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굽고, 번역기도 돌려보고... 길고양이 구조기
상태바
조기 굽고, 번역기도 돌려보고... 길고양이 구조기
  • 정병진
  • 승인 2020.07.17 1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방 배관 틈으로 올라가 집 천장에 갇혀... '천장 뜯어야 한다'는 말에 직접 나서다


 

길고양이 미끼를 먹으려다 포획틀에 갇힌 길고양이.
▲ 길고양이 미끼를 먹으려다 포획틀에 갇힌 길고양이.
ⓒ 정병진

 

 
집 천장 속 길고양이를 잡았다. 꼬박 일주일만이다. 녀석이 우리 집 안방까지 침입한 건 지난 5일 저녁이었다. 난 2층 서재에 있는데 아내가 안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얼른 좀 내려와 보라"며 고함을 쳤다. '또 지네가 나왔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1층에 내려왔더니 주방을 가리킨다. 고양이였다. 길고양이가 열린 출입문으로 들어와 안방까지 침범한 뒤 사람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주방으로 달아난 거다.

길고양이는 주방 서랍장 모서리 비좁은 틈으로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머리는 이미 들어간 상태라 절반 가량만 보였다. 아내는 "고무장갑을 끼고 얼른 붙잡으라"고 채근했다.

서둘러 고무장갑을 끼었으나 반팔 옷을 입은 상태여서 잠시 망설였다. 길고양이라 자칫 발톱으로 팔을 긁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긴팔 윗옷을 가지러 간 사이 녀석은 기어코 그 비좁은 틈새로 올라가고 말았다.

'그래봤자 소용없을 거다. 천장이 막혀 있을 테니까'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하필이면 싱크대 서랍장 그 틈새 안쪽으로 배관이 돼 있어 천장까지 연결돼 있는 상태였다. 고양이는 그곳을 이용해 집 천장까지 올라갔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고양이가 올라간 싱크대 틈새 아래쪽과 천정 점검부 바로 밑에 놓인 냉장고 위쪽에 각각 생선을 놓아두고 고양이가 자진해 나오도록 유혹했다. 출입문도 열어두고 빠져 나가길 기다렸다.

이튿날 아무런 기척이 없어 얌전히 빠져 나간 줄로만 알았다. 사흘 가량 고양이는 아무런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런데 주방 쪽에서 고양이 오줌 지린내가 났다. 아무래도 수상해서 점검부로 계란 프라이를 올려 놓아 보았다. 다음날 보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제야 고양이가 아직 천장에 남아 있음을 알았다. 어떤 소리도 내진 않았지만 고양이는 틀림없이 천장에 머무는 중이었다. 

천장으로 숨어들어간 길고양이

고양이를 천장에서 끄집어낼 묘안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고양이 특성을 검색해 봤더니 사람보다 후각이 15배나 발달돼 있다고 했다. 다시 조기를 하나 구워 점검구 아래쪽에 놓고 유혹해 봤다.

하지만 고양이는 종일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 소리 번역을 해 준다는 어플을 깔고 '이리 나와라,' '사랑해,' '만나서 반가워'에 해당한다는 고양이 소리를 들려줘봤다. 하지만 고양이 소리 번역이 틀린 건지 반응이 없었다.

유튜브에 있는 여러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려주자 그 중에 두어 개 소리에 잠시 반응을 보였다. 반가운 생각에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줬더니만 눈치 챘는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고양이가 이처럼 경계심이 많은 동물인 줄은 처음 알았다. 맛난 음식 냄새로도, 소리로도 의심 많은 천장 속 길고양이를 불러낼 수는 없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10일(금)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소방대원 두 분이 오셨다. "본래 이런 정도 일로는 출동하지 않는데 그래도 상황을 살펴보고 돕고자 오신 거고 더 위급한 일이 연락 오면 금방 가봐야 한다"고 했다. 고마웠다.
 

 집 주방쪽 천정 점검부
▲  집 주방쪽 천정 점검부
ⓒ 정병진


 


소방대원은 점검부 안쪽을 손전등으로 비추고 휴대폰으로 빙 둘러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 영상에는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천장 속이 훤히 트여 있지 않고 칸막이 형태로 돼 있어 다른 쪽으로 피해 있음이 분명했다.

소방대원은 "고양이를 꺼내려면 천장을 큼지막하게 뜯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골 어르신들 집 천장에도 간혹 길고양이가 들어가는 일이 있어 신고를 받곤 하는데 그럴 때면 출동해서 자녀들에게 연락해 '천장을 뜯어내도 되는지' 동의를 받는다"고 했다.

고양이 한 마리를 꺼내고자 멀쩡한 천장을 뜯어내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해 당황스러웠다. 소방대원들은 "고양이가 천장에서 죽기 전에 한시 바삐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단 소방대원들을 보내고 무슨 또 다른 방책이 있는지 인터넷으로 더 알아보았다. 천장에 들어간 고양이를 꺼낸 적 있다는 특수 청소 업체가 있어 연락해 봤더니 수도권만 가능하다고 했다. 직접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먹이를 통해 유인에 성공했으나

천장을 뜯어내려면 일이 너무 커지기에 선뜻 결행할 순 없었다. 최대한 다른 방법을 써 볼 요량으로 철물점에 가서 길고양이 잡을 포획틀이 있는지 알아봤다. 다행히 있었다. 그 철물점 주인도 길고양이가 창고에 들어와 새끼까지 낳는 바람에 잡아서 내보내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고 했다. 자신들도 고양이 포획틀을 사용해 한 달 만에 겨우 잡았다며 인내심을 갖고 시도해 보라고 하였다.

고양이 포획틀을 점검부 아래 설치하고 미끼로 조기 한 마리를 달아 놓았다. 고양이는 우릴 비웃듯 조기만 쏙 빼 먹고는 다시 천장으로 올라갔다. 고양이가 조기를 건드렸을 텐데도 포획틀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나마 희망은 고양이가 무척 배가 고팠던지 점검부로 나와 조기를 물어 갔다는 데 있었다. 한 번 점검부 구멍으로 나온 적 있으니 배고프면 또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끼를 살짝만 건드려도 포획틀 문이 닫히도록 다시 조정해 놓고 돼지고기 한 점을 걸어 놓았다.

 

▲ 포획틀에 갇힌 길고양이
ⓒ 정병진

관련영

 


새벽 세시쯤 됐을까. "고양이가 포획틀에 걸렸다"고 아들이 뛰어와 알렸다. 고양이 소리가 들려 나와 봤더니 포획틀에 걸려 있었다는 거였다. "드디어 잡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녀석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점검부 구멍으로 살짝 내려와 미끼를 건드리다 철장에 갇히고 말았다. 잡고 보니 생각보다 체구가 상당히 컸다.

밖에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 곧바로 풀어주진 않고 아침까지 기다렸다 풀어줬다. 녀석은 철창문을 열자마자 쏜살 같이 줄달음쳐 달아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