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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갓모르 파티’를 아시나요?

나는 앎에게 삶을 묻고 매일 '아모르 파티'를 연다.

  • 입력 2018.04.20 13:48
  • 수정 2018.04.24 18:04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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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윤

요즘 내 귀를 즐겁게 해주는 노래가 있다. 가수 김연자 씨의 ‘아모르 파티’이다. 일명 ‘갓연자’와‘갓모르 파티’의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통상, 단어 앞의 ‘갓(God)-’은 그 단어에 연결되는 대상이 뛰어나고 대단함을 강조할 때 쓴다.

이 노래가 인기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모르 파티’는 리듬이 좋고 듣기가 쉬우며 한국인의 정서와도 맞다.  어렵지 않은 철학적 내용과 일상의 소중함을 담고 있는 가사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학업에 지쳐 있는 고3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잠시 들려주었다. 


노래를 감상한 K양은“아모르 파티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따라 부르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말했고, H양은“아모르 파티의 노래를 듣지 못하고 죽은 프리드리히 니체보다 내가 더 행복하다. 나는 오늘부터 니체보다 더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야겠다”고 의미심장한 멘트를 던졌다.

다행이다. 제자들이 이렇게 삶을 음미하고 재해석하니 말이다. 제자들에게 고대 그리스인이 마음에 새겼던 금언을 하나 더 들려준다.

“현재를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a)”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결국 내일을 사는 나의 모습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이 '여기'와 '지금'보다는 미래와 내세 지향적 삶을 살고 있다.  만약 지금 행복해하고 현세를 즐기면 큰 죄를 받을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야단이다. 

특히 가정은 물론이고 학교 또한 이런 삶을 조장(助長)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지금 모든 것을 참아야한다고 말한다. 한편으론 맞는 말이지만 꼭 옳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 김자윤


그렇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결혼 등등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면서 ‘지금 그리고 여기’의 삶을 인고(忍苦)의 시간으로 꽁꽁 동여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삶의 자세일까?

‘아모르 파티’의 노래 가사를 잠시 음미해보자.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삶의 긍정을 노래한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다. 결국‘아모르 파티’는 희로애락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지금을 찬양하자는 우리의 소박한 가치관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You only live once – 인생은 한 번 뿐이다’라는 욜로(YOLO)의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봄에  꽃이 한번 피면 지듯이 사람도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나날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퇴폐적이고 향락적이 삶을 살자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찾아 삶을 완성하자는 것이다. 

잠시 ‘아모르 파티’가 쓰였던 문장을 찾아보자.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기원전 800년~기원전 750년경)가 인간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사색하면서 시민들에게‘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삶을 재해석한다. 

그는 ‘나는 유한한 존재이다. 영웅들도 모두 죽음과 마지막 운명에 저항하지 못했다. 나는 고통을 당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나는 명예를 남길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을 사랑할 것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라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90년경/485년~기원전 415년)도 인생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그는 레온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망설임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이다.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떤 이는 승리를 얻기 위해 경기를 하러오고, 어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하러 온다.  하지만 가장 뛰어난 이는 축제를 보기 위해 오는 관람객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노예근성을 타고난  화려한 명성과 물질적 풍요를 좇아가지만, 진정 앎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한다.” 

 ⓒ 김자윤

현대 철학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니체(1844년~1900년)가 말한 ‘운명애’도 한 번 들어보자. 

그는 <즐거운 학문>에서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이야기한다. ‘운명애, 즉 운명을 사랑하라’는 이 말은 생을 긍정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재분석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해서  당시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신에게 종속된 나약한 인간을 구원한다.

지금까지 말한 호메로스와 프로타고라스, 니체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결국 삶과 '운명애'는 하나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뿐인 삶의 주인으로 살면서 축제의 마당을 만들어 더덩실 신명나게 춤을 추며 살아보자는 의미로 재창조할 수 있다.

제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내면의 소리를 잘 들어보라고. 그러면 참자아가 “너는 매순간 앎에게 삶을 묻고 카르페 디엠과 아모르 파티를 즐겨라”고 담대하게 말할 것이다.

더불어 기성세대에게 부탁하고 싶다. 기성세대도 젊은 세대에게 폐쇄적인 운명보다는 개방적인 운명을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임들의 삶처럼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전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현실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때그때 현실을 충실히 즐겨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주었으면 좋겠다.

사족 : 그리고 만약 지금이 아니면, 언제일까?(And if not now, w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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