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가 8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제48차 위원회를 열고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등 피해자 인권침해사건’을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이춘재가 화성․수원․청주에서 여성을 상대로 살인과 강간(미수)을 저지른 사건이다.
당시 수사본부는 세 차례에 걸쳐 이춘재를 용의자로 수사하였으나, 비과학적인 증거방법에 매몰돼 오히려 용의선상에서 배제하였다. DNA(유전자 본체) 분석기술의 발달로 2019년 8월경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연쇄살인사건 중 총 5개 사건의 증거물이 부산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이춘재의 DNA와 같은 것으로 판별됐다.
2019년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이춘재를 수사한 결과 총 14건의 살인과 34건의 강간(미수)에 대한 범행을 자백받았다. 그러나 형법 상 강도살인, 살인, 살인미수, 강도강간, 강도강간미수, 강도치상, 강간치사, 강간, 강간미수, 사체은닉, 사체오욕, 상상적 경합에 해당하는 이춘재의 범행은 공소시효가 완성돼 불기소 결정됐다.
이 사건 관련 연쇄살인 누명으로 19년 복역한 윤성여 등 7명의 신청인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과정에서 다수의 용의자가 인권침해당한 사실과 실종된 김현정 살인의 은폐 사실에 대한 진실규명을 요청했다.
신청인 7명은 윤성여, 윤동기(고 윤동일의 형), 김용복(김현정의 아버지) 등 피해자 3명, 김칠준, 박준영 등 변호사 4명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해당 사건의 수사과정 중에 발생한 △불법체포 및 불법 구금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 △자백강요, 증거조작 및 은폐 △일상적인 동향감시,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침해 △김현정 사건의 은폐․조작 △기타 수사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사실을 규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경기남부경찰청․수원지검 등에서 입수한 20만 여 매의 방대한 수사(공판)자료와 언론 및 출판 자료를 조사했다.
또한 수사피해자 가족 등 참고인 14명과 사건 당시 용의자를 수사했던 전 화성․수원․서대문․청주경찰서 소속 경찰 등 조사대상자 43명을 조사하는 등 사건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신청인 윤성여, 윤동일 외에도 다수의 용의자가 인권 침해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용의자들은 뚜렷한 혐의 없이 유사 범죄나 절도 등 전과자, 홀아비, 불량배, 독신자 등의 사유로 경찰로부터 범행 현장 인근에 거주하거나 배회했다며 영장 없이 연행당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자백을 강요받았고,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 화성경찰서 등 수사본부 소속 경찰은 이들을 명백한 증거 없이 협박과 회유, 허위증거물 등의 방법으로 진술을 유도해 허위로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했다.
경찰은 당시 수사 피해자의 범행을 입증할 증거가 없자, 수사피해자들에게 ‘아크릴절단용칼’, ‘손톱깎이’, ‘병따개 은색칼’ 등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는 허위 증거물로 자백을 강요하였다.
동시에 일상적인 감시와 반복적인 임의동행, 주변 탐문 등의 방법으로 수사했고 이는 혐의 없이 풀려난 이후에도 지속됐으며 수사피해자들의 얼굴과 신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위법한 공권력으로 중대한 인권을 침해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신청인 및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에 대한 피해와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과정 중에 발생한 피해자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낙인효과로 인해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어서 매우 안타깝다”며, “이번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을 계기로 국가의 적법하고, 인권 의식을 갖춘 수사를 진행해 두 번 다시 이런 수사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