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치과의사 시인들이 연이어 시집을 출간해 화제다.
전남 여수에서 치과의사로 28년을 보낸 유상훈 시인이 지난 2월에 자신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작품에 녹여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어머니와 스타벅스』 첫 시집을 발간한 데 이어, 역시 비슷한 연배의 치과의사 시인 진철희가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린 듯한 중년 사내'의 새로운 삶의 모습을 선보인 첫 시집 『발걸음』을 최근 펴냈다.
곧 시집을 펴낼 김정웅까지 이들 셋은 ‘의인시사(擬人詩社)’ 동인으로 활동하는 치과의사 시인들이다.
이들은 셋 만의 단체카톡방을 통해 진료중이거나 여행하거나 산책할 때도 혹은 늦은 밤에 서재에 앉아 시상이 떠오르면 수시로 톡을 쏜다. 흔히 명언명구, 혹은 믿어야할지 안 믿어야할지 모를 인터넷 상의 무슨무슨 건강상식들을 카피해 도배되는 단톡방이 아니다. 이들에겐 카톡방은 시를 발표하는 매체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주말(26일) 오후 시내 한 카페에서 시인 진철희를 만났다. 지난 주에 나온 따끈따끈한 시집 『발걸음』에 저자 사인을 해주면서 "같은 치과의사로 활동하는 동료 시인들인 ‘의인시사(擬人詩社)’ 멤버들 덕에 이번 시집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치과 의사는 치료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직업이다. 우리들은 사물을 의인화해서 표현하고 대화를 나눈다. 서로 단톡방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시상들을 적어 올려 그때그때 교류한다.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힘이 되었다.
우리의 시 모임을 좀 격조있게 이름 붙여 보자고 해서 ‘의인시사(擬人詩社)’로 지었다. 일종의 시 동인들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나를 제외하고 두 사람(유상훈, 김정웅)은 대단한 독서량과 인문학적인 다방면의 조예가 깊어서 나로서는 그들에게 많이 배우는 편이다.
나 혼자였으면 시집 나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의인시사(擬人詩社)’는 같은 대학 출신이면서 동시대를 여수서 살면서 치과의사 개업의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집 책머리에 밝혔듯이 ‘시가 있어 살 만한 세상’이고, ‘시가 있어 숨이 쉬어진다’는 진철희 시인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를 쓴다며 공책 빈칸을 채웠다. ‘무작정 습작으로 시를 썼고’, ‘백일장 장원깨나 휩쓸고 다닌 경력’과 대학에서 학보사 편집일까지 한 이력들이 첫 시집 『발걸음』의 원동력이었으리라.
1993년부터 여수 서시장 한 켠의 치과진료실이 그의 첫 직장이고 지금까지의 일터다. 첫 개업 후 한 발짝도 옮기지 않은 거기엔 1.5평의 원장실이 있다.
“치과의사로서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고, 정해진 진료를 하며 지내다 보면 좁은 원장실이 어떨땐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고 갇혀있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곁에 늘 시가 있었다. 좋아하는 윤동주와 이상을 비롯한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내 시를 쓰고 하는 일들은 나에게 있어서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창이다. 나의 독백을 하는 무대다. 시는 그래서 나에게 큰 위로가 되고, 고단함을 견뎌내는 피로회복제이기도 하다. 이제 시는 나에게 중년 너머 노년으로 가는 내 인생의 절친한 친구다”
출판사 서평엔 “문학에 꿈이 있었으나 현실 속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한 중년 사내의 ‘생활 서정’을 담아내고 있다”고 소개한다. 아울러 “고단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평범한 사내가 자연에게 툭툭 말을 걸 듯이 진행하고 있어 많은 공감이 될 것이다”며 이 시집을 권하고 있다.
진철희 역시 ‘송년회’ 일부를 인용하며 독자를 초대하고자 한다.
(중략)
먼 곳을 내다보기
아직 늦지 않은 나이이니
먼 곳을 살피러
높은 산에 올라보네.
진 시인은 중국 시인 두보의 심경을 옮겨와 50대 중반의 나이에 첫 시집을 낸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이제 55세 나이가 자신의 인생 또 다른 시작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