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비디오아티스트 구자영이 마주한 세계

신기동 갤러리노마드 '구자영 초대전 ENCOUNTER A'
중첩된 이미지 배열 그리고 실체와 환영을 투사해 만든 비디오아트까지
현실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다른 시간과 관계를 맺는 일이 가능한가
작가가 여수에 머물며 항구에 정박한 선박을 소재로 작업한 작품도 전시

  • 입력 2021.06.14 10:23
  • 수정 2021.06.15 19:24
  • 기자명 전시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기동 갤러리 노마드 전시 모습
▲신기동 갤러리 노마드 전시 모습

비디오아티스트 구자영 작가의 작품이 신기동 갤러리노마드에서 전시 중이다.

갤러리에 들어오면 먼저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영상에 눈길이 간다. 2001년에 발표한 구 작가의 비디오아트 'The shades'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성은 구자영 작가 자신이다. 그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약 3분간 이어지는 영상은 그가 창 밖으로 나가는 장면만 반복되어 재생된다.

또다른 작품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창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문을 닫는 다. 그러나 문을 닫고 뒤돌아서는 그의 뒤에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나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모습이 겹친다. 난해하기도 한 이 행위의 반복은 어떤 의미일까.

▲구자영 작가의 비디오아트 'The Shades'
▲구자영 작가의 비디오아트 'The Shades'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 두 작품은 기존의 영상을 투사해 재촬영한 작품이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모습과 문을 닫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완성된 영상을 같은 장소에 상영한 후 또다시 카메라로 촬영했다. 즉 '영상'을 담은 '영상'이다. 작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미리 촬영된 이미지와 실제의 행위를 같은 시간상에 나열해 그 관계를 드러내고자 했다”

'The Shades' 와 같이 환영이 담기는 그의 또다른 작품 ‘Red Green and Blue'는 조금 색다르다.

작품 앞에 서면 카메라 앵글에 잡힌 인물이 붉은색과 초록색, 파란색 레이어로 천천히 나뉜다. 인물의 모습을 세 개의 채널로 나눈 뒤 각각 다른 시간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로 다른 행위가 화면에 동시에 나타나며 관객들로 하여금 ’과거의 자신과 조우‘하도록 한다.

▲구자영 작가의 비디오아트 ‘Red Green and Blue'. 카메라를 들기 전과 후의 모습이 서로 다른 색으로 동시에 나타난다.
▲구자영 작가의 비디오아트 ‘Red Green and Blue'. 카메라를 들기 전과 후의 모습이 서로 다른 색으로 동시에 나타난다.

분명 앵글에 담긴 사람은 관객 한 명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실체와 환영의 만남. 오직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현실과 달리 그의 작품에서는 다른 시간과의 만남이 가능하다. 작가가 “다른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현실을 바라볼 때 어떤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는지 탐구한" 결과물이다.

그러다보니 마주치는 대상도 카메라 앵글에 잡힌 ‘나’에 한정되지 않는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마주치는 주체는 사람과 사람이 될 수도, 정보와 정보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작품을 감상하는 독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이번 전시 주제가 ‘마주침’의 넓은 의미를 포괄하는 단어 ‘Encounter’이다.

전시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의 비디오아트에 등장하는 창(window)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도 궁금해진다. 창은 안과 밖이 만나는 경계의 의미를 지닌다. 구자영 작가는 환영과 실체의 관계에 집중하고 이를 나타내는 도구로 ‘창문’을 택했다.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노마드에서 만난 구자영 작가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노마드에서 만난 구자영 작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구자영 작가는 어떻게 비디오아트 작업을 하게 된 걸까.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그곳에서 비디오아트라는 현대예술을 처음 알게 됐다. 그는 퍼포먼스가 실체와 환영(이미지) 두 가지를 모두 담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귀국 후 비디오아트 작업에 매진한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비디오아트 작가군’으로 아카이빙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갤러리에서는 그가 여수에서 작업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정박한 선박을 촬영 후 중첩한 ‘A2.500' 과 ’B1.2365', 'A3.429'가 그것이다. 작품은 촬영 사진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프레임을 나누고 다시 중첩한 것으로 ‘서로 다른 시간들의 복합체로서의 이미지’라는 상징을 띤다.

▲구자영 작가가 여수에 정박한 선박을 소재로 작품을 완성했다. S6.358
▲구자영 작가가 여수에 정박한 선박을 소재로 작품을 완성했다. S6.358

그가 선박을 작품 소재로 삼은 이유는 ‘급변하는 여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물인 동시에 산업기반의 고도성장과 부의 상징’ 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첩되는 선박 역시 각기 다른 색채를 사용해 과거 이미지를 겹친다는 의미를 담았다.

항구와 요트장에 정박한 선박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그는 전시를 한 달 앞두고 여수의 바다를 촬영해 다시 서울로 올라가 후반작업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

▲구자영, A3.429
▲구자영, A3.429

작품 속에서 중첩이 빚어낸 흐릿한 선박의 형상과 배경이 되는 여수 바다는 한없이 낯설다.

이 낯선 예술을 여수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구자영 작가는 자신의 해석으로 관객의 자유로운 상상을 방해할까 친절히 설명하지 않는다. 입이 무거운 그는 관객이 작품을 직접 눈으로 조우하고 그 의미를 스스로 떠올릴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어쩔 수 없다. 궁금하다면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