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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돌바위 경찰차 습격사건②

횟돌바위에 쏟아지는 총탄

  • 입력 2018.06.25 10:31
  • 수정 2018.06.26 15:30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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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소개글]

이미 ‘구봉산 이야기’를 연재했던 필자 김배선(66)씨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의 저자이며 다음카페 '조계산 연구소' 운영자이다. 해양경찰 공무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향토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조계산 주변에서 6.25전쟁 직후 일어난 많은 이야가를 들었다. 산 속으로 피신한 민간인들과 이를 토벌하려는 군인들 간에 있었던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채록하여 메모로 남겼다. ‘빨갱이’라는 이름을 듣지 않으려는 증언자들의 기피도 있었지만 친근함과 꾸준함은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소설형태를 빌렸지만 그가 채록한 증언은 생생하고 역사기록물이기도 하다.   

입동을 보름 남짓 앞둔 늦가을의 산골은 어둠이 빨리 내린다.

해가 후곡 말거리재에 서 발이나 걸쳐 있을 무렵, 재진소년은 짜구남정 건너편 대내골 입구 보리밭에 마지막 거름을 부리고 나서 빈 바지게를 지고 멀찌감치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횟돌바위를 향해 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머리 위 대내골에서 골짜기가 터져 나갈듯한 울림과 콩을 볶아대는 듯 총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판단할 틈도 없이 걸음이 뚝 멈춰 버렸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횟돌바위 가까이 앞서 가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급하게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구릉목 쪽을 향해 뛰어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달아나고 있던 경찰관 중의 한 사람이 재진소년을 향해 엎드리라는 손짓과 함께 지르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김 소년은 총알이 자기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뛰었는지 굴렀는지도 모르게 산비탈이 보이지 않는 논 언덕 밑으로 납작 엎드렸다.

가슴이 쾅쾅거리는 자신을 돌아보니 언제 벗었는지도 모르게 바지게는 등을 떠나 있었고 헐떡거리는 숨이 멈추자 방금 앞에 있던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떻게 되었을까? 답답하고 겁이 날 뿐이었다. 고개를 살며시 돌려 살펴봐도 옆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걸어 나갈 수도 없어 겁에 질린 채 총소리가 멈출 때까지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없이 길었던 공포의 시간이었다. 정작 총소리가 멈추기는 했으나 그래도 무서워서 선뜻 일어나지 못하고 망설이기를 한참.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쭈뼛거리는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며 할아버지가 앞서 가던 곳을 바라보았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하는데 횟돌바위 위 오르막 길가에는 기우뚱하게 처박혀 있는 경찰차만 있을 뿐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고 싶었으나 그 위에서 쏘아대던 총소리를 생각하니 마음 뿐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바지게를 진 채 수로에 엎드려있던 할아버지가 일어섰다. 자기를 찾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멀리서 보아도 핼쑥해 보였다.

할아버지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소년은 토벌대들이 도망가던 구릉목재의 작은어머니집이 생각났다.

총을 쏘아대던 대내골을 한 차례 쳐다본 뒤 바지게는 챙길 생각도 않고 작은집을 향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뛰어가면서 힐끗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동네로 건너가는 노디(징검다리)를 향해 허겁지겁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낙수를 출발하여 벌교경찰서로 돌아가는 대원들은 반란군들이 대내골에다 기관총을 설치하고 횟돌바위 옆을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차가 움직이자마자 연일 지친 몸과 오늘의 작전을 마치고 돌아간다는 안도감에 양쪽 긴 의자와 바닥에 서로를 기대고 앉아 비포장의 덜컹거림에 스르르 눈을 감고 몸이 쏠릴 때마다 잡히는 손에 힘을 주며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김재진 증언자

낙수를 출발한지 25분 가량 지났을 때 선도차와 후미차는 곡천을 지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먼지를 피하기 위해 약 150m 가량의 거리를 두고 죽산의 무등쟁이 들을 달리고 있었다. 잠시 후 조포막으로 돌아가는 구릉목을 넘으면 건너편에 이읍 큰 마을이 보이고 대내골 입구 가까이 있는 횟돌바위가 가까워지면 눈을 부릅뜨고 총을 겨누고 있는 그들의 시야에 들게 되지만 대원들은 여전히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자장가로 삼고 있었다.

“동무들 이제 개간나들이 돌아올 시간이 됐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있다가 내 신호가 떨어지면 일제히 퍼부어 박살을 내줍시다.”

이렇게 붉은 테 모자가 오래 기다리느라 지루해진 잠복조들을 일깨우며 기관총 옆으로 왔을 때, 조금 높은 등으로 올라가 망을 보고 있던 보초가 손을 들어 멀리서 오고 있다는 신호로 방향을 가리키며 뛰어 내려왔다. 그러자 붉은 테 모자가 낮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로 준비를 명령하니, 모두가 쭈그리거나 엎드려 횟돌바위 방향을 겨누어 발사 자세로 들어갔다.

이내 선도차가 커브를 돌아 시야에 들어오더니 횟돌바위에 가까워지자 후미차도 커브를 향해 뒤따르고 있었다.

총을 겨누고 있는 습격 조는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넣고 숨을 죽인 채 조마조마 빨리 사격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빨간 테 모자는 속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하면서 순간의 긴장을 즐기는 듯하였다.

드디어 선도차가 횟돌바위 가까이 도착하였을 때, 빨간 테 모자가 팔을 들어 올렸다가 힘차게 내리며 사격명령을 내리는 순간, 쏘제경기에서 포연이 피어오르며 진동하는 총성으로 대내골이 뒤덮이자 말거리재로 기울던 석양도 놀라 숨는 듯하였다.

여유롭게 달리던 국방색 포장은 느닷없이 퍼붓는 총탄 세례로 구멍이 푹푹 뚫리고 운전석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짐과 동시에 선도차는 횟돌바위를 지나 그대로 경사진 언덕 밑 길가에 머리를 박고 멈춰 섰고 갑작스런 총소리에 방향을 가늠해볼 여유도 없이 운전석과 차안은 말 그대로 발악과 신음 그리고 탈출을 하려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전동욱 소위는 총을 맞은 상태에서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들고 뛰어내렸으나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쏟아지는 총알에 운전수와 함께 즉사를 하였고, 짐칸 천막 안에 탄 사람들은 옆의 누가 총에 맞았는지 어쩐지 앞뒤 사정 볼 겨를이 없이 뛰어내리기에 바빴다. 그 순간에도 총을 움켜쥐고 뛰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런 방향감각도 없이 앞쪽으로 우르르 뛰어나가던 사람들이 총알을 맞고 고함을 지르며 연속 쓰러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을 알아차리고 낮은 논둑이나마 본능적으로 몸을 구부린 자세로 구릉목재를 향하여 정신없이 달렸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김 소년과 할아버지가 위험한 것을 보고 손을 휘저으며 소리를 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인명에 대한 본능임과 동시에 경찰이라는 직업에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민중을 위하는 잠재의식의 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심코 뒤따라오던 후미차도 갑작스럽게 총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선도차가 멈춰서고 사람들이 차에서 뛰어 내리며 마구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전방 끝이 선도차 피격지점

놀란 나머지 급하게 차를 세웠지만 처음 총소리가 났을 때보다 삼십여 미터 앞으로 나가서 멈췄다. 운전석에 타고 있던 유 대장이 기습이다! 라고 소리 지르며 급하게 뛰어 내렸다. 이미 총소리가 날 때 기습당했다는 낌새를 알아챘었는지 대원들도 이미 개인병기를 움켜쥐고 우르르 뛰어내려 본능적으로 차를 엄폐물로 삼아 순간적으로나마 대장의 눈치(지시)를 살폈다.

그러나 유 대장은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어떤 대응이나 반격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기습에 대한 유일한 방어수단은 일단 피신이 최선이기 때문이었다. 총소리가 나는 곳의 사각지대인 서쪽을 가리키며 뛰어! 하고는 구릉목재 산비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기관총의 사격 반경은 대내골 앞들 전체이지만 후미차는 뒤처져서 왔기 때문에 거리가 있었으므로 선도차에 우선 사격이 집중되었다.

그러고 나서 후미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 뛰어내려 도망가는 것을 보고, 그 사람들을 향해서는 마치 위협사격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마구 갈겨댔으므로 총에 맞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후미차는 앞차와 멀리 떨어져 온 것이 저도 모르는 행운이 되고 만 것이다.

총소리가 멈췄을 때 집중사격을 받은 선도차 일대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특히 앞으로 뛰어나가다가 총을 맞은 사람들은 온 몸에 여러 발을 맞았는지 모두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였고 주변에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도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운전석에 탄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은 권총을 허리에 찬 채 몇 발짝을 기어가다가 숨졌고 운전사는 그 자리에서 운전대에 쓰러져 즉사를 하였다.

그리고 뜻밖에도 민간인 여자 두 명의 시체도 함께 있었다.

총성이 멈추자 천지가 적막에 싸인 듯이 고요해 졌다.

도주했던 토벌대원들은 모두 송광천을 건너 봉천마을 쪽으로 모습을 감춰버린 뒤였고 마지막 이 장면을 지켜보던 석양도 말거리재로 기울며 끝까지 숨어서 승리를 자축하며 멈춰 있는 차들을 지켜보고 있는 습격자들의 시야에 조용히 어둠을 내리고 있었다.

 

-어둠속의 폭음소리

할아버지가 집으로 가는 것을 보며 정신없이 달려간 재진소년은 곧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릉목재와 가까이 있는 작은어머니 집에 도착하였다,

작은 어머니는 난리통에 집이 불타고 마을에서 먼 구릉목재에 있는 동기네 집 작은방에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곁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작은어머니를 부르며 사립문을 밀고 들어서자, 방문을 열고 내다본 작은어머니는 생각지도 못했던 조카를 보자 처음 총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 놀라며 어서 들라고 뛰어나와 팔을 내밀어 끌어당겼다.

그때는 큰방 식구들도 온 천지를 울려 놓은 총소리에 사태를 짐작하고 모두 방에 몸을 움츠리고 앉아 숨을 죽이고 있는 중이었다.

산골의 저녁이라 어둠은 금방 밀려왔다. 작은어머니가 차려준 보리밥 한 그릇을 김치에다 우겨넣고 나서 초꼬지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 한쪽에 벽을 기대고 누워,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상태에서 어린 나이에 조금 전까지 겪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겁에 질렸던 상황을 곰곰이 생각하며, 산으로 끌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으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일곱 시가 넘을 때쯤이었을까. 방에 불도 켤 수 없어 눈을 감고 있을 때 후미차가 서 있는 곳에서 커다란 폭음이 두세 차례 연달아 울렸다.

불안과 서글픔을 조용히 삭이고 있던 재진소년은 어둠이 확 달아났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나가 내려다보니 조금 전에 습격을 받아 멈춰 섰던 차량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집중사격으로 기습을 하고서도 은신한 상태에서 한동안 지켜보던 습격자들이 살금살금 내려와 가까운 선도차로 접근해 갔다.

주변과 차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며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전동욱 소위를 살펴보더니 떨어뜨려 놓은 권총부터 챙기고 일부는 후미차로 내려갔다.

그들은 차와 포에 불을 지르고 총과 실탄을 거두어 가려고 내려온 것이었다.

앞차에 남은 자들은 주변에서 나무와 마른 섶들을 주워와 차 밑과 포가 실린 짐칸에다 밀어 넣은 다음, 기름통의 마개를 열고 가져온 작은 호스를 넣어 입으로 빨아내어 여기저기 뿌리고 나서 불을 질렀다. 뒤차에서도 거의 같은 시간에 불길이 올랐다. 불이 포장에 옮겨 붙자, 삽시간에 차 전체가 훨훨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였다. 그리고는 두세 차례 폭음이 울렸다. 불타는 광경을 지켜보던 그들은 일부 회수한 총과 실탄을 가지고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어둠 속을 걸어 산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폭음소리가 나자 이읍마을 사람들도 놀라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멈춰 서 있는 차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반란군들이 기습을 하여 경찰들을 죽이고 나서 포를 쏘고 불까지 질렀다고 생각한 주민들은 타오르는 불길만큼이나 불안함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의 포 소리와 불길이 심장을 뛰게 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이 일로 인해 내일부터 경찰들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할 두려움으로 불안한 표정들이 역력하였다. 그러나 노인들이나 여인들은 궁금함을 억누르며 담 너머로 기웃기웃 내다볼 뿐 혹시 아이들이 밖으로 나갈까봐 단속하고 있었다.

이런 난리 통에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경험이 가르쳐준 생존의 본능이었다.

마을의 유지들은 동네 입구의 목책으로 둘러싸인 출장소 앞 공터에 모여 폭음소리와 방화를 두고 나름대로의 분석들을 내놓다가 역시 내일의 걱정을 앞세우며 한길로 나온 사람들을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돌아들 갔다.

이내 타오르던 불길도 고요한 적막 속으로 가물가물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때 어두운 논 언덕 여기저기서 신음소리를 내며 꿈지럭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각기 낮에 보아두었던 집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기기 시작하였다. 사실은 지금에야 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처음 총을 맞았을 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응급처치를 하고 살아보려고 기어가고 있을 때 습격자들이 내려왔으므로 죽은 듯 엎드려 있다가 조용해지자 다시 죽을 힘을 다해 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는 부식을 구입하러 갔던 평촌의 전근만 씨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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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범 2018-06-27 10:24:58
연재중인 작가의 향토사에 얽힌 이야기의 전개가,
점점 흥미를 더해간다.

작가는 스토리의 형식을빌려, 그때 그 시절의 상황들을
생존해있는,고향사람과 원로들의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해 독자로 하여금, 그 시대를
상상할수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있다.

달팽이도 산을 넘는다고한다.
먼저간 사람이 이기는것이 아니고,
끝까지 가는 사람이 이긴다고 한다
.
평범 하면서도 ,여운이 있는글이다.
항상 건투를 빈다. -하늘빛- 이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