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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바로 그 사람이다.

  • 입력 2018.07.01 18:07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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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는 “나는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큰 기적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기적이다니 이게 무슨 궤변(詭辯)인가? 우린 그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는다.

그는 왜 사람을 기적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생각과 상상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상상은 곧 꿈이요 꿈은 곧 사람이며 사람은 곧 기적이기 때문이다.

 

책은 생각이 솟아나는 샘물이다.

 

바로 생각의 차이가 사람의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기적은 신화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일상 곳곳에서도 일어난다. 모세처럼 바다를 열리게 하는 것도 기적이지만 내가 변하는 것도 기적이다.

그대 기적을 체험하고 싶은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라. 그대의 생각을 상식 밖으로 한 걸음 내딛어라. 그리고 생각의 커튼을 드리우고 상상의 조명을 높여라. 생각은 날카로운 도끼로 변할 것이다. 그 도끼는 다양한 삶을 조각할 것이다.

생각하면 장자(莊子)요 장자하면 상상이다. 그는 소요유(逍遙遊)편에서 <대붕>이라는 새 이야기를 한다. 물고기가 새로 변하는 판타지 세계를 보여준다.

“ 북극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이름은 곤(鯤)이라 한다. 곤은 엄청나게 커서 그 길이가 몇 천리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은 붕(鵬)이라 한다. 붕도 등의 넓이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다. - 중략 - 그 붕이 날아가는 곳은 천지(天池)다. 붕새가 남극 바다로 날아갈 때에는 물결이 삼천 리나 튀어 오른다. 붕새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 상공에 올라 여섯 달을 날고서야 비로소 내려와 쉰다.”

 

연작이 어찌 홍곡의 뜻을 알리요.

 

여기서 붕새는 나이며 사람이다. 내재된 능력을 한껏 펼쳤을 뿐이다. 그 천지로 향한 날개 짓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지만 나날 소박한 꿈을 가슴에 품고 쉼 없이 날아가는 우리의 작은 날개짓이다.

그 날개짓이 비상(飛翔)과 기적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다. 붕새로 태어난 나는 곧 변화와 변혁을 이룬 주체이며 사람의 무한한 능력을 보여주는 초월자의 상징이다.

상상의 바람을 일으켜라. 그리고 그 바람에 나의 생각을 태워라. 그리하여 바다 밖인 하늘에서 생기 있게 날다보면 변화한 자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기적이다.

 

삶의 길은 내가 직접 걸어가야 완성이 된다.

 

1970년대에 나온 ‘갈매기의 꿈’에 또 다른 붕새가 나온다. 그 이름은 조나단이다. 그는 동료 갈매기와는 달랐다. 항상 생각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보통 갈매기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어선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먹이를 찾는 것을 숙명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조나단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매직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생각의 토끼를 꺼내 들었다.

그는 보통 갈매기들의 한계를 넘어 더 푸른 하늘을 높게, 빨리 그리고 아름답게 나는 것을 상상하며 가냘픈 날개를 펼쳤다. 그는 나날 매서운 칼바람을 가르며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다했다.

마침내 조나단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푸른 바다를 마음대로 비상하며 생계를 해결했으며 드높은 창공을 날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또 다른 이상을 노래하며 그 집단의 리더로서 기적 같은 삶을 살았다.

 

고전은 인간의 향기를 이끌어 낸다.

꿈은 곧 사람이다. 조나단을 꿈꾸면 조나단이 되는 것이요 갈매기를 생각하면 갈매기가 되는 것이다. 물고기를 대붕으로 만든 장자처럼 우리 또한 기적적인 삶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덧붙임 : 장자는 말한다. “ 장님과 함께 아름다운 장식을 볼 수 없고, 귀먹은 사람과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없다. 어찌 육체만이 눈멀고 귀먹겠는가. 지능에도 못 보고 못 듣는 지능이 있다.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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