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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교육칼럼6] 창조는 파괴의 생채기

  • 입력 2013.06.20 14:18
  • 기자명 yosu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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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파괴의 생채기이다.


  
김광호

여양고등학교 교사 김광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중에서 니체는 이렇게 인간을 정의한다.“어느 시대에도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모든 인간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분할된다. 왜냐하면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자는 노예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니체는 창조와 파괴라는 큰 톱니바퀴를 반복하면서 인간을 탐색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니체가 던졌던 인간과 세상에 대한 회의와 창조적 허무주의를 만나보자.

니체는 자신의 분신인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나는 너희에게 3가지 정신의 변형을 말하려 한다. 즉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는 어떻게 사자가 되고, 마지막으로 사자가 어떻게 어린아이가 되는지를 말하겠다.’이제 니체의 철학을 우리의 생활에서 구체화해보자. 니체는 인간 정신의 발달을 3단계로 나누어서 어떻게 인간이 노예로부터 자유정신으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먼저 낙타의 단계이다. 낙타의 정신은 우리의 출발점이다. 낙타는 자기에게 필요 없는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을 상징한다. 낙타를 생각해보시라. 낙타는 자신의 물건이 아닌 주인의 물건을 아무런 불만도 없이 착실하게도 운반한다. 끝없는 사막에서 반항하지 못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착한 낙타는 오늘도 또 짐을 실고 걷는다. 타고난 의무의 존재요, 책임의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죄송하게도 바로 그런 삶이 전형적인 노예정신이다. 나의 좋고 나쁨은 없고, 오직 선과 악만 받아들이는 존재 말이다.

부모님, 선생님, 국가의 말에 순종하면 선이요, 거역하면 악으로 판명되는 현실에서 혹여 우리는 낙타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다보니 우리 아이들은 마마보이, 파더걸, 티처보이 등등으로 재생하여 어른 아이로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둘째 사자의 단계이다. 터프한 저항정신의 상징 바로 그 백수의 왕, 사자 말이다. 여러분은 혹 낙타의 등에 당연하게 올려놓았던 그 짐을 사자 등에 올려 놓을 수 있는가. 바로 사자의 터프한 저항정신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초원을 달리며 먹이를 사냥하고 포효하는 사자의 늠늠한 모습을 떠올려 보라. 사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하며, 굴레에서 벗어나려 하니 다른 존재와 끊임 없이 갈등을 한다.

혹여 부모님, 선생님, 국가와 생각이 달랐을 때 ‘나의 생각은 이렇다’고 말해본 적이 있는가. 무조건 복종하면 선이고 때때로 저항하면 악인, 좋음과 나쁨을 이젠 순결한 입술로 말할 수 있어야한다. 우리도 성찰 속에서 낙타 아닌 사자로 태어나실 수 있어야 한다. 우린 여기서 사자의 자유정신과 의지를 배워야 한다. 이런 새 마음으로 견고하게 굳어 버린 관습과 낙공불락 같은 선입견을 조금씩 파괴해야한다.

셋째 어린아이의 단계이다. 어머니의 자궁을 뚫고 나온 순수하고 해맑은 생명을 생각해 보라. 니체는 사자에서 자유정신이 끝났다고 방심하는 사람이 많을거라 걱정한다.‘좋고’와‘나쁨’에서 끝날 수도 있다.‘엄마 저 학원에 가기 싫어요’,‘엄마 저 혼자 여행 다녀 올게요’, 이렇게 자유정신의 구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가‘굿(Good)과 배드(Bad)’를 지킬 수 있는 신념이 필요하다. 나만의 스타일과 성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 같은 순결한 자유영혼에 의지해서 나를 창조하고 나를 지켜야한다.

혹 최경주, 양용운 두 골프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이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분명 저 젊은이는 미쳤다고. 그렇다. 그들은 미치고야 말았다. 모든 이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 있을 때, 그들은 틀과 관습을 깨고 자유 영혼을 노래했다. 그래서 결국 최경주, 양용운 두 선수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자긍심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의 삶이 이상한가. 우리도 두 선수처럼 나만의 삶을 만들자는 것이다. 관습과 전통만 지키다가 파편화되어버리는 내가 아니라 나를 지키고 창조하는 자유영혼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니체의 3가지 정신의 변형을 살펴보았다. 혹 임은 어디쯤에서 서성이고 있는가. 혹 임은 자녀분들에게 어떤 정신을 안내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낙타 단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님께서는 아이들을 낙타로 키우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학원에 보내고 처절하게 명문고를 지향하며 주술처럼 자본(돈, 출세)을 숭배할 것이다.

임이시여! 혹 아직도 성찰하지 않은 선조의 외형만을 유지한 채 오늘도 내일도 유령처럼 이 도시를 배회할 것인가? 이젠 나만의 가치와 호흡으로 한 세상을 창조하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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