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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포 침몰선 인양, '이야포폭격사건' 역사적 진실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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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26 15:30
  • 수정 2023.05.02 15:29
  • 기자명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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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사업 추진위원회 심명남 추진위원장이 선상에서 침몰선 추정지를 설명하고 전했다. ⓒ조찬현
▲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사업 추진위원회 심명남 추진위원장이 선상에서 침몰선 추정지를 설명하고 전했다. ⓒ조찬현

여수시의회 미군폭격사건특별위원회와 <여수넷통뉴스>가 ‘찾아가는 현장 간담회’를 남면 안도리 이야포 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가졌다. 지난 21일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여수시의회와 여수시 관계자, 안도 현지 주민 등 50여 명이 참여 미군폭격사건을 재조명했다. 또한, 희생자와 유가족 명예회복을 위한 유해매장지 발굴 요청과 관련해 당시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의 생생한 의견을 청취했다.

“한 맺힌 이야기...드러냄으로써 다시 치유 받는 시간“

▲당시 침몰선 추정지 바닷속을 수색했던 박정우 여수넷통뉴스 편집위원장이 선상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조찬현
▲당시 침몰선 추정지 바닷속을 수색했던 박정우 여수넷통뉴스 편집위원장이 선상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조찬현

이날 토론회에서는 미군기가 피난민 수송선에 왜 총격을 가했는지, 당시 안도 이야포 바다에 침몰된 선박을 어떻게 인양할 것인지, 피해자 확인 등 역사적 진실을 살펴야 할 많은 과제를 풀기 위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야포폭격사건은 1950년 8월 2일 부산에서 출발한 피난선이 통영과 욕지도를 거쳐 저녁 무렵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에 도착했다. 다음날 이야포 해안에서 미군기에 의한 기총사격으로 150여 명의 피난민이 숨진 사건이다.

박성미 위원장은 “이춘혁 어르신의 ‘내가 죽기 전에 정부가 나한테 사과를 할까?’라는 말을 떠올리면 ”너무 그게 마음이 아파요“라며 안도”지역민들에게 우리가 활동했던 것도 말씀을 드리고 그들의 한 맺힌 이야기를 서로 공유하고 드러냄으로써 다시 치유 받는 시간“을 만들자고 했다.

▲이야포미군폭격사건을 다룬 '두 소년'의 양영제 작가다. ⓒ조찬현
▲이야포미군폭격사건을 다룬 '두 소년'의 양영제 작가다. ⓒ조찬현

이야포미군폭격사건을 다룬 <두 소년>의 양영제 작가는 ”이 사건은 노근리 사건하고 좀 많이 다릅니다.“라며 운을 뗐다. 이어 ”사건이 복잡하고 우리가 진실을 어디까지 드러내느냐 이건 앞으로 논의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선박 ”엔진이 건져지면 그 엔진이 확실하다, 이런 감정을 받게 되면은... 어느 정도 진실을 갖다가 추적해 갈 수 있느냐, 이 부분은 여기 있는 여러분들의 힘에 달린 것 같아요.“라고 했다.

당시 침몰선 추정지 바닷속을 수색했던 박정우 여수넷통뉴스 편집위원장은 “원래 배가 조류에 의해 밀려나거든요. 이쪽이 그 지점이에요”라며 추정 지역을 설명했다.

그는 21년 4월경 “우리가 3회 정도 실패 후 마지막 들어가서 찾았다”며, 다이빙 중 “그런 감정을 물속에서 느껴본 적이 없는데 물속에서 진짜 울 뻔했어요, 150명이 죽었는데. 그런데 그 영혼들이 이렇게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지역민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국내 유일한 '평화공원'

▲ 21일 여수시의회 미군폭격사건특별위원회와 '여수넷통뉴스'가 ‘찾아가는 현장 간담회’를 남면 안도리 이야포 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가졌다. ⓒ조찬현
▲ 21일 여수시의회 미군폭격사건특별위원회와 '여수넷통뉴스'가 ‘찾아가는 현장 간담회’를 남면 안도리 이야포 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가졌다. ⓒ조찬현

이야포 선상 답사에 이어 안도마을회관 2층 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

안도 주민 김영순(85) 어르신은 “비행기는 저 산으로 돌아와서 때리고, 또 산 한 바퀴 돌아와서 때리고 그랬지”라며 “피난민들 피를 흘리고 와서 그냥...어릴 때 무서워서 바깥으로 못 나갔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어르신의 나이 11살이다.

▲안도 주민 김영순(85) 어르신이 이야포폭격 상황을 증언했다. 당시 어르신의 나이 11살이다. ⓒ조찬현
▲안도 주민 김영순(85) 어르신이 이야포폭격 상황을 증언했다. 당시 어르신의 나이 11살이다. ⓒ조찬현

박성미 위원장은 “미군폭격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겠다. 구전으로 내려왔던 것들, 마을 주민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우리가 좀 더 들어보고 역사적인 것을 좀 만들어 보자는 의미로 현장 활동에 나섰다”고 했다.

이어서 “르포소설 양영제 작가께서 미군폭격에 관련된 두 소년이라는 책을 발간 했다.”며 소개했다. 또한 동고지가 고향인 심명남 위원장이 처음부터 이야포에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 주셔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며 두 분의 노고에 고마움을 전했다.

덧붙여 ”어촌뉴딜300이 선정했던 이곳 공원에 이야포 공원이 생기는데 고맙게 안도 주민과 어르신들이 허락을 해주셔서 평화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민들의 여론과 지역민들의 자원봉사를 통해서 평화공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내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여수시와 이야포추진위, ”5월부터 침몰선...인양할 예정”

▲심명남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발제를 맡았다. ⓒ조찬현
▲심명남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발제를 맡았다. ⓒ조찬현

심명남 추진위원장은 ”2017년 여름부터 이야포 추모제를 해마다 이어가고 있다. 이후 <여수넷통뉴스>는 170여 건의 이야포 탐사보도를 통해 이야포의 그날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2기 진화위에 세가지 요구를 했다. 희생자 분들에 대한 진실규명과 침몰선 인양, 그리고 유해발굴 세 가지인데 그에 대한 진화위의 답변이 왔었다. 여수시와 추진위가 함께 5월부터 침몰선에 대해서 인양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목격자의 증언이 이어졌다. 주민 박희자 씨다.

”제가 바로 이야포 마을에 목격자거든요. 비행기 한 대가 산 마을에서 넘어왔어요, 넘어 와 가지고 때리고 또 한 바퀴 돌고 와서 또 때렸어요.“

시의회 정신출 위원은 ”그 당시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희생자가 있다. 그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해주기 위해 우리가 지치면 안 돼요, 지치면 그냥 멈추게 되는 거고 묻히게 되는 것이다“라며 모든 분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여수시의회 미군폭격사건특별위원회 ‘찾아가는 현장 간담회’ 참여자들과 여수MBC 취재진이 남면 안도리 부두에서 관공선에 오르고 있다. ⓒ조찬현
▲여수시의회 미군폭격사건특별위원회 ‘찾아가는 현장 간담회’ 참여자들과 여수MBC 취재진이 남면 안도리 부두에서 관공선에 오르고 있다. ⓒ조찬현

한편,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정기명, 심명남)는 제2기 진화위에 이야포•두룩여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하는 '진실규명신청서'를 지난해 8월 18일 여수시를 통해 접수하고 3가지를 재심 요청했다. 첫째 진실규명된 5명 외에 145명에 대해 조사 할 것, 둘째 침몰선 잔해로 보이는 피난선 잔해물을 조속히 인양할 것, 셋째 백비가 있는 이야포 빈지 야산에 유해매장지 발굴에 나서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월 13일 보내온 결정통지서에서 미군관련 민간인 희생사건을 조사개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화위는 사건명 '미군 관련 민간인 희생사건'(사건번호 2사-14418)을 검토한 결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2조에 따른 조사개시 결정을 하였다”고 했다.

여수시의회 미군폭격사건특별위원회(위원장 박성미>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사업 추진위원회는 73년 전 발생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민간인 희생사건' 침몰선 선체 인양으로 사건의 진실 규명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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