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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여수만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를 열고 싶었다"

금보성 화가 여수미술관 개인전
오감을 사용해 느끼는 금보성 작가의 한글작품
"설치물보다 건축물이란 표현이 더 적합.. 내가 지은 한글이란 건물에서 편안히 쉬고 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 입력 2019.03.06 14:54
  • 수정 2020.08.07 16:07
  • 기자명 전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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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성 화가 Ⓒ서봉희

세계 3대 발명품 중 하나인 한글을 문자로 예술화시키면서 개념적 접근을 시도하는 금보성 작가 초대전이 지난 1일 여수미술관에서 열렸다. 

금보성 작가는 여수에서 태어나 현재 종로에서 '금보성 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열며 자신의 이름을 건 아트센터를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제공하는 등 문화발전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고향 여수만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준비하게 됐다”며 이번 전시를 “성실하게 기도하면서 의미를 갖고 싶은 전시”라고 소개했다.

지난 4일 여수미술관에서 전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금보성 작가를 만났다.

Ⓒ서봉희

Q1. 문학의 다른 어떤 장르보다 ‘시’는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 혹은 형태를 중요시한다. 그런 점에서 시를 쓰던 금보성 작가가 언어 형태에 흥미를 느끼고 이를 미술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시는 간결하다. 화가도 캔버스 화면에 간결히 표현해야 한다. 과거에 문학을 할 때도 꼭 시를 써야 한다기보다 그저 내가 가진 생각들을 어딘가에 옮기고 싶은 욕구를 표출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국내에도 알파벳 등 문자나 기호를 소재로 한 다른 작품들은 많지만 나는 한글을 가지고 작업한다. 그 한글의 가장 큰 모티브가 바로 시(詩)다. 시의 중심은 고향 여수고.

즉 내 시의 대부분은 고향 이야기고 그림 소재는 모국어, 한글이다. 이렇게 딱 두 개로 나뉘어 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보통 연애나 풍경, 종교 등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 외에 나는 여수 지명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여수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글로 쓴다. 그리고 그 글을 그림으로 옮긴 게 내 작품이다.

 

Q2. 그렇다면 금 작가의 미술작품은 문학의 2차 가공이랄 수 있겠다

내게 시와 그림은 분리되어 있지 않은 한 몸뚱아리다. 사람들이 볼 때 ‘왜 시 쓰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느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 시가 그림이고 그림이 곧 시다.

원고지에 썼던 글을 그대로 캔버스에 그림으로 옮기고, 거기에 색을 입힌 게 내 작품이다.

 

Q3. 만약 시가 아니라 다른 문학장르를 전공했다면 한글을 활용한 아이디어를 내기 어려웠을까?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가 아닌 다른 걸로 그림과 접촉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이번 전시는 회화중심의 평면 작품이고 그렇게 언어를 표현한 작품은 조각이나 설치미술 등 다른 장르에도 많다.

미술가 인디애나는 ‘LOVE’라는 네 개 알파벳을 표현한 조형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나 역시 한글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적 있다.

인디애나에게 ‘LOVE’가 있다면 저한테는 ‘약속’이라는 글자가 있다. 그것을 조형물로 만들어서 발표했다.

금보성 작가가 여수미술관에 전시할 대형작품 준비에 여념이 없다. 테이프 안쪽을 칠한 후 이를 떼어내는 형식으로 작업한다   Ⓒ전시은

 

Q4. 과거 인터뷰에서 “언어도 문자체계를 넘어 예술자원으로 남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언어가 이제 하나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제 뒤에는 카펫이 있다. 여기는 회화 그림이고 옆쪽은 이불, 카펫, 가방 다양한 것으로 변모할 수 있다.

방파제를 본뜬 작품 ‘ㅅ’에는 과거에 말한 것처럼 단순히 방파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사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이 방파제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를 담으려 했다.

원래 방파제는 태풍으로부터 무언가를 지켜주고 보호하는 용도다. 이 방파제가 사람과 사람이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또 한 사람이 쓰러져도 함께 힘을 모으면 서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서봉희
Ⓒ서봉희

 

Q5. 즉,  당신은 글자 그 자체를 미술 소재로 삼고 또 글자 형태와 비슷한 사물을 배치하면서도 그 사물이 가진 본연의 의미도 간직하려 노력한다고 이해해도 될까

내 작품인 ‘방파제’나 ‘약속’같은, 일종의 ‘만지는 문자’는 그저 눈으로만 보는 문자가 아니라 오감을 사용하여 느낄 수 있는 문자다. 이는 한글이 소리글자인 점과 상통한다. 

방파제는 그 모양이 자음 시옷 혹은 사람 인(人)을 연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작품으로 적합했다.  누군가는 “방파제가 무슨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나는 폭이 6~10m 되는 방파제가 주는 압도감, 강함 그런 것들이 여러 의미를 포함하기에 작품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Q6.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

한글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 한글을 통해 미술 작품을 시작했기 때문에 변함없이 한글에 다양한 색채와 구조, 형태를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 갈 것이다. 다른 언어는 나에게 별 의미가 없다. 간혹 일본어나 한자처럼 다른 언어를 쓰는 경우는 있지만 우선은 한글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많기 때문에 그 외의 언어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과거 조형물 ‘약속’처럼 순수하게 그 글자 자체를 작품으로 나타낸 적도 있는데, 이는 설치물보다는 건축물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약속’이라는 건물을 짓고 싶은 거다. 

이 ‘약속’이라는 건물 안에는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엘리베이터나 주차장도 들어서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런 한글형태의 건물이다. 이 안에 들어가서 쉴 수도 있고 일을 하는 사무공간도 마련할 수 있다.

 

Ⓒ서봉희

건축설계도 가능한만큼 실제로 이런 건물이 생겼으면 좋겠지만 그걸 누가 만들 수 있을지 난 모르겠다. 그런 건축가가 나타난다면 나는 그에게 '이런 건물을 만들어 달라'고 온전히 맡길 것이다. 

바램이 있다면, 한글이라는 글자를 이용해 조형, 회화작품 할 것 없이 다양한 장르를 다 아우르고 싶은 게 내 바램이다. 어느 한 장르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화가가 꼭 그림만 그릴 필요는 없으니까. 화가이기 이전에 작가로서, 어떤 재료를 주더라도 나는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낼 것이다.

언뜻 보기에 내 작품들이 그저 완성된 글자의 모양을 그대로 따오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배열, 배치에 따라 작품이 다 다르다. 회화 장르에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묘사가 있는데, 나의 한글은 단순 묘사가 아니라 그 안에 정신을 담고 있으므로 작업 과정에서 내가 품고 있는 생각에 따라 그림의 방향이 바뀔 수밖에 없다.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캔버스나 원고지에 옮기는 게 회화고 문학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한글로 어떻게 퍼즐을 짜느냐에 따라 내용 자체가 바뀌므로 생명력을 갖는다. 기역, 니은, 디귿을 어떻게 배열하고 조합하느냐에 따라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야’ 이렇게 말 자체가 바뀐다. 나는 한글이 가진 이야기 속에 있는 따뜻한 생명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림은 색으로 시작해서 색으로 마무리 짓는 작업이다. 산을 칠한 것이 색이냐, 그게 아니라 그 산을 올바로 표현하기 위해 색을 절묘히 배색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웃옷은 무슨 색이고 바지는 무슨 색을 입느냐, 신발은 어떤 색을 신느냐 그런 '배색'이 내 그림이다. 즉 나는 선이 아니라 색으로 내 생각을 알리려 한다.

회화는 색을 가지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하나의 색을 선택할 때 굉장히 고심하는 편이다. 색을 잘못 쓰면 그림이 엉망이 되니까. 밀가루에 소금을 많이 타거나 물을 많이 넣어서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반죽이 짜거나 질게 되는 것처럼, 색을 잘못 쓰면 어찌 됐든 그림은 완성될지 몰라도 그것은 음식으로 치자면, 짜거나 혹은 반죽이 질은 음식이다.

금보성 작가가 사용하는 페인트가 미술관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전시은

Q7 당신에게 그림이란 ‘색을 담는 그릇’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러므로 색이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내 그림이 ‘색을 담는 그릇’이라는 표현에 동의한다.

여러 종류의 물감을 섞어서 원하는 색을 만들기도 하고, 먼저 캔버스 바탕이 되는 색을 머릿속으로 정하고 나서 그에 어울리는 색으로 그리기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Q8 전시된 그림엔 각진 형태가 대부분인데 나중엔 원을 그린 작품을 전시할 생각이 있나 

이미 그런 그림도 그렸지만 이번에는 전시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는 절제된 모습을 표현하려 원이 들어간 작품은 제외시키고 직각으로 딱딱 떨어지는 자음을 주로 그렸다.

누군가에게 그림과 글(詩)은 다르겠지만 내게 그 둘은 따뜻한 생명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같다. 관객들에게 내 작품이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봄의 새싹 혹은 여름의 바다같은 그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림이 됐으면 좋겠다.

Ⓒ서봉희

 

“윷판에 윷을 던지는 것처럼 나는 캔버스 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을 던진다. 윷이 판 위에 어떻게 흩어질지 모르는 것처럼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는 내 캔버스 위에 글자가 어떻게 배치될 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윷을 던지는 순간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작품마다 구조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단어를 던질  것이냐는 나 스스로 결정한다."     -금보성 

 

Q9.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는가

이런저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 혹은 이야기가 나오지, 그저 가만히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린다. 대체로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새벽 서너 시까지 그림을 그린다. 

일이 많아서 여행은 한 달에 한 번 밖에 못 간다. 내 이름을 건 아트센터도 운영하니까 다른 작가들의 작품전에도 참여해야 한다. 나는 술도 안 먹고 오로지 그림만 그린다. 스무 살 첫 전시이후 올해로 34년 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스무 살 그때는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렸다. 그리는 게 즐거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금보성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여수미술관 Ⓒ서봉희

금 작가가 운영하는 아트센터는 일 년 365일 열려 있다. 아트센터에서 작업하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작가가 원한다면 완성된 작품을 그 자리에서 바로 전시하여 선보이기도 한다.

금보성 작가는 “그런 과정에서 작가들이 서로서로 자극을 받는다. 이곳 아트센터에서 머물며 만든 완성작은 아트센터 외 다른 공간에도 전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여수미술관 금보성 오프닝전은 오는 7일 오후 6시에 열린다.

 

▲ 작가:금보성

· 1966년 여수 출생

· 금보성 아트센터 관장

· 주요 개인전 50회

· 2018한글展, 잇다스페이스, 서울

2018한글展,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2018한글展, 하늘을 나는 방파제展, 서울

2018한글展, 테트라포트展, 포항, 호미곶

2018한글과 자두展,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2017한글展, 테트라포트展, 영일대해수욕장-호미곶, 포항

2017한글展, 딜라이트 스퀘어, 서울 합정

2016한글展, 교보문고 광화문

2016한글展, 화인갤러리, 여수미술관, 여수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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