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 인물 칭기스칸... 그러나 그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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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적 인물 칭기스칸... 그러나 그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 오문수
  • 승인 2019.08.2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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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전략가, 위대한 법 제정자 등 다양한 평가를 받는 칭기스칸
칭기스칸 동상 ⓒ오문수

칭기스칸은 전 세계에 정복자로 알려져 있지만 몽골인은 그를 위대한 법 제정자로 기억하며, 1995년 워싱턴포스트에서 사용한 칭호 '세기의 인물(Man of the Millennium)'이란 칭호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칭기스'는 몽골어로 '위대하다'란 뜻이고 '칸'은 군주를 의미한다. 따라서 '칭기스칸'은 사해의 군주, 세계의 군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몽골인들에게 있어 칭기스칸은 신처럼 존경받는 존재다.

칭기스칸 탄생지 인근의 오보. 몽골인들이 기도하고 있다 ⓒ오문수

몽골에 가면 칭기스칸이란 이름이 널려있다. 화폐에 그려진 초상화, 공항명칭, 보드카 명칭뿐만 아니라 음식명에도 칭기스칸 요리가 있다. 그럴만도 하다.

12세기 초까지도 유라시아 대륙에 살던 유목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 속에서 이합집산하며 쇠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당시 초원은 나이만, 메르키트, 메레이트, 타타르, 몽골의 5개 주요 부족이 중원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견제하며 합종연횡을 계속하고 있었다.



결혼하러 가던 여인을 납치한 부친의 납치극은 아들인 칭기스칸에도…
 

이때 초원 통일을 꿈꾸는 지도자가 나타났다. 쇠락한 몽골 부족의 리더인 예수게이 바아토르가 그다. 한때 몽골의 지도자였던 카불칸의 손자인 그는 강력한 부족인 타타르와 맞서 싸우는 한편 다른 부족과의 세력 균형을 쌓았지만 다른 부족으로부터 원한을 쌓았다.

예수게이는 메르키트의 젊은 지도자 칠레두와 결혼하러 가는 허엘룬을 납치해 결혼했다. 예수게이에 의한 허엘룬 납치는 아들인 칭기스칸의 비극적 운명의 시작이었다.

납치되어 예수게이와 결혼한 허엘룬은 하필 타타르족 적장인 테무진을 포로로 잡던 날 태어났다. 사내아이는 주먹을 꽉 쥔 채 태어났는데 주먹 안에 복사뼈만한 핏덩이를 쥐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용기, 전투, 승리로 해석된다.

예수게이는 아들에게 적장의 이름인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예수게이는 테무진이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옹기라트의 지도자 데이 세첸의 딸인 버르테와 약혼을 시켰다. 세력확장을 위한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다.

많은 원한을 샀던 칭기스칸의 부친 예수게이는 정적으로부터 독살당했다. 남편이 죽자 세력이 약화된 부족을 이끌던 허엘룬은 오논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온 가족의 단결이 절실한 상황에서 단합을 깨는 자가 있었다.

테무진의 이복동생 벡테르는 사냥한 동물과 물고기를 가로채곤 했다. 테무진은 초원의 법칙에 따라 이복동생인 벡테르를 활로 쏘아 죽였다. 테무진의 기질을 알아챈 메르키트족은 그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부족장을 잃은 칭기스칸 일행은 쫒기는 신세가 됐고 예수게이에게 신부를 빼앗겼던 메르키트족은 복수를 위해 나섰다. 

몽골 제1의 성산으로 여겨 외국인과 여성은 올라갈 수 없는 보르칸 칼돈산 모습. 칭기스칸은 이곳에서 힘을 길러 세력을 확장했고 이곳에 묻혔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오문수
칭기스칸이 활동하며 힘을 길렀던 오논강 모습. 몽골에 사막만 있을 것이라고 예단하면 오산이다 ⓒ오문수

남아있는 부족과 함께 보르칸 칼돈산에 숨어있던 테무진은 안전한 곳을 찾아 산으로 기어올랐다. 테무진이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가족은 붙잡혀 갔고 칭기스칸의 아내 버르테도 끌려갔다.

충성스러운 조력자들과 함께 이웃 동맹세력을 모은 테무진은 어린 시절 피를 나눈 의형제 자모카와 힘을 합쳐 아내를 빼앗아 간 메르키트족을 공격해 아내 버르테를 되찾아 왔다.

테무진과 함께 집에 돌아온 버르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아이를 낳았다. 테무진은 원수의 아이를 손님처럼 찾아온 아이라는 의미의 '조치(나그네)'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칭기스칸의 휘하장수를 조각한 모습 ⓒ오문수

이제 몽골초원에는 칭기스칸과 자모카 두 영웅만 남았다. 둘 다 지략이 뛰어나고 용맹했지만 자모카는 많은 추종자가 있었고 칭기스칸은 왕족의 혈통이 흐르고 있었다는 점이 달랐다.

 


절친한 친구 자모카와의 전투에 승리한 테무진... 드디어 칸이 되다

오논강 상류에 자리한 유목지는 하늘의 신탁이 내려온다는 성스러운 곳이다. 결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테무진은 샤만 집단을 장악했고 샤만들은 테무진을 하늘이 보낸 지도자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테무진에게 이 대지를 통치케 할 것이다."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었다. 자모카와의 마지막 결전을 앞둔 순간 자모카의 추종자들이 자모카를 사로잡아 왔다. 칭기스칸은 자모카의 눈 앞에서 그를 배신한 자들의 목을 치게 했다. 자모카는 친구인 칭기스칸에게 부탁했다. "내가 죽음을 당할 때 피를 쏟지 않게 해달라". 자모카는 커다란 카페트에 돌돌 말려죽었고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1206년 봄, 오논강가에서는 각 족장과 장로, 전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코릴타(제국의회)가 소집되었다. 코릴타는 테무진을 칸으로 선출했고 그에게는 칭기스칸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칭기스칸은 뛰어난 체력, 강한 목표의식,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남들의 조언을 즐겨 듣고 종교적 신앙이 깊었다. 그는 위기의 순간마다 몽골족의 최고신에게 깊은 경배를 올렸다.

친구이자 최대 정적이었던 자모카를 제압한 테무진은 이곳에서 열린 제1차 코릴타(제국의회)에서 칸(군주)으로 추대되었다. 코릴타는 각 부족장과 장로, 전사 대표들이 참석해 국사를 논하는 회의체다 ⓒ오문수
칭기스칸 비석 모습 ⓒ오문수

그는 이념이나 종교보다 현실을 중시해 법률을 제정했다. 아내 버르테가 납치된 후 납치가 부족간의 끊임없는 반목을 낳는다는 걸 깨닫고 법으로 금지했다. 종교박해가 사회 폭력의 근원이라고 보고 모든 이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다.

그는 교역과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모든 정복지에 역참제를 실시했고 상인들은 이를 숙소로 활용했다. 또한 물품에 부과하는 세금을 감면하고 과세 기준을 통일했다. 이러한 법령으로 몽골제국은 각 대륙을 넘나드는 최초의 자유무역지대가 되었다. 

몽골 서쪽끝 올기에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카자크족들이 살고 있다. 카자크인들이 다니는 이슬람사원 모습으로 칭기스칸이 몽골제국에 종교적 관용을 베푼 흔적이다 ⓒ오문수

칭기스칸이 만든 법 '예케 자삭(Yeke Jasag)'속에는 만물은 모두 존중해야 한다는 자연법사상(샤마니즘)과, 정치적으로 직접 참여주의를 통한 권력분립(제천행사), 자유무역을 중시한 원대한 사상이 들어있다.

칭기스칸이 세운 대몽골제국의 이념인 팍스 몽골리카는 세계의 모든 사상과 이념을 끌어안았던 인류통합 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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