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김경호 교수의 희망의 ‘길‘

  • 입력 2011.12.26 13:26
  • 기자명 오문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일 시민회관서 출판 기념회 ... 1000여명 참석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24일(토) 오후 2시. 여수시민회관에는 1000여 명의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제주대학교 김경호 교수의 출판기념회를 축하해주기 위해서다.
그의 자전에세이집 제목은 <길>이다. <길>은 김교수가 46년 동안 살아오면서 매번 고민하며 선택했던 길에 대한 내용을 담담하게 담았다.
사람은 인생의 길을 가면서 갈림길을 여러 번 만난다. 그때마다 어느 길을 가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낯섦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순간을 거쳐 새로운 길을 걸을 때면 후회와 원망으로 회한에 가득 찰 때도 있고, 선택하길 잘했다는 기쁨과 환희에 찰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보다 나은 미래를 약속해줄 거라는 희망을 간직한 채 끝나지 않은 길을 여전히 가고 있다.
김교수는 현재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다. 미국 남일리노이대학교 언론학 박사, 풀브라이트 교수, 세계인명사전인 ‘후스후‘(Who‘s Who) 등재, 한국언론학회이사,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 출제위원 등의 이력을 보면 대단한 집안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명문가 출신으로 상상된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기만 한가. 때론 개천에서 용이 날 때도 있고 세상 또한 그래야 살맛도 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여수 돌산의 ‘세구지‘ 마을이다. 세구지라는 뜻은 거지가 들어와 부자가 되어 나간다는 뜻이다. 지금은 매립되어 여수시청 3청사가 들어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세구지 1,2,3반을 합쳐도 130여 가구 정도밖에 안 되는 주민들은 동네 앞에 펼쳐진 갯벌에서 갯것을 캐며 살던 해안 마을이다.
꼭두새벽이면 전날 장만한 저잣거리를 머리에 이고 지고 십여리를 걸어 돌산 나룻배를 타고 중앙동 시장에 내다팔던 가난한 마을이었다. 밀물이 되어 만조가 되면 어른 키 한발 반 정도의 깊이가 되고 썰물이 되면 많은 생명을 보듬고 있는 옥빛 개펄이 속살을 들어내던 곳이다.
갯벌 인근에 살던 소년 김경호. 중학교 때는 경운기 엔진을 얹은 통통배를 타고 어른들과 함께 인근의 화태도, 금오도, 연도, 백야도를 돌며 고기를 잡는 전문 낚시꾼인 ‘소년과 바다‘의 주인공이었다.
자연히 공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김교수의 말대로 "제일하기 싫은 게 공부, 제일가기 싫은 곳이 학교"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성적과 집안형편을 생각해 진학한 곳도 실업계고인 공고. 그의 가방 속에는 책 대신 펜치와 전기인두가 들어있었다.
인생의 전환점 - 음악다방 디제이
그러나 그의 인생길을 다른 방향으로 틀게 만든 우연한 사건이 벌어졌다. 앰프가 고장나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빵집에 가서 고쳐줬고, 친구로부터 디제이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빵집과 음악다방 디제이 생활. 당시 박스 안의 디제이는 여학생들의 로망이었다.
1980년대에는 빵집이나 다방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디제이(DJ) 문화, 일명 판돌이가 성행했다. 또한 민주화이전 정치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분노를 삭이는 출구이자 통키타 가수들의 노래와 민중가요를 들을 수 있는 창구였다.
여태껏 살아왔던 세상과 다른 세상을 보면서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그는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한다. 전공은 신문방송학. 사람들 상대로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고 틀어주면서 적성에 맞았던 경험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운전병으로 군생활을 하던 그는 전역이 가까워지면서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무엇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무엇을 하는 것이 내 꿈을 이루고 사는 것일까?" 생각하다 유학을 결심했다.
그의 유학결심은 무모하다 못해 만용에 가깝다. 출중한 영어실력? 경제적 능력? 어부였던 아버지의 경제력과 Be동사도 잘 모르고 지냈던 그가 1년간의 미국영어연수를 도전했으니 소도 웃을 일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밤낮으로 공부했다. 읽고, 쓰고, 듣고, 말하고… 그의 영어공부 방법에는 왕도가 없었다. 책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고, 코피를 쏟고 어지러움을 느끼며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까지 공부를 했다. 처음엔 책 한권을 독파하는 데 두 달이 걸렸지만, 이후 두 주 만에, 나중엔 한 주 만에 한권의 책을 마스터할 수 있었다.


학문의 고향 카본데일 - 고생 끝에 낙이
카본데일은 일리노이주 남쪽에 자리한 인구 5만의 작은 도시다. 일리노이주 주립대학교 중 하나인 남일리노이 대학교는 인문사회 분야가 강하다. 그곳에서 그는 언론법 특히 뉴미디어상에서 발생하는 표현의 자유, 명예훼손, 저작권침해 등 언론보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공부했다.
학비 조달이 원만치 않던 그는 스승이던 로버트 스펠만 교수의 지도와 도움을 받으며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유학 도중 결혼한 아내와 함께 지도교수 집안 청소, 딸기 따기, 일회용 카메라 재생하기, 중고 자동차 딜러 보조 등 갖은 고생을 하며 힘든 과정을 마쳤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친 김경호교수는 현재 제주대학교에 재직하며 교육전문가로 살고 있다. 그동안 수행평가 출제위원, 로스쿨 출제위원,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 치대 입학시험 등의 출제위원으로 종사하기도 했다. 출제위원이면서도 수월성이나 변별력 위주의 입시제도가 창의력이나 아이들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탄한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이 그가 바라는 꿈이다.
시사토론 진행자로
2005년 제주MBC 보도국장으로부터 MBC TV의 대표 토론 프로그램인 ‘시사진단‘의 진행을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시사진단 방송 진행초기. 강렬한 조명이 켜지고 "방송 15초 전입니다"라는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리면 엄청나게 긴장된다.
그가 진행했던 2년 동안의 방송은 400명의 다양한 사람과 토론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폭넓은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광, 환경, 교육 등 그야말로 모든 분야를 섭렵하는 시사토론이었다.
그가 쌓은 지식과 영어에 대한 노하우는 영자 신문 제주위클리에 실려있다. 미국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했던 아내 송정희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제주위클리는 현재 월 1만부의 발행부수와 176개국 온라인 접속, 90여개국에 종이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지난번 대선 당시 문국현 후보의 홍보기획단장을 맡았던 김교수는 또 다른 길을 찾고 있다. 고향인 여수에서 내년에 있을 총선 출마를 위해 준비 중이다.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여수보다 제주에서 훨씬 많이 알려져 있을 텐데 인지도가 낮은 여수에서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데.
"제주에서 텔레비전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에 고향 여수보다는 제주에서 인지도가 훨씬 높은 건 사실입니다. 그저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한 거라면 굳이 여수를 선택해야 할 필요는 없겠죠. 저는 고향 여수를 마음적으로 단 한시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여수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공개적으로 얘기해 왔습니다. 인지도의 유불리를 떠나서 제 고향 여수에 그동안 고향으로부터 받아온 사랑을 고향에 환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험난하고 먼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태어난 곳에서 생명을 산란하고 죽어가는 연어처럼 말입니다."
- 안철수 현상과 박원순 서울 시장의 당선이 우리 정치권에 주는 함의는?
"그동안 우리 정치에는 국민이 없었던거죠.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말들을 해왔지만, 정작 그들이 해 온 것들을 보면, 단 1퍼센트 소수만을 위한 정치를 해왔고, 나머지 99퍼센트의 대중들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죠. 특히 2040의 고통을 이해하지도 어루만져주지도 못했죠.
지금 많은 사람들은 건강한 세력들이 변화와 희망을 위해 정치에 참여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정치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정치를 해주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염원이 안철수 현상을 만들었고, 조직과 돈이 없는 박원순 변호사를 서울시장으로 만든거죠.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무능한 정치는 언제라도 심판받을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봅니다."


- 언론학을 전공했던 학자로서 현재 뉴미디어인 SNS를 규제하려는 방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판적 여론을 잠재우려는 것이 정권의 속성입니다. SNS의 위력은 기존의 미디어 뛰어 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권이나 정책에 대한 SNS상의 비판적 의견을 규제하고자 하려는 것은 어쩌면 권력의 최우선 과제일 수 있습니다.
저는 언론법과 뉴미디어를 가르치면서 SNS를 포함한 인터넷미디어상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MB정부가 미디어법을 만들려할 때 진보적인 언론학자들과‘ 미디어 공공성포럼‘을 결성하여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정책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표현했습니다. 수차례의 세미나 발표와 논문을 통해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의 해악을 학자적 양심으로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인내하기 힘들 정도의 신랄한 비판이라 하더라도 정부의 규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론의 장을 통해서 진실과 허위가 구별되어야 합니다. 공적관심사와 관련된 진실은 공론을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SNS규제는 실효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미디어 산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척도입니다. SNS가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시민 행동의 주요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는데, 이를 규제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해있으면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정박해있기 위해서 건조된 것은 아니다"는 그의 희망의 ‘길‘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