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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거문도기행]거문도 여관 문전성시

  • 입력 2013.06.30 20:06
  • 기자명 yosu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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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거문도 여관 문전성시

거문도는(고도, 서도, 동도) 3개의 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고도와 서도 사이에 연륙교가 가설되면서부터 거문도에 관광객이 늘어나기 시작한 배경에는 싱싱한 생선과 먹을 음식이 풍부하다는 인식이 점차적으로 확산되면서 유동인구가 많아진 것이다.

조금 아쉽다면, 콘도를 이용한다든지 또는 모텔을 활용하여 자동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신혼 여행객들은 백도의 아름다움 경관과 연인들에겐 데이트 장소로서 딱 안성맞춤인 것 같은데 아직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요인이 아쉽다면 아쉬웠다.

마침, 가족과 동료들끼리 도란-도란 속삭이다가 웃음으로 바꿔지면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얘기거리가 나의 귓가에까지 들린다. 옆에 있던 3자의 입장에서도 엔돌핀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전이되다 보니 정겹기 그지 없었으며 한 가정의 오붓한 분위기를 우리 모두에게도 전파되는듯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코리아-나에서 취침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래도 모처럼 G선배께서 운영하고 있는 여관(옛날 고가 건물 2층 양옥집)에서 하루 밤을 자고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는가.

선배와 함께 소파에 앉아서 녹차를 마시다 말고 지나온 과거사를 듣게 되었다.

G선배의 말씀 왈, 신식 교육을 받은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기에 여담으로 화제거리가 되는 것 같았고 우리 집의 뿌리를 소상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내 어린 시절이라고 할까? "문전 성시였던 많은 고객들은 내 집 안방이나 다름없이 별의 별 일거리로 천차만별이었다네. 그때에 비교하면 요즘은 손님들이 절반도 안되거든."고 말씀하셨다. 그때 당시 수입이 넉넉했었기에 경제력으로 풍족했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네.

거문도에는 좋은 생선들이 무궁무진해서 신선도라 하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풍요로운 고장이자 넉넉한 선주들은 부러울 것이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더더구나 "일본 사람들은 싱싱한 생선을 보면 사-죽을 못쓰는 습성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네."라고 옛날의 추억거리를 말씀하시며 지금 혼자 사시는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었다네. 그리고 "이 여관을 이용한 손님들은 자기집 안방처럼 드나들었다고 말씀하시며 또 희로애락으로 1,2층에는 술에 취해 코고는 손님, 밤마다 고스톱하는 선주님들 밤을 새우고, 노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네." 또 "계단마다 광이 나서 번쩍거릴 정도로 여관의 융성함을 산 증인으로 대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계단을 나무로 만드어진 탓으로 연륜도 짧아지고 보수공사하랴, 눈코 뜰 틈이 없었다네." 라고 말씀하신 어머님도 벌써 세상을 떠난지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네...!

"이 사진으로 증명하는 징표의 대-변천이라 할까."

마침 나는 하품을 하면서 형, 졸음이 오네요. 벌써 새벽 1시가 되었네요. 그럼 먼저 실례합니다.
"그래 잘 자-소."

2층 3호실은 세 양반이 코-고는 3중 합창단의 멜로디가 여관을 들었다 났다 할 상황이 우스꽝스러웠으며 다행스럽게 나의 잠자리는 베개와 이불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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