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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암각화 그림 그리기? 의외의 복병이 있습니다

[몽골여행기4] 옛 사람들 생활상 엿볼 수 있는 암각화가 널린 델마운틴

  • 입력 2022.07.07 14:27
  • 수정 2022.07.08 09:11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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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립 단장이 암각화 탁본작업을 하기 위해 간이화장실로 사용했던 텐트를 설치해 바람막이로 사용했다. 델마운틴 정상부분이라 바람이 너무 세 탁본작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오문수
▲ 안동립 단장이 암각화 탁본작업을 하기 위해 간이화장실로 사용했던 텐트를 설치해 바람막이로 사용했다. 델마운틴 정상부분이라 바람이 너무 세 탁본작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오문수

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이 차강소브라가에서 1박을 한 후 출발한 다음 목적지는 델마운틴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암각화가 널린 곳이라는 소문이 난 곳이다. 델마운틴은 차강소브라가 남동쪽 20km에 위치한 나지막한 산으로 몽골의 문화유산과 관련된 뛰어난 작품들이 있다.

돈드고비 주 을지트(Ulziit)에 있는 델마운틴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20km쯤 펼쳐진 야산이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인근 유목민 게르를 찾아가 암각화가 있는 위치를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목적지에 도착해 영문안내판을 살펴보니 청동기시대와 중세시대에 새겨진 암각화 5000여 점과 당시 이곳에 살았던 옛사람들이 돌로 지은 오두막이 있다는 기록이 있었다.

▲  돈드고비 주에 있는 델마운틴 모습으로 평평한 바위가 많아 암각화 그리기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약 5천여기의 암각화가 널려 있었다.  ⓒ오문수
▲ 돈드고비 주에 있는 델마운틴 모습으로 평평한 바위가 많아 암각화 그리기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약 5천여기의 암각화가 널려 있었다. ⓒ오문수

접근하기에 커다란 장애물도 없고 나지막한 야산이어서인지 암각화를 조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연구원과 학자들에게 델마운틴은 매우 편안한 장소이었을 것이다. 일행은 안동립 단장이 나눠준 아스테이지와 펜을 들고 바위에 그려진 암각화 찾기에 나섰다.

암각화가 널려있다!

탁본이 아닌 아스테이지를 이용해 암각화 그림 그리기에 나선 이유가 있었다. 탁본이 훨씬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탁본이란 옛 비석이나 금속·기와·돌·나무 등에 새긴 글자나 그림을 먹에 의해서 원형 그대로 박아내는 일, 또는 그 박은 종이이다.

▲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이 아스테이지를 이용해 암각화 탁본작업을 하고 있다.  ⓒ오문수
▲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이 아스테이지를 이용해 암각화 탁본작업을 하고 있다. ⓒ오문수

탁본을 뜨려면 우선 돌이나 비석 등 탁본하고자 하는 물체에 물로 종이를 붙인다. 종이의 물기가 어느 정도 마르면 먹을 묻힌 솜방망이로 종이 위를 가볍게 두드린다.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먹이 묻어서 패인 부분의 글자나 그림이 하얗게 드러나게 된다.

금속·돌·목재·토기·기와 등 요철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탁본할 수 있다. 글자의 점이나 선 등의 섬세한 부분까지 그대로 뜰 수 있어 예술품으로서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고학, 미술사 연구에 크게 도움을 준다.

▲고조선답사단 일행이 델마운틴에서 자신이 선택한 암각화를 아스테이지에 그린 탁본들 모습.  ⓒ오문수
▲고조선답사단 일행이 델마운틴에서 자신이 선택한 암각화를 아스테이지에 그린 탁본들 모습. ⓒ오문수

일전에 몽골을 방문해 암각화 탁본을 해본 경험이 있는 필자와 안동립 단장을 제외한 대부분은 탁본 경험이 없어 훨씬 간단한 방법인 아스테이지를 이용한 탁본 만들기에 나섰다. 안동립 단장이 아스테이지를 준비한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한지를 이용해 탁본을 뜨는데 물기에 젖은 한지가 마르면서 수축되기 때문에 실물 크기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러시아식은 아스테이지나 투명한 용지를 이용해 암각화를 따라서 그립니다. 우리는 반투명 용지를 가지고 와서 그림 그리는 데 약간 어려움이 있지만 실물 그대로를 그릴 수 있습니다."

▲델마운틴 안내판 위에 누군가 야생양인 아르갈의 뿔을 올려 놓았다ⓒ 오문수
▲델마운틴 안내판 위에 누군가 야생양인 아르갈의 뿔을 올려 놓았다ⓒ 오문수

산 위로 올라가자 여기저기서 "야! 멋진 암각화들이 널려있네!" 하는 탄성이 나왔다. 평평한 바위 곳곳에 암각화 천지다. 산양인 아르갈, 야생염소 아이벡스, 활을 든 사냥꾼이 사슴을 쫒아가는 모습, 호랑이, 시라소니 등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암각화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몽골 빌레호수에서 암각화를 조사했던 미국 테네시 주 동테네시 주립대학 리차드 코툼(Richard D. Kortum) 교수는 단단한 돌을 이용해 바위 위에 암각화를 그리는 방법으로 쪼기, 새기기, 긁기, 점묘법, 연마하기 등의 방법을 들었다.

옛 선인들이 이렇게 많은 암각화를 그린 이유는 뭘까? 코툼 교수는 "정확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시 사회구성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암각화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문자로 기록하듯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을 그림으로 새겼다.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오랜 세월을 이겨내며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암각화가 만들어졌다. 

델마운틴 암각화 가운데 90% 이상이 동물 형상이었고 사람의 형상은 대부분 수렵 중인 남자의 모습이었다. 사냥의 성공과 종족의 번식은 그들의 가장 큰 염원이자 관심사다. 암각화에 그려진 사냥하는 남성의 생식기는 남자의 크기에 비례해 엄청나게 컸다. 몸 크기의 1/3정도나 됐다.

고조선유적답사단원들은 아스테이지를 들고 각자가 선택한 동물형상 그림을 그렸고 안동립 단장 혼자서 한지를 이용해 탁본을 뜨기 시작했다. 안동립 단장이 탁본을 뜨기로 한 암각화는 커다란 야생염소인 아이벡스를 사냥개가 뒤에서 쫒아가고 활을 든 사냥꾼이 활을 겨누는 멋진 모습이었다.

▲ 안동립 단장이 탁본한 암각화로 커다란 야생염소 아이벡스가 사냥개에 쫒기고 사냥꾼이 활로 사냥감을 겨누고 있다. ⓒ오문수
▲ 안동립 단장이 탁본한 암각화로 커다란 야생염소 아이벡스가 사냥개에 쫒기고 사냥꾼이 활로 사냥감을 겨누고 있다. ⓒ오문수
▲안동립 단장이 암각화 탁본을 하기 위해 한지에 먹물을 묻히고 있다. ⓒ오문수
▲안동립 단장이 암각화 탁본을 하기 위해 한지에 먹물을 묻히고 있다. ⓒ오문수

먼지 묻은 바위를 물걸레로 닦아내고 탁본 작업을 하려는데 거센 바람이 방해를 한다. 거기다가 암각화가 산 정상에 있으니 바람이 셀 수밖에. 어찌할 도리가 없어 간이화장실용 텐트를 치고 우산을 펴서 탁본 작업을 시작했다.

바위에 한지를 붙이고 테이핑을 했지만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을 막기가 역부족이었다. 하는 수 없어 배낭으로 틈새를 막고 우산까지 펼쳐 탁본을 완성하는 데 3시간여가 걸렸다. 탁본작업하는 데 동원된 인원만 6명이다. 바위에서 탁본을 떼어내보니 흐릿한 그림이 드러났지만 아마추어 솜씨로 이만하면 괜찮은 셈이다. 한국에 돌아와 추가 보완을 해야 한다.

▲안동립 단장이 암각화 탁본 작업 3시간만에 탁본을 완성하자 환호성을 지르며 기념촬영에 나선 일행들  ⓒ오문수
▲안동립 단장이 암각화 탁본 작업 3시간만에 탁본을 완성하자 환호성을 지르며 기념촬영에 나선 일행들 ⓒ오문수

"야! 드디어 완성했다!"고 환호성을 외친 단원들. 말로만 들었던 탁본 과정을 처음 본 단원들은 탄성을 지르고 기념촬영까지 마쳤다. 탁본을 뜨고 있던 인근 바위에서는 이번 여행에 자원해 동참한 이수형씨가 정성스럽게 아스테이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집결지에 모인 단원들이 가지고 온 그림들을 놓고 심사가 이뤄진 가운데 이수형씨의 작품이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어 박수갈채를 받았다. 고조선유적답사단과 일면식도 없던 그는 <산>지에 보도된 글을 읽고 답사단에 자원했다. 그가 델마운틴에서 사슴을 탁본한 소감문을 보내왔다.

"델마운틴. 어떤 곳인 줄도 모르고 도착한 이곳은 황무지에 간간이 솟아있는 검은 바위군으로 선사시대 고대인들의 유적지. 많은 암각화들이 바위에 그려져 있었다. 당시 거주민들과 함께 했을 가축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고 우리 일행들은 그 바위 그림들을 탁본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작업에 신기하기도 했고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리는 작업은 내 적성에는 잘 안 맞았고 학교 다닐 때도 성적이 안 좋은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는 해볼 일도 없고 한 적도 없기에 특히 더 조심스러웠다.

우연하게 답사단장님과 같이 탁본 대상을 물색하던 중 한 사슴돌에 시선이 꽂혔다. 어차피 하나는 해보려고 했던 터라 작업에 들어갔다. 사막의 더위는 끔찍했다. 작렬하는 땡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더듬거리며 그렸다. 사슴의 머리 부분이 희미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채 완성되기도 전에 작업 종료를 알려 작업을 마쳤지만 더 그려낼 재주도 없었다. 다음 부분이 너무 희미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몽골에서 한 첫 번째 이벤트였다. 재미난 탐방 시간이었다. 이번 탐방을 한 후 지금은 칭기즈칸 소설을 탐독 중이다. 아직도 몽골여행은 진행 중이다."

▲암각화 탁본하기 위해 이수형씨가 열심히 그리고 있다. ⓒ오문수
▲암각화 탁본하기 위해 이수형씨가 열심히 그리고 있다. ⓒ오문수
▲고조선유적답사단에 참가한 일행이 암각화 탁본을 위해 그린 그림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이수형씨의 사슴그림 ⓒ오문수
▲고조선유적답사단에 참가한 일행이 암각화 탁본을 위해 그린 그림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이수형씨의 사슴그림 ⓒ오문수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나면서 생각해보았다. 5천 기의 암각화가 널려 있는 델마운틴 지역은 당시에 수많은 사람이 살았을 만큼 생활환경이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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