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서의 안정된 삶과 예술가로서의 열정적인 삶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김두혁 씨. 퇴근 후의 삶을 즐기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그를 만나, 그의 다채로운 삶과 철학을 들어봤다. 해당 기자의 동의를 얻어 9월 8일 <서강학보> 사람과 사람에 실린 박주희 기자의 글을 싣는다
글 | 박주희 juhui1120@sogang.ac.kr 사진 제공 | 김두혁
│소년, 연극의 길로 접어들다
김두혁 대표와 연극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은 가벼웠다. 1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우연히 교내 연극동아리 공연을 보고 연극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열정과 감동이 저를 압도했어요. 나도 한번 저기 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전히 선명한 당시의 기억. 그렇게 주저 없이 연극 동아리에 가입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을 돌이켰을 때 학과 공부보다 동아리 활동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는 김 대표. 화학공학을 전공했지만 먹고살기 위해서였을 뿐 꿈, 목표 따위가 아니었다. “학과 수업은 그저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연극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당시 연극에 대한 그의 열정은 거리를 초월했다. 광주에서 대학을 다닌 그는 시간이 날 때면 서울까지 올라가 대학로를 다니며 극장을 기웃거렸다. “광주에서 연극하고 있어요”하면 잠시 고민하더니 “그냥 들어와 인마”하며 무료로 공연을 보여주던 일면식 없는 인생 선배들도 있었다고. 덕분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그는 다양한 연극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었다. 공연 포스터를 수집하는 것도 그의 행복이었다. 대학로에 방문할 때면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떼어내 광주까지 소중히 가지고 내려오곤 했다.
연극을 사랑하던 소년은 전공을 살려 산업 단지에서 오퍼레이터가 됐다. 그러나 연극인으로서의 길은 취업 후에도 이어졌다. 퇴근 후엔 꾸준히 지역 극단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열정은 점차 커져 마침내 자신의 극단을 만들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게 됐다. 그렇게 대학 시절 추억이 담긴 동아리 이름을 딴 극단 ‘이랑’이 탄생했다.
│50여 년의 여정, 즐거움이 곧 대본
극단 이랑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50여 명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연기를 전공하는 배우도 있지만 족발집 하는 사장님, 엔지니어, 소방관, 심지어는 무속인까지 다양하다. 연령도 12살의 어린 배우부터 83세 할아버지 배우까지 다양하다. 김 대표는 “연습 중간에 교대근무 시간이 돼서 회사 가는 사람도 있고, 굿하러 간다는 사람도 있어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바쁜 삶을 살면서도 그들이 모여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연극에 대한 사랑이 구심점이 됐기 때문이다.
공연을 하며 다사다난한 사건들도 많았다. 그는 공연 직전 리허설을 하다 무대 위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원로 배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른 후 그 배우를 떠올리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일을 하다 마무리하는 삶이 진정한 여한 없는 삶 아닐까요?”
회사 일과 함께 여러 일을 병행하다 보면 때로는 어려움도 겪는다. 즐거워 시작한 일인데 어느 순간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가슴 졸이기도 한다. 사람과 부대끼는 일이다 보니 관계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도 있다. 가끔은 안 하면 스트레스도 안 받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 모든 어려움이 무난하게 지나가곤 한다고. “즐겁자고 하는 건데 힘들다에 빠지면 안 하느니만 못하잖아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다 보면 함께 또 해냈다는 성취감에 힘든 건 잊고 계속하게 돼요.” 그렇게 그는 50여 년을 지나왔다.
│강아지풀 같은 삶을 꿈꾸며
매 순간 마음이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당장 죽어도 여한 없이 기꺼이 떠나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런 삶을 위해 그는 퇴근 후 연극뿐만 아니라 마음이 가는 일에 모두 도전하며 살아왔다. 그 결과 그는 도예 작가이자 사진 작가이며 색소폰 연주자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껏 제가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본업에서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퇴직 후 그에게도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할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그는 그날을 기쁘게 기다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바쁜 생활을 조금씩 덜어내고 아내와 함께하는 유유자적한 삶을 꿈꾼다. “퇴직 후에는 현재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아내와 함께 마당에 농사지으며 알콩달콩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싶어요.
김 대표는 ‘강아지풀’에 인생을 비유했다. 그가 어느 날 들판에서 바라본 강아지풀은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꺾이지 않고 바람을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주변의 억새와 갈대에 비해 매우 작았지만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그 자태를 유지하는 모습에서 그는 자신을 떠올렸다. “강아지풀처럼 삶의 역경 속에서도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고 유연하게 받아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에게 강아지풀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삶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삶이다. 그런 삶을 위해 그는 오늘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