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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에서 고비를 넘기고(1)

3000Km를 횡단하는 몽골의 일주 여행

  • 입력 2018.11.27 08:45
  • 기자명 장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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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푸른 초원, 그 초원을 달리는 말의 무리, 끝없이 펼쳐질 모래사막과 낙타무리, 폭포수처럼 쏟아질 밤하늘의 별, 중앙아시의 비단길......

몽골여행을 앞두고 떠오르는 이런 단어들로 몹시 설렜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는 좀 더 다른 곳에 있었다. 평소 우리 고대사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우리 민족의 근원이라는 알타이에서 그 흔적을 확인하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읽었던 몇 권의 책들은 민족 시원의 흔적을 이야기 하고 있었고, 나 또한 고무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몽골은 매력 있는 곳으로 다가왔고 일상을 떠나 찾아가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몽골에서 발견한 것은 생각보다 더 척박한 환경에 대한 놀라움이었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강인하고 순수한 모습 이면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에 대한 확인이었다. 역사도 마찬가지로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단순한 생각들이 얼마나 많은 편견을 낳을 수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몽골을 다녀와서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동안의 편견들이 깨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원에 무성하게 자라있는 잡초를 뽑으며 몽골의 거친 초원에 풀 뜯던 가축 떼들이 떠오른다. 윗 산의 푸른 나무들 너머로는 몽골의 척박한 구릉지가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는 참 가진 것이 많구나. 푸르름, 생명력, 풍요가 넘치는 이곳에 살면서 그것이 부족해서 일상을 떠난다는 핑계를 대고 자꾸 여행을 떠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몽골일주한 도로 지도

미니고비와 카라코름

새벽 1시에 비행기에서 내려 밤샘하여 달려 도착한 곳이 미니고비다.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비몽사몽간에 나타난 사막은 말 그대로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모래 사막이다. 말이 미니고비이지 이 미니사막도 끝이 아스라하게 멀다. 모래언덕 너머에는 또 다른 모래언덕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면서 사막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사막 끝을 알리는 산들은 희끄므레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침을 맞이한다. 여명은 사막의 환희와 같다. 모래벌판으로 펼쳐지는 여명의 그림자를 떠안고 보면 몽골이 온통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미니 고비사막의 나무

모래언덕은 날을 새우고 우리의 발길을 껴안아준다. 모래능선과 구릉이 발걸음을 잡아 앉힌다. 밤새 비가 조금 내렸나보다. 군데군데 빗물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 주변에 제법 잎이 무성한 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있다. 나무는 손짓으로 우리를 불렀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이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무는 어떤 곳이라도 자라는 법이지요. 그리고는 곧장 침묵으로 들어간다.

말이 미니고비지 폭이 4km이고 길이가 100km에 이른다고 하니 그 넓이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모래들은 항가이 산맥에서 불어온 북동풍에 의해 여기까지 날라 와서 쌓였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고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을 터 사막은 바람 따라 늘상 변하겠지.

사막입구에는 게르가 몇 채 있다. 게르를 지키고 있는 낙타무리, 관광 채험용 낙타이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체험한다. 낙타는 꺼득꺼득 사막을 걷는다. 그 움직임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번번이 낙타와 나의 호흡은 깨진다. 볼록 올라온 앞 등을 붙잡고 좀 자연스러워 지려고 하지만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낙타는 그럴 것이다. 너희가 내 걸음을 이해하는 날, 사막도 이해하게 되리라.

낙타는 유유히 사막을 지나가지만 낙타를 타고 건너가는 그 사막의 상인의 흔적은 없고

미니고비를 뒤로 하고, 서쪽으로 나아간다. 칭기즈칸의 정벌군도 이렇게 서쪽을 향하여 말채찍을 휘두르면서 나아갔을 것이다. 카라코름에 들어섰다. 칭기즈칸의 대를 이은 2대 칸 우구테이가 세운 몽골제국의 수도였다. 우리나라의 면소재지 정도나 될까 싶은 조그마한 시골 도시다. 과거 세계적인 대도시였다는데 그 영화는 사라지고 한적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당시 카라코름은 국제적인 도시였다고 한다. 카라코름을 방문한 대표적인 인물은 로마 교황이 파견한 공식적인 사절 카르피니와 프랑스 루이 9세가 비공식적으로 파견한 루브룩이 있었다고 한다. 카르피니는 고려 사절을 보았다고 하며 '고려(솔랑기:Solangi)‘에 대해 여섯 차례나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루브룩도 고려에 대해 ’솔랑가:Solanga, 카울레:Caule'라고 기록을 하였다고 한다. 특히 루브룩은 고려 사절에 대한 인상과 복장을 아주 정확하고 자세하게 묘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몽골의 관계를 살펴보면 고려 때 몽골 침략의 기록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강화도에서 진도를 거쳐 제주도까지 이동하며 항쟁을 했던 삼별초의 몽골항쟁이 또한 역사책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그것에 대해서 몽골이 정벌한 나라들은 거의 모든 국가를 멸망시켰는데도 고려만은 멸망시키지 않고 존속시켰다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큰 은전을 베푼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침략을 하는 입장이고, 우리에겐 그 자체가 커다란 상처가 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이 카라코름은 2대 칸 우쿠테이가 죽은 후, 내부적인 세력다툼이 이어졌고, 5대 칸 쿠빌라이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도 없고, 박물관에 모형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파괴와 폭력이 인간역사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너른 들판의 한 켠에 밀집한 민가가 지키고 있다. 에르덴조 사원이 성터의 잔흔에 세워져 있다.

게르에서의 석양

몽골에 도착하여 맞이한 첫날 밤, 카라코름의 게르에서 숙박했다. 수십 채의 게르가 즐비한 게르촌이다. 여행객에게 제공되는 게르 숙박소인 셈이다. 게르 안에는 3인이 숙박할 수 있게 침대 3개가 놓여 있다. 피로에는 역시 씻고 쉬는 것이 약이다.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름에 남아 있는 에르덴조 사원

다음날 카라코름에 남아 있는 불교사원인 에르덴조 사원을 방문했다. 사원안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협시불로 약사불이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질병의 고통을 없애주는 요구에 부응하여 약사여래불이 출현하였다. 약사여래불은 손에 약함을 들고 있다. 몽골의 척박한 풍토에서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바램이 곧 약사여래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에르덴조 사원을 바라보는 언덕에는 여인곡이 있다. 여인의 음부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여인곡의 입구에는 남자의 성기를 형상화한 석조물이 놓여 있다. 사원의 수행승들과 관련된 샤먼과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것이 성욕을 극복하고자 하는 승려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배어있는 듯하다.

 

야 영

바얀홍고르는 작은 도시다. 숙박시설이 별도로 있을 리가 없다. 사막에서 마을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더군다나 숙박시설을 갖춘 여관을 만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덩그런 초원 한가운데 텐트를 친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벌써 해는 넘어가고 어두워져 있다. 가져온 휴대용 전등을 켜고 잠자리를 만들고 식사를 한다.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오면 빛을 내는 것은 오로지 밤하늘의 별 뿐이다. 어릴 때는 나도 저 맑은 하늘을 가졌지. 이 야영지에는 별들의 자장가로 잠을 이루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야영은 새롭다. 기억에 남아있는 학창시절, 군대생활 때의 야영, 그것들이 실루엣처럼 펼쳐진다.

야영은 기본적으로 준비를 하고 다녀야 한다. 숙소는 예약이 되지 않는다. 우리 일행을 제워줄 숙소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너무 많은 수를 수용할 여관은 작은도시에는 불가능하다.

밤은 춥다. 낮이 그렇게 더웠던 것에 비해 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추웠다. 냇물을 타고 온 찬바람이 텐트를 때리는 것일까. 두툼한 겨울 침낭이 아니면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다. 바닥은 에어매트까지 깔아야 한다. 그래도 추웠다. 텐트 사이로 들어오는 냉기가 얼굴을 때린다. 침낭의 지퍼를 얼굴까지 올려본다. 피로감이 몰려온다. 동반자들의 코고는 소리라도 좋았다. 코고는 소리는 하모니가 된다. 나이 들면 누구나 코를 곤다. 나 역시 코골이를 할 것이다.

이런 추위에 하는 야영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몇 번씩 온 사람들은 이런 정도는 아주 따뜻하다고 한다. 아침의 태양은 들판을 가로질러서 나를 깨웠다. 밤에 보지 못한 광경을 본다. 멀리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바얀홍고르란다. 바얀홍고르를 끼고 강이 흐른다. 강이 있으므로 마을이 형성된 것이리라. 강바닥에는 부유물이 잔뜩 가라앉아서 바닥의 돌들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몽골의 강들은 거의 그렇단다. 강바닥에 가라앉은 부유물은 동물들의 배설물이라고 한다. 물에 발을 담가본다. 6월인데 물은 아주 차갑다. 싸늘함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물의 차가움이 차라리 신선하다. 배설물이면 어떠랴 싶다. 비록 바닥에 배설물의 부유물이 가뜩 쌓였더라도 물은 참 맑다. 맑은 물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개운해진다.

 

고비사막에서 알타이까지

하루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무조건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알타이로 간다. 고비사막을 지나간다. 비포장도로다. 도로라기보다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차량들의 바퀴자국이 길이다. 누군가 먼저 이 길을 갔고, 나 또한 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길을 따라 올 것이다. 이정표가 있을 리가 없는 그저 끝없이 펼쳐진 사막너머에 아스라하게 산맥이 보인다, 그 산맥들이 몇 백 킬로미터 거리에 있다고 한다. 좌우로 멀리 떨어진 산맥 중 북쪽에 놓인 것은 항가이 산맥이고 남쪽에 놓인 것은 알타이산맥이다. 사막에는 널부러진 모난 자갈, 발로 밟으면 푸석푸석 먼지가 일어난다. 더러 발끝에 돌이 채이면 이 돌의 자리가 새롭다. 과연 있을 자리에 쓰임없이 놓여져 있는 것일까. 어쩌면 사막에 놓여진 이 돌까지도 웬지 존재감을 갖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막 바위가 부서진 자갈이 마구잡이로 뿌려진 듯하다. 모난 돌부리를 걷는 발목이 아린다. 풀잎은 그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다가 힘들게 하늘을 향해 손짓한다. 어느 순간이면 다할 생명을 도리질이라도 할 듯 버티고 있다. 푸석푸석한 먼지 속에서 풀잎은 생기를 잃어가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삶이 아닐까. 어쩌면 초록이 그들의 생존이지 싶다. 초록은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생존에 대한 그들의 집착일수도 있을 것이다.

고비사막을 질주해 가는 여행객의 자동차

칭기즈칸은 서쪽을 정벌하기 위해서 이 길을 달려갔다고 한다. 이 너른 사막에 떼를 지어 말을 달리면서, 그들은 정벌을 하였다. 그들이 세계를 정복한 그 동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문득 에너지 넘치는 그 동력은 지극히 인간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거친 사막에서의 생존방식이 아닐까.

그러나 그 융성한 제국도 결국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국가라는 어떤 형태의 조직도 결국에는 영원한 것이 아닌 생주이멸의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결국 이 생주이멸의 과정을 냉정하게 맛보게 되는 것이리라.

 

푸르공은 러시아제 차량이다. 힘이 좋아서 몽골여행에서는 최상의 힘을 발휘한다. 우리 일행의 차량중 짐을 싣고 가는 유일한 푸르공이다.

알타이까지 가는 동안에 우리가 본 고비사막은 기껏해야 고비사막의 언저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과연 고비사막은 얼마나 넓은 것일까. 차창밖으로 사막의 그 광대함을 내다보면서 캔맥주를 한 잔 들이킨다. 왜 이렇게 막막해지는 것일까. 자연의 광대함에 질려서 인간의 나약함, 아니 나의 무력함이 절절하게 밀려온다. 사막은 오히려 깊은 외로움의 나락으로 나를 빠뜨리고 있다.

자갈투성이의 사막에는 인간의 여정과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저 뜨거운 태양이 순간 고독으로 밀려온다. 맑은 하늘이 차라리 괴로움이다. 구름이라도 확 밀려와서 고독을 덮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맥주 한 캔의 취기가 주는 비애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척박한 초원에서도 식량을 찾는 삶의 방식이다

간간이 낙타들이 보인다. 주변에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집을 나온 낙타라고 한다. 가출해서 인적이 없는 곳에서 산다고 한다. 가출한 것인지 길을 잃은 것이지는 모를 일이다. 이 척박한 곳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큼지막한 낙타의 눈과 마주친다. 가뜩이나 생존의 눈길이 처량하다. 구속과 속박을 벗어난 대신에 생존 본질의 위험을 안고 사는 것이리라.

우리를 태운 차량은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한 스타렉스 9인승이다. 기사까지 포함해서 7명이 각자의 짐을 뒤에 가득 싣고, 의자 밑 발 뻗을 곳까지 여분의 짐을 놓는다. 차안은 벌써 짐으로 가득 차 버린다. 남은 자리에 비집고 들어간다. 짐이 주인인지 사람이 주인인지 모를 지경이다. 몽골인 운전기사는 바퀴자국만 난무한 이 길 없는 사막을 망설임 없이 달려간다. 차량 속도는 이삼십 킬로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잔 진동은 차라리 양반이다. 순간순간 머리는 천정으로 곤두박질하고, 늘상 어이쿠 소리가 난무한다. 그 와중에도 쏟아지는 졸음으로 깜박하는 쪽잠은 어떤 간식거리보다 달콤하다. 그러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온몸이 좌우상하로 요동치는데 언제 어이쿠 소리를 쏟아낼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이 여행만이 갖는 진수가 아닐까.

고비사막을 벗어나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거의 하루가 소요된다. 알타이시에 들어서니 밤 9시다. 어쩌면 고비사막은 인내의 고비를 넘기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남쪽으로 알타이 산맥을 넘어서면 그 앞으로 본격적인 고비가 있다고 한다. 거대함을 상상하면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알타이시는 우리나라의 조그마한 읍 정도 크기다. 그래도 이곳에는 공항까지 있단다. 숙소는 알타이 시에 있는 유일한 호텔, 우리나라의 여관정도나 될까. 그것도 어렵게 구했다고 한다. 9시가 되어도 아직 해어름이다. 석양은 우리나라보다 늦다. 지평선 끝자락은 서서히 내려오는 어둠으로 서로를 아우르고 있었다. 평원에 해를 가리는 산들이 가까이 없으니 해지는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낮이 길어서 좋을지 모른다. 맥주잔을 기울였다. 피로를 무력화시킨다. 오랜만에 편안한 잠자리를 갖게 되었다. 밀려오는 피로가 알콜과 함께 온몸을 덥쳤다.

알타이에서의 하룻밤은 삼일 간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오랜만에 샤워도 할 수 있었다. 문명의 습관에 젖어 있었던 것이 오히려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지 모른다. 며칠간 씻지 않았다가 샤워하고서는 마음까지 개운해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사치스러운 습관이 아닌가 싶다. 처음으로 밥을 해먹지 않고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자고 먹고 하는 것이 쉽게 해결되니 새로운 여유로움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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