터널 내부 모습, 일부 구간에서 천장과 벽면을 시멘트로 보강공사를 했다.

1931년 3월 26일 <동아일보>에 소개된 덕충굴, 마래터널, 오림터널에 대한 기사는 흥미롭다.

“동으로 여수만(麗水灣)바다, 서로는 벌써 참새가 보이지 않을 만큼 신록이 우거진 포풀라나무의 장사열, 또 그러고 칡대 왕대의 죽림(竹林)으로 숲을 이룬 산비탈의 농가, 싹을 7, 8분이나 내어 논 보리밭. 이 모든 한아한 경치가 사면으로 돌아다보아도 걸릴 것 없는 경쾌한 기동차(열차)의 유리 창밖으로 전망된다. 83미터의 덕충(德忠)굴을 지나니 607미터의 마래(馬來)터널. 이 굴 공사에 있어서 문제가 여간 많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이제보니 우리가 흔히 보는 굴속처럼 돌이나 시멘트로 천장을 둘른 것이 아니라 산속 바위를 그냥 뚫기만 하야 울퉁불퉁 나온 채로 천연스러운 굴이다. 오림(五林)터널 지나니 바로 미평역(美坪驛).”

이 기사를 남겨 준 기자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기록의 소중함을 다시금 새긴다. 여수역을 출발하며 본 광경과 덕충굴, 마래터널, 오림터널을 지나 미평역에 도착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이다.

기사에서 덕충굴은 길이가 짧아 ‘굴’이라고 표현하였다. 덕충굴은 여수 사람들에게 ‘작은 굴’로 오랫동안 기억되었던 터널이다. 여수의 주요한 역사 유물로 그 가치가 적지 않을 것인데, 훼손되어 없어졌다는 점이 안타깝다. 마래터널의 공사과정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과 천연 암반 터널이라는 소개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후 오림터널을 지나 미평역에 도착했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전라선 옛 기찻길 폐선 부지는 여수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길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입하여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이나 안내판이 전혀 없다. 

옛 기찻길 건널목을 알려주는 표시물

그나마 남아있는 옛 기찻길의 흔적은 보존 작업도 없이 그냥 방치되고 있었다. 편의시설도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다. 

오림터널은 어떻게 건설되었을까? 오림터널의 길이는 389m이다. 앞서 마래터널(현 마래1터널)은 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터널이지만, 오림터널은 콘크리트의 천장과 벽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터널 벽면과 천장이 거푸집을 이용한 콘크리트 구간과 벽돌 쌓은 구간으로 번갈아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벽면이 벽돌과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이 공법이 오림터널이 개통될 당시인 1930년부터 사용된 것인지, 아니면 이후 터널을 보강 공사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앞서 1931년 3월 26일 <동아일보> 기사로 보아서는 처음부터 이러한 공법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콘크리트를 벽면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해방 이후 보강 공사 과정에서 천장과 벽면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현재 여수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넘너리 철도굴’, ‘해군지하사령부 벙커’, ‘여수항공기지 지하벙커’ 등에 사용한 콘크리트의 자갈이 둥그런 강자갈이지만, 오림터널의 자갈은 돌을 파쇄하여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콘크리트의 자갈이 파쇄된 돌이다.

전라선 옛 기찻길의 공원 조성에는 좀 더 세밀한 구성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전라선 폐선 부지는 여수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하며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장소임을 유념했으면 한다. 별도의 기념관이나 교육 공간을 짓기보다는 이를 잘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중요한 역사 유적일수록 휴식 공간과 조화를 이룬 활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실히 다가왔다.

만흥공원 안내판. 뭔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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