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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여수 백야도 이발소에 간판이 없는 까닭은

[여수사람들 인터뷰⑨] 이발사 경력 57년 고두석씨

  • 입력 2023.03.16 07:20
  • 수정 2023.03.16 08:07
  • 기자명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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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발사 경력 57년의 고두석씨가 전기 바리깡을 들어 보여준다.ⓒ조찬현
▲ 이발사 경력 57년의 고두석씨가 전기 바리깡을 들어 보여준다.ⓒ조찬현

여수 백야도 섬마을, 간판 없는 이발소의 고두석(82)씨다. 그는 여수 관내에서 현업에 종사하는 이발사 중 가장 나이가 많다고 했다. 이발사 경력 57년에 이른 어르신은 “아기(옛날 손님)들이었는데, 지금은 다 같이 늙어”라며 훌쩍 지나가 버린 옛 시절을 회상했다.

섬마을 이발소는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어쩌다 마을 사람들이 한 달에 한사람쯤 드나들 뿐 개점 휴업상태다. 외지인은 찾는 이가 없다. 고장 난 벽시계가 섬마을 이발소의 현실을 말해주기라도 하는 듯 멈춰서 있다.

손님 없어 이발사 일 접어둔 채 농사일과 민박

▲ 고두석 어르신이 바닷물을 길어 오토바이로 실어 나른다. ⓒ조찬현
▲ 고두석 어르신이 바닷물을 길어 오토바이로 실어 나른다. ⓒ조찬현

요즘은 손님이 없어 본업인 이발사 일은 접어둔 채 농사일과 민박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는 그를 지난 7일 만나봤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 어떻게 해서 이발을 배우게 됐어요?

“21살 때 제과점 일도 해 봤는데 이후 ‘무얼 할까?’ 생각하다 이것이 흉년을 안타겠더라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배웠지. 그때 배우면서 주인한테 10원도 안 받았어요.

소라면 면 소재지 이발소에서 일하면서 품삯을 4년 동안 돈 한 푼도 안 받고 먹는 것도 우리 집에서 먹었지 그때는 손님들이 줄을 섰어 이발하려고. 그러니까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였어요.”

▲ 백야도 섬마을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발사 고두석씨다.ⓒ조찬현
▲ 백야도 섬마을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발사 고두석씨다.ⓒ조찬현

- 그때 이발비를 얼마씩 받았어요.

“1500원이었던가 그랬을 거야. 지금은 8천 원 받는데, 한 15년쯤 되었을 거야.”

- 여기 이발하러 오시는 분들은 동네 마을 분들이겠네요.

“그렇지, 근데 몇 분 없어요. 지금 이발하는 남자들이 15명 미만이야, 옛날에 230구 살았는데 지금은 인구가 150가구도 안 넘어요. 가난, 부자 등급이 없어요. 가난한 사람들도 생활보호대상자는 돈 나오지, 노령연금 나오지, 뭐 이렇게 노인네들도 다 돈이 있어. 그래서 요즘은, 노인들도 돈이 안 아쉬워 그러니까 이제 시내 목욕탕에 가서 이발해버려요.”

“마을 사람들이 아니까 간판 달 필요도 없어요”

▲여수 백야도 간판 없는 이발소는 화정우체국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다. ⓒ조찬현
▲여수 백야도 간판 없는 이발소는 화정우체국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다. ⓒ조찬현

- 이발소에 왜 간판이 없죠?

“태풍에 날아가 버렸어 오래됐어요, 7~8년 전인가? 마을 사람들이 아니까 간판 달 필요도 없어요. 옛날에는 주위 섬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 동네도 노인들 서넛뿐이고 그런 데다가 시내 목욕탕 가서 해 버려요.”

- 이발해서 자녀분들 다 키우셨나요?

“자녀가 3남 1녀인데 이발해 가지곤 택도 없어, 농사도 짓고 15년 전부터는 민박도 하고 그래요. 민박 일반 손님들은 그렇고 낚시꾼들이 좀 와요 하룻밤 5만 원밖에 안 받아요."

- 이발하는 바리깡도 그동안 많이 변했죠.

”처음에는 두 손으로 이발을 했어요, 이젠 한 손으로 이렇게 전기로 하는 거예요.“

▲ 여수 관내에서 현업에 종사하는 이발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고두석씨다.ⓒ조찬현
▲ 여수 관내에서 현업에 종사하는 이발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고두석씨다.ⓒ조찬현

- 이발 배울 때 참 힘드셨겠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나는 일본에서 온 사람 밑에서 배웠거든. 해방되어서 일본서 막 온 사람, 일본 사람은 아니고. 한번은 이발하다 아이(7~8세) 귀를 딱 잘라버렸어, 요새 같으면 병원을 가고 난리가 났을 것인데 그때는 그대로 딱 피 안 나게 지혈을 해서 살살 달래서 보냈죠. 지금도 안 잊어.“

섬마을 백야도의 간판 없는 이발소는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줄고 있다. 이러다 섬마을 남자들의 전용공간이었던 이곳이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돌아오는 길, 허전한 마음에 차가운 갯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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