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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치고개 집단살해사건②

아버지가 누워계신 곳

  • 입력 2018.06.05 14:39
  • 수정 2018.06.21 18:13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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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소개글]

이미 ‘구봉산 이야기’를 연재했던 필자 김배선(66)씨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의 저자이며 다음카페 '조계산 연구소' 운영자이다. 해양경찰 공무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향토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조계산 주변에서 6.25전쟁 직후 일어난 많은 이야가를 들었다. 산 속으로 피신한 민간인들과 이를 토벌하려는 군인들 간에 있었던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채록하여 메모로 남겼다. ‘빨갱이’라는 이름을 듣지 않으려는 증언자들의 기피도 있었지만 친근함과 꾸준함은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소설형태를 빌렸지만 그가 채록한 증언은 생생하고 역사기록물이기도 하다. 이제 김배선씨로부터 ‘조계산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현대사’를 한편 한편 들어보자. 우선 '접치고개 집단 살인사건'을 소개한다.

"자~ 가 보려거든 얼른 갔다 오시지요."

하던 일이 바빠서 인지 아주머니의 급한 마음을 헤아려서인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먼저일어서서 주섬주섬 운동화로 갈아 신더니 제초제농약의 이름이 크게 새겨진 모자를 눌러쓰고 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손님들이 온지가 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보게~에 영감님 좀 모시고 같이 가세!"

담장 밖 골목에서 아들을 데리고 놀고 있는 사위를 부르는 소리다.

마을입구에 세워둔 승용차에 네 사람이 올랐다.

"아까 내려왔던 길로 올라갑시다."

운전하는 사위가 초행길이라 이 영감님이 옆자리에 앉아서 길을 안내했다.

고갯마루를 돌아 건너편 국도의 후미진 산비탈을 돌자 이 영감님이, 저 앞에 쏙 들어간 디다 대소, 하고 오십여 미터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길 옆 잔디 밭 갓길로 바퀴를 올려 차를 세웠다.

골짜기를 가로질러 곧바로 걸어 왔으면 300m 남짓한 거리가 차로 돌아오니 그 세 배가 넘는 거리였다.

국도 접치재길 ⓒ김배선

먼저 내린 이종진 영감님이 산비탈 끝을 가리키며 여기가 아부지 묻힌 자리요, 하고 알려줬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저히 묘라고 느낄 수 없는 그저 약간 볼록한 산비탈이다.

당시에는 이곳에 도로가 없었기에 높은 산중턱의 후미진 골짜기였지만 이곳으로 국도가 나면서 도로변이 되어 길보다 낮은 곳으로 변하였으며 여기가, 라고 말한 것은 길가에서 5m도 안 되는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그곳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도 도저히 믿기지 않고 어이없다는 실망의 표정이 교차하다가 일순간 지면을 응시하던 눈빛이 냉정함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그동안 아버지를 향한 막연한 연민에 산천에 널려있는 묘지에서 그렸던 환상을 눈앞의 현실로 받은 충격과 자신에 대한 책망과 후회를 조용히 거두어 들이려는 한 여인의 달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형태가 있었는데…"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같은 모양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미안한 마음을 변명하려다 보니 나온 말이다.

언제 가져 왔는지 낫으로 듬성듬성 웃자란 풀들을 베어내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아주머니는 길가에 서서 바라만 보고 있으니 사위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몰라 엉거주춤 이지만 철모른 손자는 어른들의 심각한 분위기는 아랑곳않고 혼자서 놀고 있었다.

5분도 안 돼 대충 정리를 끝낸 이 영감님이 하옥숙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여기가 틀림없기는 허요. 동네사람들 데려다가 파보면 알 것이니 혹시 가져온 것 있으면 술이나 한잔 붓고 내려갔다가 날 잡아서 다시 옵시다, 했으나 그래도 아주머니는 믿기지가 않는지 만감이 교체한 얼굴로 도로가에서 내려서지 않고 우두커니 굽어보고 서 있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사위를 향해 눈길을 보내니, 술이랑은 가져 왔십니더, 하면서 장모님의 눈치를 살피는 사위에게로 다가가, 어디 봅시다, 하니 트렁크를 열었다.

사실은 출발 전에 영감님도 '술을 챙겨야 할 텐데' 하고 생각은 했었지만 마을에 가게가 없고 집집마다 물어보고 다니기도 뭐하여 그냥 오기는 했어도 막상 와놓고 나서는 '미리 물어보기라도 할 껄' 하고 후회를 했고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트렁크 속 두개의 박스에는 제법 많은 생선과 과일 등 제수가 골고루 담겨 있고 술은 따로 한 박스가 실려 있었다.

접치재 학살 옛 국도 ⓒ김배선

그것은 아버님의 묘뿐만 아니라 마을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려고 준비를 한 것으로 짐작이 갔다. 그러나 지금은 혹시나 하던 아버지의 묘에 대한 기대가 어그러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사위를 시켜 제수 박스와 술을 꺼내게 하여 말려 있는 작은 돗자리를 풀어 깔고 간단하게 차리면서 하옥숙이의 행동을 살피니 아예 마을을 내려다보고 쭈그리고 돌아앉아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생각지 않았던 하옥숙의 갑작스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아 속으로 '이곳이 쌍수가 묻힌 곳이 틀림이 없는데…' 할 뿐이었다.

대충 제수를 차리고 나서, 한잔 안 붓을라요? 하고 물었으나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러니 사위도 엉거주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더 이상 아버지 묘에 대한 딸의 심경의 변화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다는 판단에 확신이나 심어주고 내려가자는 생각으로 잔에 술을 따라 놓고 무릎을 꿇고 앉아,

"쌍수 하샌 55년 만에 딸이 사우랑 손지랑 데꼬 찾아 왔는디 알아 보시겄소?"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목청을 돋웠는지도 모른다.

잔을 거두어 땅에다 조금씩 세 차례 나눠 붓고 나서 다시 한 번 권하려고 고개를 돌려 보니 길 건너 낭떠러지 쪽에 사위의 부축을 받으며 뒤돌아 서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머지 병에든 소주를 주변에 골고루 뿌린 뒤 사과를 쪼개 던지고 나서 다가가 어쩌든지 이렇게 왔으니 잘 보아두고 가시오. 하면서 눈을 보니 아까와는 달리 한결 깊어진 그윽한 눈동자에 커튼이 반쯤 내려져 보였다.

이제 내려 가실라요? 하면서 뒤처리를 하려고 길을 건너오자 갑자기 마음이 변했는지 따라오더니 치마를 걷어 올리며 길가 수로에 주저앉듯 길섶을 내려서려 하자 사위가 어색하게 팔을 붙잡고 거들어 함께 다가와 술잔을 부었던 곳에 멈추더니 무엇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묘자리를 유심히 살피며 한 바퀴 돌고 나서 사위를 향해, 인자 고마가자, 하고 길로 나왔다.

차에 오르니 시간은 어느덧 세시를 넘고 있었다.(계속)

접치마을 골목 입구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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