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을의 끝자락이다. 서둘러 길을 떠났다. 지난주 토요일(13일)이다. 순천 상사호를 굽이돌아 선암사로 이어진 길을 따라갔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청명하다. 선암사 근처에 이르자 가로수 길에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감들이 오가는 이들을 반긴다.
그냥 걷고픈 아름다운 길이다. 어느새 단풍나무들은 울긋불긋 가을옷을 벗어 던지고 겨울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한다. 게으름을 피우는 녀석들만 남아서 아직 붉으락푸르락 얼굴색을 붉힌다.
여름이 유난스레 무더워서일까, 올가을 산자락의 단풍은 별로 곱지 않다. 선암사에 들어서자 고운 단풍나무가 간간이 자태를 뽐낸다. 할머니의 좌판에는 감 홍시가 익어간다.
최저기온이 5℃ 아래로 떨어지면 나뭇잎은 단풍으로 물들어간다. 삶의 쳇바퀴에 갇혀 종종거리다 보니 올가을에는 변변한 단풍 구경 한번 못했다. 그런데 벌써 가을이 쓸쓸한 뒷모습을 보인 채 떠나가고 있다.
선암사를 생각하면 무지개다리 승선교가 떠오른다. 승선교는 신선이 하늘로 오른다는 아름다운 다리다. 보물 제400호인 이 다리는 높이 7m, 길이 14m, 너비 3.5m나 된다. 화강암으로 다듬은 장대석을 연결하여 반원형으로 만들었다,
개울가로 내려가 바라보니 멀리 승선교 사이로 강선루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카메라 렌즈에 잡힌 풍경이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 하여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승선교 아래에서 그토록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나 보다. 늘 그냥 지나치기만 했는데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천하절경이 따로 없다.
이어 선암사 대웅전 앞에 있는 3층 석탑이다.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보물 제395호다. 대웅전 앞에 좌우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석탑 2기가 있다. 한 사람이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보물은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 석탑’으로 불린다.
참 별난 곳이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화장실 <뒤깐>이다. 해우소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근심과 걱정을 풀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삶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고 했다. 전남문화재 자료 214호로 현재도 사용 중인 이곳은 1920년 이전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연태 시인은 <선암사 뒤깐>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엉덩이를 까고 앉은/한 칸의 고요가/세상보다 넓다.’며 ‘겸허한 자세로 앉아/응축된 번민 덩어리가 척, 척/낙하하는 소리 듣다 보면/ 한 칸도 못 되는 내 생애가/말갛게 보인다'고.
순천 선암사는 한국 불교의 대표 사찰이다. 천년고찰 선암사는 태고종 본산으로 54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조선 시대 다리인 승선교, 2기의 삼층석탑, 창밖 풍경이 아름답다는 대각암, 중심 법당인 대웅전 등 보물급 문화재가 무려 9개나 된다.
가을의 발걸음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떠나자! 선암사에 가거들랑 꼭 한번은 가봐야 할 곳이 있다. 놓치면 안 될 천하의 걸작 승선교와 근심마저 해결해 준다는 절집 뒷간에는 꼭 한번 들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